연애는 근대의 발명품에 불과하다

조회수 2017. 2. 4.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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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솔로부대원들의 올바른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연애'가 인생의 필수조건이라는 생각은 근대 이후 만들어진 편견에 불과하다.


* 이 글은 솔로부대원들의 올바른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총폭탄 정신을 고수하라!

발렌타인 데이가 가까워져 온다. 커플들의 연애놀음과 여기에 편승하여 이윤을 취하려는 상업 자본의 농간으로 탄생한 이 국적 불명의 명절(?)은 어느 새 당연한 연례 행사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솔로들은 이런 때가 되면, 주위로부터 “아직도 솔로야?” 혹은 “너는 언제야 연애를 하니”와 같은 동정어린 시선을 받기 십상이다.


‘연애’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은 우리 솔로부대원들 – 특히, 필자를 비롯한 모태솔로들 – 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서점가에는 연애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들이 자기계발서 사이에 끼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연애라는 행위가 취업이나 인맥 구축과 같은, 인생에 있어 필수적이고 또 노하우를 입수해서라도 달성해야만 하는 무언가로 인식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심지어 ‘연애는 전공필수, 결혼은 교양선택’이라는 망언이 일간지 지면 위에 그대로 실리기까지 한다. 오호. 통재라!!!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솔로들은 ‘뭔가 모자란 사람’ 혹은 ‘패배자’라는 오해/멸시를 피할 수 없다.


필자는 이 글에서 연애와 결혼의 역사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그 개념이 어떻게 탄생하여 국내에 도입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연애는 필수’라는 사회적 편견이 매우 부적절한 것임을 증명할 것이다. 이 글이 솔로부대원들의 자존감 고양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발렌타인 데이 같은 것이나 챙긴다면 일은 언제 할 것인가?



‘연애’의 발명


‘연애’는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흔히 인간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단순히 남녀간에 애정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연애를 한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연애란 “자유 연애”의 준말이니, 당사자들의 자유 의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또한 “애정이 식어서 헤어진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남녀간의 애정은 역시 필수다. 그리고 우리가 ‘연애’ 하면 떠올리는 것 – 소위 밀고 당기거나 데이트를 하면서 애정을 표출한다던가 하는, ‘연애놀음(Flirt)’이 있어야 한다. 이것도 없이 연애를 한다고 하면, 뭔가 이상하거나 뭔가 빠졌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염장행위 금지” 혹은 “발렌타인 데이는 내 미래의 남편/아내가 다른 여성/남성과 동침하는 날” 이라는 슬픈 개드립(…)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연애는 키스 혹은 그 이상의 성적인 접촉를 동반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제기되는 “연애와 결혼은 별개다.”라는 주장에서 뒤집어 볼 수 있듯, 본래 연애란 결혼 –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단계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둘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저런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염장질에는 응징이 최고라고 알려져 있다.

즉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는 연애라는 행위는 자유 의지를 가정한 애정 – 연애놀음 – 성적 접촉의 종합 패키지이며,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소위 농사 지어서 밥 먹고 살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종합 패키지가 없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과 같은 ‘연애놀음’의 형식이 19세기~20세기 초를 거쳐 사회적으로 보급된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의 역사에 대한 심성사(心性史)적 접근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장 루이 플랑드렝에 의하면, 중세 유럽에 있어 사랑과 결혼은 엄연히 분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반대 개념에 가까웠다. 이 당시 기사를 비롯한 지배 계급의 애정 풍속을 “궁정식 사랑”, 농민과 같은 피지배 계급의 애정 풍속은 “시골식 사랑” 이라고 한다. 둘은 약간 다르지만, (남자 입장에서) 결혼 상대는 출산을 위한 것일 뿐 사랑의 대상은 다른 여성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는 출판물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랑과 결혼을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책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무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 그나마 이 책이 나온 뒤에도 이를 반박하는 책이 몇 권 나왔다. 사랑과 결혼을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 아직 부자연스럽거나,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증거이다.

즉, 인류는 탄생하던 순간부터 솔로였던 것이다!!

1876년에 발간된 프랑스 어 사전에야 비로소 “지위/재산 본위의 결혼” “이익을 위한 결혼” 등의 단어에 “연애결혼의 반대말” 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그러니까 사랑을 결혼의 필수 조건으로 보는 태도(혹은 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는 태도)는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당연한 것이 됐다.


그리고 “사랑으로 맺어진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미지가 상류층을 중심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홍보되면서, 연애놀음의 방식 또한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 되려면, 연애를 통한 결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905년 포렐이라는 사람이 “상류층의 연애 유희 방식이 최하층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가고 있다.”고 기록한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즉, 서양에서 연애라는 풍습은 19세기 경에 발명되어서 퍼져나간, 인류 역사 전체로 놓고 보면 정말 극히 일부 시간 동안만 존재했던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또한 서양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앖다.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는 연애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그 개념은 20세기 초 – 즉, 1920년을 전후하여 한국으로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연애’ 수입사(史)의 인식

우리 솔로부대는… 하나다!!
요즘 계집애들은 걸핏하면 사랑 사랑 하니 모두들 기생이 되겠단 말이냐, 갈보가 되겠단 말이냐? 원 그런 해괴한 말법이 어디 있어? 설사 내외간이라도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고 받드는 것이요 남편은 처가속을 돌아본다고 하지, 사랑이라는 말을 어디에 써?


춘원 이광수의 <여자의 일생(1934)>에 등장하는 한 중년 부인의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20세기 초 사랑, 혹은 연애란 한국의 기존의 사회 체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풍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전근대 한국 사회의 결혼에서도 부부 간에 애정 같은 것은 설 자리가 없었다. 대가족 체제의 축은 부부가 아니라 부자 관계였으며, 여성은 아내이기 이전에 며느리 그리고 어머니였다. 부부 사이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애정이라기보다 공경과 분별이었다. 부자 사이에서도 함부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사회였으니, 부부 사이의 애정 같은 것은 바람직하다고 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대의 기성 세대가 사랑이라는 말에 “그런 해괴한 말법이 어디 있느냐?” 며 반발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부부간의 애정 –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의 연애를 용납하지 않던 사회적 분위기는 1920년대에 들어 달라지게 된다. 이 시기는 쉽게 이야기해서, “현대 문명에 뒤떨어진 미개한 한민족을 바꾸어 보자!” 라는 이른바 민족 개조론의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현대적 사회의 기본 단위는 부부 관계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소위 ‘스위트 홈’)이지, 부자 관계를 중심으로 한 대가족 제도가 아니다. 그러니 사회를 개조하려면 일단 구식의 가족 제도부터 개조해야 한다. 자연히 대가족 제도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연애 열풍이 불었다. 부모가 정해 준 조혼 상대에 결별을 선언하는 남자들이 일반화된 것이나 <사랑의 불꽃>과 같은 연애 서간류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것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의 반영이다. B사감과 러브레터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연애 열풍보다 미래에 투자하는 태도가 훨씬 건전하고 유익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당대의 언어적 변화 또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생각하다’ 라는 뜻이었고, 20세기를 넘어가며 의미가 바뀐 뒤에도 남녀간의 감정이라기보다 “나라 사랑”, “신에 대한 사랑” 과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를 거치면서 이 말은 지금과 같은 의미로 변화한다. 기존의 한국어에는 영어의 Love에 해당하는 말이 없었기에, 그 의미를 표현할 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만식의 작품에는 ‘러브’라는 표현을 그대로 쓴 적이 있는데, 영어의 Love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연애’ ‘연인’ 과 같은 말들이 일본에서 번역되어 들어와, 지금까지 한국어의 일원으로 자리잡았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기진 또한 “연애라는 말은 근년(주 : 1920년대)에 비로소 쓰게 된 말.” 이라 하여, 연애라는 말이 1910년대 등장하여 20년대 들어와서야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에서 연애라는 풍습은 수입된 지 100년도 채 안 되는 풍습이다.

매우 실제적인 질문: 연애하는 데 시간과 돈을 다 쓴다면 덕질은 언제 하고 지를 건 어떻게 지르겠는가?

근대의 폭력, 근대의 야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연애라는 풍속은 만들어진 지 채 200년도 안 되는, 수입된 지는 100년도 안되는 풍속에 불과하다. 따라서 연애를 “그 방법을 배워서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으로 보는 것, 솔로들을 “노력을 기울여서 탈출해야만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 로 보는 것은 매우 부당할 수밖에 없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최신 유행’이라면, 자기 의지에 따라 안 할 자유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솔로들은 그 자유를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20세기를 흔히 야만의 세기라고 한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만큼 유난히 학살과 유혈이 멈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작용한 것은 함부로 우월하다 열등하다 딱지를 붙이고, 열등하다 규정된 존재를 지워 버리려 했던 근대의 사고 방식이었다. 연애를 인생의 필수조건으로 보는 시각은 결국 근대식 야만의 재탕일 뿐이라고, 본인은 감히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우리 솔로들을 뭔가 모자란 존재로 끌어내리려 하는 군상들에게 바치는 말과 함께 이 글을 마치도록 한다.


자칭 솔로들을 위한다고 하는 잔소리쟁이에 지나지 않는 이 커플부대원들과 연애 지상주의자들, 그리고 겁쟁이 싱글 반군, 애인이 없으면서도 솔로부대로 취급받길 거부하고, 커플이 되길 열망하는 일종의 반역도들은 다 사라져 버려라! 


왠지 매우 진지하게 병신력을 발산했다는 기분이 들지만 상관없다.

개나 소나 여친이 있는 게 아니다! 개나 소니까 여친이 있는 거란 말이다!



참고문헌


필리프 아리에스ㆍ조르주 뒤비ㆍ미셸 페로 저 / 전수연 역, <사생활의 역사 4>, 새물결, 2002

장 루이 플랑드렝, <성의 역사>,

동문선, 1994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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