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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심부름 업체 사장이 150억 인수 제안을 거절한 이유

띵동 윤문진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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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부름 센터가 60억 투자를 받기까지


리승환(이하 리): 안녕하세요. 님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윤문진(이하 윤): 띵동이란 서비스 운영하고 있는 윤문진이라고 해요.


리: 그게 뭐하는 서비스죠?

윤: 주문만 하면 뭐든지 다 되는 서비스입니다.


리: 주로 무슨 주문이 들어옵니까?

윤: 음식 배달을 제일 많이 합니다. 그 밖에도 단순 배달 퀵 서비스에서부터, 못을 박는다거나 행거를 설치한다거나 가구를 옮긴다거나 하는 집안에서의 업무… 또 동사무소, 은행 관련 업무 등 민원업무도 봅니다. 기념일 선물을 대신 사 준다거나 프로포즈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해 주는 등 각종 이벤트를 대행하기도 하고요.


리: 듣고 보니 그냥 심부름센터네요?

윤: 맞아요. 사실 그렇죠.

강남 어디선가 많이 봤을 그 띵동

리: 그러면 기존 심부름 센터와의 차이가 뭐죠?

윤: 기존 심부름 센터는 신원조회나 미행 등 음성적 영역이 강하다면, 우리 띵동은 잔심부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요. 사실 10년 전부터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고소득 계층은 이런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 왔어요. 최근에는 이게 모바일 시대에 맞춰 주문형 서비스(on demand service)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고요.


리: 실제 사용자가 얼마나 되지요?

윤: 누적으로는 10만 명 정도가 등록되어 있고, 월 평균 1만 명 정도가 월 2~3회 이용하고 있어요. 이번 달 누적 이용은 약 3만 3천 건이고요.


리: 그 많은 주문을 처리하려면 직원도 꽤 많겠군요.

윤: 현재까지 직원은 딱 100명이네요.


리: 100명! 100명이면 비용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 손익분기는 넘기나요?

윤: 사업 확장을 위해 신규 투자를 하다 보니 살짝 적자를 보고는 있죠. 그래도 운영적 측면에서만 보면 2014년 3분기 이후 손익분기점은 넘었어요.


리: 심부름이라고 하면 영세사업자가 떠오르는데, 어찌 이리 크게 일을 벌였나요?

윤: 시작이 크지는 않았는데 주문 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사업이 커지게 됐고, 그러다가 최근 시류를 타며 급성장했지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심부름 서비스는 단순 배달업으로 여겨졌어요. 그러다가 O2O(online to offline), 온 디멘드, 컨시어지 경제(주: 컨시어지는 호텔에서 투숙객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줌을 의미) 등이 세계적 트렌드화되며 국내에서도 집중 조명 받고 있는 상황이라… 이에 맞춰 띵동도 단순 운영사업자를 벗어나 시장 선점을 하고자 신규 투자를 과감히 늘리고 있어요.


리: 신규투자는 어떤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나요?

윤: 과거에는 콜센터 기반의 전화를 통해서만 주문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구조였지만, 최근 트렌드에 맞춰 앱과 웹을 통해 B2C로 주문 처리를 가능하게 하려고 해요. 주문을 접수해서 고객에게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TMS(total management system)를 구축하는 것이죠.

이미 앱이 출시돼 있다.

리: 띵동은 대한민국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인가요?

윤: 아직은 지역제한이 있어요. 지금은 서울지역에서 주로 서비스들이 접수되고 있고, 2-3년 내 전국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리: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장이라니, 돈 무진장 깨지겠네요.

윤: 허리가 휘죠.


리: 돈 있나요?

윤: 없죠.


리: ……

윤: 그래서 관심 있는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어요.


리: 액수를 불어 봅시다.

윤: 지금까지는 총 30억 받았고, 곧 30억을 추가로 받을 계획이에요.


리: 돈 좀 빌려 주십시오.

윤: ……



2. 월 1억을 벌어들이다가 망하고 폐인에서 일어나기까지


리: 어쩌다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윤: 처음부터 비즈니스 모델을 염두하고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어릴 적 같이 알고 지내던 친구 둘과 의기투합해서 사업을 벌여보자고 했죠. 2000년대 초반에는 인터넷, 2000년대 중후반은 모바일이 대세였으니, O2O란 말은 없었지만… 이제 다시 오프라인에서 기회가 있을 거라 봤지요. 오프라인 서비스 중 앞으로 유망 업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온 게 심부름 업체에요.


리: 왜 하필 심부름입니까?

윤: ‘해주세요’란 업체가 있었는데, 이게 초기 띵동 모델과 유사했어요. 말 그대로 주문을 접수 받으면 뭐든 다 해주는 거죠. 제가 그 서비스의 VIP 고객이었는데 사용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거든요.


리: VIP라니, 돈이 많았나요?

윤: 아무튼 개인적으로 3번째 사업이나 다름 없었으니…


리: 첫 사업은 무엇이었지요?

윤: 제가 인터넷 의류 쇼핑몰 1세대에요. 나름 나레이터 모델로 피팅 컷을 처음 도입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고요. 그 아이디어 덕에 정말 장사가 잘 됐어요. 시작한지 3개월만에 한 달에 1억씩 꽂혔으니.

기념으로 올리는 피팅모델 여신(…)

리: 월 1억? 매출요?

윤: 영업이익요. 매출은 월 4~5억?


리: 돈 좀 빌려 주십시오.

윤: 그런데 망했어요.


리: ……

윤: 처음 시작할 때 잘 된 건 아이템과 아이디어 빨이었어요. 2006년 초반만 해도 전체 전자상거래 중 의류는 1% 수준이었거든요. 그런데 1년 지나니까 제 주변에서만 40명이 쇼핑몰을 창업했어요. 당시 제 쇼핑몰에서 포장만 20명이 필요했는데, 이 사람들이 죄다 쇼핑몰을 열더라고요. 2007년에만 10만개의 쇼핑몰이 생겼어요. 진입장벽이 정말 낮은 업종이었던 거죠.


리: 과잉경쟁에 어떻게 대응했나요?

윤: 그때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가고 있는 걸 깨달았어야 하는데, 내가 잘나서 성공한 줄 알았어요. 주문수가 줄어드는 게 단순히 운이 없어서라 생각하고, 오히려 더 과감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죠. 이전에는 오픈마켓을 통해 판매하던 걸 ‘까짓거 나도 만들지’란 생각으로 오픈마켓을 구축하고, 기존에 사입하던 제품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며 운영 리스크가 매우 커졌죠. 그리고 쫄딱 망했어요.


리: 망할 때 얼마 남았나요?

윤: 마이너스 3억? 처음에는 그나마 똔똔 맞춰서 빚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폐업을 준비하면서 세금 문제가 발생한 걸 알았죠. 당시 온라인 판매하던 사람들이 사업소득, 부가세, 이런 개념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온라인 매출이 커지자 정부에서도 각종 오픈마켓의 파워셀러를 집중 조사했지요. 그래서 국세청 통보 받은 게 4억인데… 이미 번 돈은 다 썼는데, 그거 갚느라 아주 힘든 시절을 보냈죠.

신용등급이 낮으면 이렇게 하대 당하는 세상이 열립니다.

리: 쇼핑몰 말아 먹기 전에는 뭘 했죠?

윤: 전공은 경영학인데 1년만에 바로 벤처 회사에 취업했어요. 그래서 영원한 고졸이 됐죠. 20살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병특으로 넘어갔죠.


리: 빚을 3억 지고 나서는 무엇을 했나요?

윤: 우연한 계기가 있었던 게 첫 사업 망하고 공황장애 비슷한 게 왔어요. 처음 3개월 동안에는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3개월이 지나고서야 겨우 산책 좀 할 수 있게 됐죠.


리: 집안을 벗어나갈 수 있게 된 계기가 있다면?

윤: 와이프 눈치요.

리: ……

윤: 나간다고 해서 사람들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정처 없이 돌아 다녔어요. 그러다 산에 좀 오르게 됐는데… 처음에는 북한산 정도 가다가 나중에는 빡센 설악산까지 올랐어요. 그리고 나서 마음의 여유가 약간 생겨서, 사람들을 다시 조금씩 만나기 시작했는데… 전 그때까지 사람들이 저를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오히려 따뜻하게 맞아주고 이전 과정을 긍정적으로 봐준 사람도 있더라고요.



3. 문제 투성이 캬바레 운영, 극적인 인생역전을 그리다


리: 그래서 빚이 3억인 상태에서 두 번째 사업을 하게 된 건가요?

윤: 정확히는 제 사업은 아니었어요. 선배 회사에서 성동구에 있는 큰 상가 건물의 매각 프로젝트를 맡겼어요. 그런데 일을 맡자마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터져서 거래 자체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안에 술집, 여관, 캬바레(무도장) 등등을 만들어 운영하게 됐죠.


리: 그냥 임대사업하면 될 텐데, 왜 직접 운영까지 했죠?

윤: 그때는 세입자 자체가 없었어요.


리: ……

윤: 각종 사업을 운영하다 보니 그때 진짜 많은 경험을 했어요. 특히 캬바레 운영 경험이 가장 컸는데, 정말 밑바닥에서 벌어진 모든 상황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어요. 유흥업소다 보니 사건 사고도 잦았고…


리: 대체 어떤 것을 배웠나요?

윤: 많죠.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거 하나만 이야기할게요. 캬바레를 운영하다 보니 장안에 내로라 제비들은 계보별로 다 파악할 수 있었고, 또 친해졌어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어떤 분야든 간에 절정에 다다른 사람은 굉장한 인사이트가 있다는 것이에요.


리: 제비의 인사이트가 뭐죠?

윤: 듣기에 좀 황당할 수 있는데… 80년대부터 대한민국을 풍미한 대한민국 넘버원 제비가 있어요. 제가 운영하던 캬바레에서도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데, 정말 여자 외모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술자리에서 “형님, 정말 마음이 가서 작업 치는 거에요?”라고 물으니 “너 다시는 그딴 소리 하지 마라”며 버럭 화를 내더라고요. 자기는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그때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죠. 저는 제비들이 맘 속에 딴 생각 가지고 여자를 이용수단으로 갖고 노는 줄만 알았는데, 프로들은 그게 아니었던 거죠.

1류 제비에게 이런 마음은 없습니다.

리: 그밖에 배운 게 있다면?

윤: 인내심? 다양한 직종들의 사람들을 많이 겪어봤지만, 캬바레에는 정말 하루하루 사는 밑바닥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감정이 매우 직선적이고 요구사항이 매우 까다로워서 맞춰주기 힘들죠. 유흥업소에서 수백 명을 상대하며 배운 인내심이 지금 사업에 긍정적으로 많이 작용했어요.


리: 그래서 캬바레 운영은 성공적이었나요?

윤: 네. 캬바레나 콜라텍은 보통 중장년층이 많이 이용하는 유흥업소에요. 당시 20대 후반 젊은 놈이 업주 됐다고 하자 그쪽 업계에서 매우 센세이션했고, 사람들이 많이 몰렸어요. 정말 사람들이 하도 춤을 춰서 건물이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결국 3억 빚 갚은 건 물론이고 돈도 꽤 벌 수 있었어요.


리: 그래봐야 월급쟁이 사장인데, 그렇게 많이 벌 수가 있나요?

윤: 제가 4년 간 운영을 했는데, 어차피 본 목적은 매각이었잖아요? 워낙 장사가 잘 되다 보니 위임한 분 기대치 2배 이상 높은 가격에 매각했어요. 그러자 사장님이 인센티브를 엄청 주더라고요.


리: 그리고 4년 뒤 주머니에 얼마가 남았죠?

윤: 4~5억 정도?


리: 돈 좀 빌려 주십시오. 집에 고양이가 굶고 있습니다.

윤: ……

굶고 있는 고양이, 빠삐…

리: 많이 벌었는데, 계속 일할 생각은 없었나요?

윤: 전혀.


리: 왜죠?

윤: 부동산이라는 게 돈에 대한 보상은 분명 있는데,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나 이런 게 생기기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지쳤어요. 그래서 원래는 그 이후 개인적으로 사업할 생각은 전혀 없었죠. 정말 캬바레 굴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한량 생활 1년 하다 보니 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친구들이 있고, 팀을 짜게 되니 움직일 수밖에 없었어요. 운명이란 게 있구나 느낌이랄까.



4. 인생은 실전이야 존만아: 띵동의 시작과 몰락


리: 그래서 띵동을 하게 됐습니까?

윤: 네. 오프라인에서 심부름은 분명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실 사람들이 우버도 아주 새로운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유흥업소 관련자에게는 별로 새롭지 않은, 강남권에서는 항상 있었던 업종이었어요.


리: 띵동을 처음 시작할 때 신경 썼던 점은 무엇이 있나요?

윤: 일단 심부름 용어 자체가 맘에 안 들어서 생활편의대행서비스, 헬프 서비스라는 용어를 도입했어요. 심부름은 갑을병중 맨 아래의 느낌이 강해서…


리: 시장 반응은 어떻던가요?

윤: 아무도 못 알아먹어서 다시 심부름이라 하고 있어요(…)


리: …… 아무튼… 심부름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윤: 뻔한 이야기죠. 1인가구 늘고 소비성향 바뀌고, 시장 가능성을 높게 봤죠.


리: 장사는 좀 됐나요?

윤: 굉장히 어려웠어요. 일단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365일 24시간 서비스해야 한다는 게 애초 리소스보다 3배 이상 소모가 되더라고요. 처음 창업자본금 2억이 6개월도 안 돼 소진 됐어요. 건물 팔고 5억이 손 안에 있었는데, 1억은 놀며 썼고 남은 돈은 2억이 됐죠. 6개월 만에.

그때만 해도 띵동이 이리 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리: 그래도 남은 돈이 2억이면 좋지 않습니까?

윤: 6개월만에 재산 절반이 없어지니 멘붕이 왔어요. 사람 심리가 그래요. 돈이 순식간에 없어지면 심리적으로 팍 쫄리게 되거든요. 시작할 때는 만들어만 놓으면 무럭무럭 성장할 거라 생각. 그런데 O2O 서비스의 한계를 느끼게 된 거죠.


리: 한계라 함은?

윤: 운영 리소스의 문제에요. 운영에만 돈이 엄청 들어가니 기획했던 전략이나 마케팅은 추진하기가 어려웠어요. 보통 온라인 서비스는 서비스 만들면 기획-마케팅 계획에 따라 굴릴 수 있어요. 하지만 오프는 그게 불가능해요. 처음부터 아싸리 대규모 자본을 들이면 모를까, 린(주: lean; 작게 시작해서 빠르게 실행, 오류를 개선해 나가는 형태의 경영)하게 시작하다 보면 운영하는 데만 해도 리소스 소모가 너무 커요. 지금 많은 O2O 스타트업이 겪는 문제에 봉착한 거죠. 세탁, 꽃 배달, 세차… 이런 서비스들이 사업기획력보다 실제 고객접점 관리가 잘 안 돼서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띵동도 마찬가지였어요.


리: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윤: 더 버텼어요. 계획 없이… 그냥 버티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배달의 민족에서 투자제안을 받게 됐어요. 안 받을 이유가 없었죠. 돈도 없고 파트너십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제가 처음에 의식한 경쟁사 ‘해주세요’는 저희보다 10배 이상 컸고, ‘푸드플라이’는 시작부터 투자로 단단한 자본금과 우수 인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리: 배달의 민족에서 어떤 제안을 했나요?

윤: 시드 머니로 2억을 투자할 테니 사업제휴를 같이 하면서 SI(주: strategy investment; 전략제휴를 목적으로 투자하는 것)로 회사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고, 흔쾌히 받아들였죠.


리: 이 때부터 좀 풀리던가요?

윤: 아뇨.


리: ……

윤: 그래도 투자 받은 돈을 1년동안 안정적으로 까먹을 수는 있었죠.


리: 뭔가 변화의 계기는 없었나요?

윤: 전혀… 마케팅 없이 1년간 운영하며 꽤 많은 콜 수를 늘렸지만… 결국 어느 정도 한계점에 부딪혔어요. 추가 마케팅이 필요한데 사용자 경험이 너무 부족하니 공격적 마케팅도 할 수 없었고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사업장을 신당동에서 강남으로 옮긴 게 변화의 계기라면 계기이겠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해주세요’의 1/10, ‘푸드플라이’의 1/6 수준이긴 했어요.


리: 강남에 간 후에 콜이 좀 늘었나요?

윤: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이후 1년 동안 더 큰 적자를 보게 됐죠. 투자금은 물론 제 개인 재산도 다 날린지 오래고, 빚까지 지게 됐어요.


리: 배달의 민족과의 협업을 통해 반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나 봐요?

윤: 배달의 민족 앱에서 ‘강남 맛집’이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협업 관계는 유지됐지만, 실제 사용은 별로 없었어요.

추억의 카테고리…

리: 계속 망해가는 시나리오네요?

윤: 원래 접으려 했어요. 도저히 솟아날 구멍이 안 보이니까… 그렇게 자포자기한 상태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미련이 남더라고요. 창업자들이 좀 그렇잖아요. 비전이 없어도 미련 때문에… 정말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다시 독기를 품은 계기가… 고객이 아닌 경쟁사로부터 무시도 당하는 게 싫더라고요. 정말 모든 일을 맨땅에서 헤딩하며 일으켰는데, 반드시 뭔가 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가 없으면 백수 될 팀원들 걱정도 되고… 그러다가 감히 말하자면 ‘업의 본질’을 그때부터 파악하게 됐어요.


리: 갑자기 되게 멋있는 이야기 하려 하네요(…)

윤: 주변 경쟁사는 IT, 벤처로 포장하고 키우고 있었는데 사실 결국은 배달 서비스잖아요? 결국 고객가치가 최우선인데 외형적인 것에 비교 당하며 저 혼자 쓸데 없이 좌절했던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업의 본질에 집중하자… 서비스 퀄리티 높여서 진정한 고객가치 높이는 게 유일한 살아남을 길이구나… 고객 입장에서 우리 서비스에 요구하는 건 3가지에요. 신속함, 정확함, 친절함. 가격 경쟁력은 그 이후에요.


리: 멋있는 이야기를 하려 하더니 뻔한 이야기를 하는군요(…)

윤: 아무튼 그때부터 고객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가장 빠르고 정확히 처리하고, 만족감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하는 데 최선을 기했어요. 여기에 가격적 메리트 있으면 경쟁사보다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리: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한 거죠?

윤: 그렇게 하려고 해서 처음에는 비용 투자를 더 늘렸어요. 사람이 많아야 즉각 응대가 가능하니 인력을 늘려서 서비스 경쟁력 높인 거죠.


리: 그래서 이후는 잘 됐나요?

윤: 거기서 또 좌절을 겪었죠.


리: 대체 성공기는 언제쯤 나오는 겁니까(…)

윤: 이번에는 인력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더 많은 인력에는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렇게 마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노동 배달원들과 상담원 관리가 너무 어려웠어요.

당시 윤문진 대표의 모습

리: 어떻게 됐습니까?

윤: 두 번째 폐업을 고민하게 됐죠.


리: ……

윤: 이번엔 진짜 채무 청산하고 폐업 절차 밟으려 서류까지 작성했어요. 그런데 또 오기가 생겨서-_-… 다시 경쟁사 보니 이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더라고요. 끊임 없이 구성원이 이탈하고 새로 들어오는 교체되는 인력 구조로는 서비스 질이 계속 내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푸드플라이도 그렇게 뛰어난 인력에 대형 투자까지 받고도 쉽게 선을 못 넘고 있는 걸 보고, 어디나 운영단에서 서비스 안정화가 잘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아직 뭔가 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5. 현장에서 답을 찾다: 직원 만족이야말로 고객 만족


리: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어떤 대책을 내놓았나요?

윤: 그런 게 어딨어요? 당장 빚투성이에 적자 쌓여가는 회사에서.


리: ……

윤: 그런데 너무 힘들다 보니 엉뚱한 곳에서 깨달음이 왔어요. 제가 좀 막 살다 보니 오토바이를 꽤 잘 모는 편이고, 그 동안에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느끼고자 하루 한두 시간은 퀵서비스를 직접 뛰었어요. 그런데 정말 돈이 없어서 운영이 어려워지자 그 사람들처럼 하루 12시간 배달을 했거든요. 그때 깨달은 거죠. 어느새 저와 구성원들은 적대적 관계였음을…

자기가 오토바이 잘 탄다고 자랑하던 윤문진 대표는 마침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다(…)

리: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당연한 일 아닙니까?

윤: 경험해 보니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저는 그저 제가 다른 오너보다 돈을 더 주니까 충분히 챙겨줄 만큼 챙겨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 힘들다고 안 나오고 관두고 고객 트러블 만들 때 그들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거죠. 착각이었어요. 겉으로 잘해줘도 속으론 사람의 한계가 있고, 이런 게 사실 다 드러나거든요. 하루 12시간 일해보니 이들의 환경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어요.


리: 퀵 업무가 개빡센 걸 그제서야 깨달은 겁니까…

윤: 일이 빡센 것도 있지만 멘탈 관리가 힘든 걸 알았어요. 기분 좋게 출근해도 길에서 미친 운전자 만나면 멘탈이 확 나가버리거든요. 고생해서 도착 했는데 늦었다고 욕 얻어먹거나 비 오거나, 심지어 사고라도 나면 겁나서라도 일을 못하게 돼요. 제가 캬바레 때 정말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일을 겪었는데, 이 사람들도 똑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직업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느끼기 어려웠던 거죠. 그때 깨달았어요. 고객의 접점인, 퀵 메신저들이 자신의 일이 직업임을 느끼게 하는 게 사업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리: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변화했습니까?

윤: 그렇죠. 구체적 방법으로 소통을 많이 늘렸어요. 형식적으로 힘내라, 괜찮아… 이런 게 아니라, 진짜 무슨 고충을 가졌는지, 직업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의견을 듣고 의사결정에 참여 시켰어요. 보상체계를 어떻게 바꾸면 만족감 느낄 수 있는지 진심으로 같이 소통하기 시작했던 거죠. 다른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여기 개선하는 데만 1년 이상을 보냈어요.


리: 그 결과는 어떻던가요?

윤: 퀵 메신저들 한 달에 얼마 버는지 알아요?


리: 글쎄요? 열악하다 하니 180~200?

윤: 처음에 퀵 메신저들 평균 급여가 230만원이었어요.


리: 생각보다 많네요?

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이 사람들 주말 토일요일 포함해서 1주일 평균 72시간을 일해요. 주말수당, 야간수당, 위험수당 생각하면 사실상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일단 최소한 급여를 10% 끌어올렸어요. 이후에 보상체계를 인센티브로 바꾸니 거의 2배, 평균 400씩 가져가게 됐어요. 많이 버는 사람은 실수령액이 월 500-600에 이르렀어요. 지금도 500 이상 가져가는 사람이 절반 정도에요.

퀵 메신저들의 삶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고단하다

리: 취업 좀 시켜 주십시오.

윤: 면허 없다면서요.


리: ……

윤: 그리고 면허 딴다고 될 일이 아니라 퀵 메신저들은 진짜 서울시 도로를 속속들이 외우고 있어야 해서…


리: 아무튼 퀵 메신저가 가져가는 돈이 많아지자 회사도 살아났나요?

윤: 사실 우리는 제대로 된 마케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입소문으로만도 경쟁사 고객을 끌어오는데 성공했죠. 사실 퀵 메신저들이 돈을 많이 가져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태가 안정되고 이탈이 낮아지니 숙련도가 높아지며 서비스 퀄리티가 매우 높아졌어요. 퀵 서비스는 오토바이 스킬이 좋다고 일처리가 빠른 게 결코 아니에요.


리: 대기업들이 그러하듯 교육에 투자는 하지 않았나요?

윤: 해봤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었어요. 답은 현장 직원들이 이미 잘 알고 있어요.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게 핵심이지, 교육 프로그램을 굴리는 건 차후의 일이라 생각해요. 오히려 소통하는 게 서비스 안정화는 물론, 교육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죠. 사고율이 엄청 낮아지니 이에 따르는 비용 절감이 인건비 상승 이상으로 컸고요. 다른 퀵 서비스 회사처럼 한두달 목돈 만들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직업으로 일하니 스스로 컨디션 관리를 하게 된 거죠.


리: 돈 많이 주는 거 외에 어떤 변화를 꾀했나요?

윤: 근무환경 개선이에요. 일반 사무직에게는 기본적인 것이겠으나, 퀵 서비스 업계에는 메신저 개인공간이 없어요. 그래서 공간을 마련해 주고 근무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편성했죠. 주 72시간 일할 필요 없이, 50시간을 기본으로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했어요. 연장 근무는 개인의 선택 옵션으로 붙였어요. 또 휴게 공간도 마련했죠.

띵동에는 휴게공간은 물론, 무려 수면실(!)까지 있다.

리: 메신저도 그렇지만 상담원 관리도 쉽지 않을 듯 한데 어떻게 하셨습니까?

윤: 콜센터 운영하다 보면 센 고객들 때문에 상담원의 정신적 고통이 심하거든요. 이걸 근절할 자신은 없지만 근무환경 개선을 통해 해소하고자 노력을 노력을 많이 했어요. 보통 콜센터 직원은 성과치가 있어요. 그거 도달 못하면 회사에서 잘리거나 불이익 받게 되는데, 콜은 퀵과 달리 인센티브나 평가를 없앴어요. 대신 자포스 벤치마킹 많이 해서 고객에 대한 책임권한을 부여했죠. 클레임 상황에 가이드를 내리는 게 아니라, 재량껏 고객 불편사항 처리할 수 있게 했죠. 또 출근 시간과 근무 시간도 좀 자율적으로 재편성했고요.


리: 이렇게 하다 보니 회사가 100명이 됐고 업계 선두가 됐다…

윤: 아직 선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상황은 아니지만 이 업계 내에서의 리더십은 갖추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해주세요’보다 주문 수와 규모가 2배 이상이고 ‘푸드플라이’와도 비슷한 수준이니까요.



6. 그가 150억에 회사를 넘기지 않은 이유: 비전과 미래


리: 이제 직원 100명짜리 회사를 이끌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키워 나가려면 뭔가 변화가 필요할 듯 한데…

윤: 올 초… 배달의 민족, 요기요를 비롯한 몇 군데 회사에서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이 있었어요. O2O를 지향하는 곳은 거의 다 한 번쯤 찔러 본 것 같아요.


리: 얼마에 팔라고 합니까?

윤: 150억이요.


리: 얼마요?

윤: 150억.


리: 왜 안 팔았습니까? 150억은 남자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돈이라 생각합니다만…

윤: 그건 제 인생 바뀌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니까요. 구성원과의 약속도 있었고… 우리가 그리는 비전이나 이런 게 더 크다고 봤어요.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리: 어떤 비전의 차이?

윤: 구체적 인수 제안한 곳들은 배달에서도 아주 특정 카테고리, 전체 요식업의 15% 정도를 중개하는 걸로 시장이 커졌잖아요? 우리는 배달이 아닌 다른 요식업은 물론 생활편의 O2O 카테고리를 수년 간 해왔어요. 이쪽으로 시장이 훨씬 커지리라는 자신감도 있고요.


리: 어차피 인수 제안한 곳도 확장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윤: 그렇죠. 단순 주문 중개만으로는 비즈니스가 제한적이니 오프라인으로 확대해서 O2O 강자가 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겠죠. 그래서 이제 인수제안을 거절했어요. 어차피 앞으로는 그들과 경쟁이 불가피할 테니.


리: 배달의 민족은 기존 주주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겠는데요?

윤: 기존 주주 관계가 유지되는 게 서로간에 불편할 수 있었죠… 적어도 우리에게는 불편한 일이었어요. 우리 주주로 참여하고 있게 되면, 사업 진행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요. 이후 투자 문제도 그렇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 계약 내용이 있거든요.


리: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윤: 투자 해지 의사 전달했어요. 결국, 기존 투자의 5배를 상환하는 걸로 합의 봤고요.


리: 님 현금 없잖음?

윤: 30억 엔젤 투자를 받아서 줬죠.

그래봐야 협박 한 번 하면 뜯을 수 있는 돈.

리: 투자를 받는 것만큼이나 엎는 것도 큰 일인데, 느낀 점은?

윤: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흔히 FI(단순 재무 투자)와 SI(전략 제휴 투자)를 구분하잖아요? SI는 정말 신중해야 하겠다는 가르침을 얻었죠. 부정적 이야기는 아니에요. 투자가 절실했고, 또 배달의 민족으로부터의 투자가 큰 도움이 됐으니까요. 다만 신중한 사업, 계약 검토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FI는 투자한만큼 회수 못하면 끝인데, SI는 의도가 있어요. 목적이 있어서 투자한 거고 목적에 부합하지 않았을 때 상대에게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요.


리: 톡 까놓고 얼마면 팔았을 겁니까?

윤: 일단 300억 불렀어요.


리: 안 팔겠다는 이야기군요(…)

윤: 그래서 의사전달을 분명히 했어요. 밸류에이션 문제가 아니라고. 그간 제대로 앞도 못 보고 회사를 운영했는데 이제서야 멀리 보인다고. 지금 회사를 팔게 되면 그 경험을 못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앞으로 가보고자 하는 갈증이 있다고… 작년까지 머리도 못 들고 운영에 급급하다가 이제 와서 플랫폼을 구축하며 우리도 메이저 될 수 있다는 꿈을 차곡차곡 쌓았는데 이를 포기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띵동이 꿈꾸는 이상을 펼치고 세상에 드러내놓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리: 본인 월급은 제대로 챙겨 갔나요?

윤: 3년 이상 안 받다가 요즘은 받고 있어요. 매월 평균 2-3천 적자 운영을 했으니…


리: 그래서,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윤: 국내 O2O시장이 이제 막 열리고 있는 것 같아요. 가장 성공적 사례가 카카오택시죠. 앞으로 더 다양한 영역에서 기회가 열릴 것이라 보고 있고… 향후 우리가 온 디멘드, 주문형 영역에서 절대 강자가 되고자 합니다. 회사의 어떤 철학이나 비전이 단순 지표 중심 성장이 아니에요. 고객 접점에 있는 종사자들 혁신으로 시장 확대하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우리 업계 서비스 종사자들 수가 정말 많은데, 많이 열악하고 불공평한 상황에 놓여 있어요. 단순 교육이나 그런 걸로 서비스 질을 높이기 어려운 실정이죠.


리: 계속해서 종사자, 구성원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하면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

윤: O2O 서비스라는 게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가져만 간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서비스 질적 변화도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O2O 사업자들이 많이 간과해요. 우버나 다른 성공사례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서비스 자체 질 높이고 온라인에서 처리하고… 이런 질적 변화가 필요해요. 이를 이끌기 위해서는 전체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축인 종사자가 자신의 일을 직업으로 인식하는 마인드 개선이 필요하다고 봐요. 띵동은 그런 종사자들 처우와 보상 체계를 고도화시켜서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뻗어나갈 계획이고요.

띵동은 모든 메신저가 자신만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

리: 사업 사이즈가 엄청난데, 요즘 새롭게 뜨는 O2O 스타트업 인수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윤: 검토하고 있는 내용 중 하나에요. 예로 퀵서비스, 청소 등 홈케어 서비스와 같은 영역들은 계속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다만 투자를 받아도 당장 인수를 고려할 사이즈가 아니라서, 인수보다 제휴나 협업 관계 통해서 카테고리 전문화하려는 계획입니다.


리: 그간 가장 많은 영향, 혹은 가르침을 준 곳은 어디인가요?

윤: 역시 배달의 민족이죠.


리: 돈 꽂아준 분이 최고다?

윤: 돈의 문제는 아니에요. 배달의 민족과 함께 하며 그 과정 통해 배우는 게 많았어요. 우리가 2억 투자 받은 게 배달의 민족이 80억 밸류로 시리즈 A 투자를 마무리한 직후였어요. 그때만 해도 배달의 민족 전체 구성원이 30명에 불과했죠. 그 이후 30배 성장하는 걸 옆에서 지켜봐 왔고, 그 과정을 눈으로 보면서 느낀 게 컸어요. 또 그쪽 디자인, 기획, 영업인력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여기에 동기부여도 됐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리: 그래도 현실적으로 150억 거절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윤: 사실 전 두 번째 사업을 엑시트할 때, 그러니까 건물을 팔았을 때 100억을 한 번 만져봤어요. 물론 그 돈이 제 주머니에 그대로 꽂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직접 운영하고 관리했으니 100억이 목표는 아니었었던 거죠. 다른 사람들이 어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크게 와닿는 숫자는 아니었어요. 물론 상당히 유혹이 됐죠. 혹시라도 나중에 얼마나 크게 후회할까 두려움도 있었고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배경에는… 남들 다 똑같이 하는 이야기지만 팀원, 구성원… 우리 메신저들과 콜센터 직원들에 대한 믿음, 책임감이 있었어요.

애인이 있는지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닙니까?



7.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 아닌 조언


리: 아무튼 이쯤 되면 성공한 인생이라 볼 수 있는데, 새로 사업하는 분들께 조언을 해주고 싶다거나 한 것이 있다면…

윤: 글쎄요… 조언… 솔직히 하지 말아라…


리: 사업하지 마?

윤: 그건 너무 부정적인 것 같고, 제가 일을 몇 차례 하다 보니 열정으로 다 되는 건 아니더라… 본인이 사업을 하는 게 맞는지, 성향 파악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리: 사업가의 성향이 어때야 할까요?

윤: 전 개인적으로 사업적으로 사업자가 가져야 할 덕목 중 가장 큰 미덕이 인내심이라고 봐요. 참고 견딜 줄 아는 인내심이 정말 중요한데, 이거 준비 안 된 사람이 많아요.


리: 인내심이라면 주로 어떠한…

윤: 제가 몇 억의 빚을 두 차례 져봤지만, 돈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불안하고 어려워도 돈 때문에 고통스러웠기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그게 가장 큰 참을성을 요구해요. 그럼에도 조급증, 빨리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을 이겨야 하고… 그런 스트레스 속에서 참고 견딜 수 있는, 그런 역량이 필요해요.

강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리: 저도 자영업자지만 말은 쉽지요.

윤: 맞아요. 말은 쉬운데 그 상황 처해보면 자유로울 수 없죠. 사람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무시 못하고, 대외적으로 대내적으로 위기가 찾아오면 정말 절망적으로 여겨지죠.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상황에 맞춰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마냥 참고 기다려서 될 것도 아니니 돌파구는 찾아야 하지만, 그걸 찾는 건 쉽지 않고…


리: 그래도 우수한 인력이 똥값인 대한민국이니, 능력으로 커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윤: 역량 하나로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예로 개발이나 마케팅 능력이 아무리 특출나다고 해도 그렇게 중요할지… 오히려 사업가로서는 인내심, 사고의 유연함, 이런 게 영향 많이 미치지 않나 싶네요.


리: 그렇다면 그 기질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윤: 전 성향의 차이라 생각해요. 키운다기보다 학창시절, 사회… 그때 형성된 성향이 그 이후 사업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리: 참으로 공허한 이야기군요(…)

윤: 저도 멘토질을 싫어해서… 이런 이야기 꺼내기 조심스러운 게 결과가 잘 되어서 선배로 하는 이야기 같은데, 저도 여전히 그 과정 안에 있음을 전제하고 이야기할게요. 요즘 O2O 창업이 많아서 새로 시작하는 분들이 많이 찾으러 와요. 띵동이 물류 영역의 인프라 가지고 있다 보니 매칭할 부분이 많으니… 많이들 찾아오는데 한두가지만 믿고 시작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어요. 본인 기획, 개발력, 팀원들의 맨파워만 믿고 무작정 뛰어드는 분들이…


리: 그분들에게 필요한 게 뭘까요?

윤: 본인 서비스를 깊게 이해하려면 필드에서 직접 경험하는 게 최고죠. 청소 서비스 한 번 안 해본 사람들이 경쟁자 없고 선도업체 없다고 뛰어드는… 자신과 팀원의 역량을 믿고 서비스 만들고 시작하는 분들이 있죠. 이런 건 시장조사한다고 보이는 건 아니에요.

리: 운도 준비된 놈한테 온다…

윤: 사실 저도 맨땅에 헤딩했으니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옳다 그르다 말은 못 하겠고… 그렇게 보면 그냥 무작정 부딪히며 문제 해결하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워낙 케바케인데, 그러다 보니 기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인내력의 중요성은 정말 어디에나 맞아 떨어지니…


리: 그래서 창업자에게 하고 싶은 말 요약: 아몰랑.

윤: 개인적 의견 덧붙이면 최근 창업하기 좋은 세상이라 이야기하는데, 주식시장처럼 좋다좋다 할 때가 끝물 아닌가 싶어요. 시작해서 시드머니 받기는 좋아도 성장시키기에는 경쟁이 치열해서, 기회가 줄어드는 게 아닐까 싶고… VC 많이 만나봤는데 카테고리별로 1, 2, 3위까지는 다 정리돼 있고, 여기는 시리즈 A까지는 다 들어가 있어요. 역으로 투자할 데 없다고 이야기들 하더라고요. 세상에 아주 새로운 서비스는 없으니.


리: 뭐랄까, 금수저도 아닌데 여기까지 온 것 보면 참 용합니다. 요즘 잘 나가는 창업자는 집이 잘 살고 학벌 좋은 사람 위주인데…

윤: 음… 일단 저희 집이 가난하긴 했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는 잘 살았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좀 모종의 이유로 집을 제대로 말아먹었는데… 오히려 이게 제 생존력을 많이 높여주게 됐죠. 뭔가를 잘 하는 것과, 끈질기게 살아남는 건 좀 다른 거라… 그리고…


리: 그리고?

윤: 이건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희 집은 돈이 없지만 와이프 집은 돈이 많아요.


리: ‘성공의 1원칙: 원래 부자다’에 이어 ‘성공의 2원칙: 와이프가 부자다’가 성립 되는군요.

윤: 그렇다고 제가 뭐 와이프 등쳐먹거나 돈을 땡겨쓴 건 아닌데… 그래도 애가 둘이잖아요? 제가 망해도 최소한 애들 밥은 안 굶기겠다… 이런 건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보통 결혼하면 창업하기 힘들고, 또 창업해도 스트레스 많이 받는데 거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으니. 창업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 투성인데 조금이라도 심리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으면 좋죠.

그 손오공도 치치 앞에서는 노답이었다.

리: 마지막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사람도 많이 뽑을 텐데, 이런 놈 필요하니 지원해라… 는 게 있다면?

윤: 좀 웃기게 들리겠지만 제 사람 보는 첫 번째 기준은 인성이에요. 저도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다 보니 대충 알겠더라고요. 눈빛이나 말하는 거나 얼굴에 살아온 과정도 담겨 있고.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마윈이 한 이야기인데 역량보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성과 태도를 갖춘 사람이라면 그 자체로 충분하고 훌륭한 능력이라 생각해요. 이런 사람들이라면 언제든지 지원 환영합니다.


리: 감사합니다. 고기 먹으러 갑시다.

윤: 마음이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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