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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이지 않은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

평균적이지 않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란, 그를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끊임없이 발명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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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남편과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한다. 태어난 아이가 만약 손가락이 하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배우는 것이 더디거나 시력이나 청력이 낮다면? 아주 뚱뚱하거나 키가 작다면? 아이의 이러한 ‘남들과 다름’에 대해 스스로는 어떻게 이해하고 아이에게는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나 자신이 평균과 멀지 않은 삶을 살아와서겠지만, 이런 물음들은 막막함을 안겨준다. 나와 아이가 간신히, 혹은 타고난 낙천성으로 ‘차이’를 ‘특별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한들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는 사회에는 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평균적이지 않은 존재를 사랑하게 된다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에 더욱 답 없이 맴도는 질문들만 반복하던 때, 우연히 읽게 된 기사가 자코모 마차리올이라는 한 이탈리아 청년의 이야기였다.

그는 지난해 3월 ‘세계 다운증후군의 날’에 <The Simple Interview>란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한다. 영상을 틀면 10살 내외로 보이는 한 소년이 정장을 차려 입고 인터뷰를 하러 나서는데, 소년의 말과 행동은 어딘가 굼뜨고 발음은 정확하지 않다.

그가 하는 대답 역시 기대를 빗겨간다. 소년의 답은 너무 짧거나 엉뚱하며, 대뜸 면접관에게 사탕을 먹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한편 질문과 답 사이사이로는 파스타를 만들거나 뛰어 노는 소년의 일상이 배치된다. 인터뷰의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질문에는 담길 수 없는 소년의 천진함과 순수한 매력이 이러한 편집을 통해 드러나고, 영상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끝난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그들만의 아주 특별한 세상이 존재한다.

오직 당신의 시각으로만 타인을 보려 하지 마라.

소년의 이름은 조반니, 영상을 편집해 올린 자코모 마차리올의 동생이었다. 조반니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데, 형인 자코모는 다운증후군과 같은 병명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동생의 매력을 보여주고,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틀에 박힌 인식에 균열을 내기 위해 영상을 만들어 올린 것이었다.


영상은 순식간에 20만 뷰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고, 형은 곧 둘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한국에는 <아이큐 50 내 동생, 조반니>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됐다.)

그의 책은 말하자면, ‘평균적이지 않은 존재’를 사랑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다수라는 건 하나의 힘으로 작용한다. 다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삶은 ‘평균’이고 ‘보통’일 뿐만 아니라 ‘정상’, ‘일반’, ‘기준’이 되고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삶은 ‘비정상’, ‘특이’, ‘예외’가 된다.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그 말들에 이물감을 느끼며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의 언어 자체가 다수의 삶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책을 들고 있는 조반니와 자코모 형제

그러므로 평균적이지 않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할 말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존재를 설명하는 이미 있는 일상적인 말들은 피할 수 없이 편견에 물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편견으로부터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 자신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편견을 가진 다수와 끝없이 마주해야 함을 의미한다.


자코모 마차리올의 <아이큐 50 내 동생 조반니>는 이 곤경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쳐온 궤적을 담고 있었다.



첫 번째 스텝, ‘다운증후군’이라는 병명 넘어서기


자코모는 크게 두 번의 위기를 겪는다. 첫 번째는 처음 동생의 존재와 맞닥뜨렸을 때다. 작고 찢어진 눈에, 평평한 목덜미, 네 개의 발가락, 입 밖으로 늘 나와 있는 혀. 여섯 살 자코모는 갓 태어난 동생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아본다.


동생의 ‘다름’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던 그는 엄마가 읽던 책에서 ‘다운증후군’이라는 말과, 조반니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의 사진을 발견하고 동생의 비밀을 풀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빠에게 달려가 동생이 ‘병’에 걸린 것이냐고 묻는다. 


아마 자코모가 그 말을 발견한 책에는 다운증후군이라는 말이 이런 식으로 설명되어 있었을 것이다. “다운증후군은 가장 흔한 염색체 질환으로서, 21번 염색체가 정상인보다 1개 많은 3개가 존재하여 정신 지체, 신체 기형, 전신 기능 이상, 성장 장애 등을 일으키는 유전 질환이다…”


그러나 아빠는 조반니의 병에 대해 확답하기를 거절한다.

우리는 의학적으로 조반니가 병에 걸렸다고 말할 수 있지. 하지만 (…) 자코모, 중요한 건 조반니는 조반니라는 거야. 조반니의 증후군이 아니라 조반니 바로 그 자체가 중요하단다. 조반니는 성격, 취향,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어. 우리 모두처럼. 엄마와 아빠는 조반니가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네게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 거야.

의학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자신은 조반니가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알쏭달쏭하게만 느껴지는 아빠의 대답은 아들에게 동생의 병 이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전체와 평균을 기준으로 정상의 테두리를 그어놓고 그 밖으로 벗어난 특성들만을 헤아리는 것이 의학의 방식이라면, 아빠는 그런 보편적인 명명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조반니의 특수성에 주목하라고 하며 스스로도 그렇게 한다. 자코모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언어로 확정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이 알쏭달쏭한 가르침을 자코모가 처음부터 모두 이해했던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방식을 자코모도, 그의 형제들도 나름대로 소화한다. 자코모가 남동생이 생기면 같이 할 거라고 벼르고 있었던 텀블링이나 축구는 할 수 없었지만, 가정의 따뜻한 질서 속에서 그는 자신의 동생은 조금 특별할 뿐이라 받아들이며 평화로운 유년을 보낸다.



두 번째 스텝, 타인들의 시선 넘어서기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코모는 새로운 위기를 맞이한다. 아이들에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세계의 급격한 확장이다.


중학생이 되면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분리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해가려 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와 관계가 생겨난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자코모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의 시선으로 조반니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자코모는 동생에게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설명하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바로 동생이 있다는 것을 숨기는 것이다. 그는 타인들로부터 사랑 받고 싶은 마음과, 동생은 사랑받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과, 그런 동생을 모르는 척 하고 싶은 욕망과, 동생을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분열된다.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온 어느 날, 엄마와 외출한 줄 알았던 조반니가 집에 있는 걸 보고 자코모는 동생을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엄마는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 사랑하기 위해서 누구를 선택하는 것과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내 곁에서 선택한 적 없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사랑을 선택했다면 사랑받을 사람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 나는 내 안에서 균열이 발생한 것을 감지했다. 그 균열의 이름은 죄책감이었다.

그러던 차, 우연한 계기로 자코모가 가장 믿고 아끼는 친구들 – 스카와 브루네가 조반니와 마주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이 연주하고 있는 지하실에 동생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자코모는 안절부절못하지만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동생과 함께 부르던 노래를 마저 부른다. 


한편, 휴가지에서는 어리게만 생각했던 여동생 앨리스가 조반니의 어눌한 말투를 놀리려는 다른 아이를 제대로 골려주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앨리스는 능청스럽게 자신들은 그린란드에서 온 탐험가 가족이며, 그가 조반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그가 그린란드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코모의 깨달음은 두 가지였다. 먼저 세계는 가정의 질서만큼 온화하지도 않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가혹하거나 끔찍하기만 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세상의 차가운 시선으로부터 조반니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분노와 겁박이 아니라 앨리스가 생각해냈던 것과 같은 기발하고 참신한 언어, 능청스러움과 유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 스텝, 새로운 언어 발명하기


앨리스가 조반니를 감싸준 일이 지나고 얼마 있지 않아 자코모는 누텔라를 사러 갔다가 자신이 보지 않는 사이 선반에 있던 누텔라를 몽땅 카트에 쓸어담은 동생을 보고 망연자실한다. 기운이 빠지려던 찰나, 자코모는 일전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결론을 내린다. 조반니의 통제불가능한 행동들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그런 동생을 아무리 가리려 해도 다 가릴 수 없는 햇살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누구지? 누가 나와 조반니 사이의 관계를 각색하는 것일까? 나와 조반니와 세상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작가였다. 나에게는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끝낼지 결정할 책임과 권한이 있었다.

책의 3부는 자코모가 그렇게 새롭게 얻은 책임과 권한으로 조반니와, 조반니와 자신의 관계와, 조반니와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풀어내고 각색한 참신한 언어들로 가득하다. 조반니는 정신지체와 발달장애로 행동이 통제되지 않는 구제불능의 아이가 아니라 햇살이었고, 자유 그 자체이며, 자코모의 슈퍼히어로였다.

실수로 넘어지는 척하면서 땅에 쓰러지는 조, 연기를 하기 전에 모든 연기 동작을 기록하는 조, 할머니의 요리 재료인 식용 달팽이를 살려주는 조, 조에게 손에 쥐고 있는 인형인지 진짜 늑대인지를 물으면 ‘진짜 인형’이라고 대답한다.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서 아이들의 발을 걸고 넘어진 아이를 쓰다듬으면서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보는 조. (…)

조반니는 그 모든 것이었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유 그 자체였다. 조의 자유로움은 모든 방식으로 기능했다.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다. 조는 나의 슈퍼히어로가 되기 위해 돌아왔다. 조는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새 언어를 얻었을 때, 자코모는 비로소 동생에게 모자란 놈이라 욕도 할 수 있게 됐다. 자유롭게 조반니를 향해 나쁜 놈, 바보, 교활한 놈이라 외치며 자코모는 자유를 느꼈다. 더 이상 그 기성의 언어들이 자신의 마음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분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장애인 동생에게 모자란 놈이라 할 수 있어?”

상관없다. 내 동생은 수영장에서 나에게 휴대전화를 던졌다. 나쁜놈. 내 동생은 내 지갑에서 동전을 훔쳤다. 나쁜놈. 내 동생은 자기 여자친구에게 내 농구실력이 형편없다고 말했다. 나쁜놈. 그래, 내 동생은 나쁜놈, 게다가 바보, 교활한 놈이다. 어쩌면 세 가지 다 일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도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내 동생을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들까지도, 온전히 자코모의 소유가 된 것이다.



평균적이지 않은 존재를 사랑하는 일이란 끊임없이 새 언어를 발명하는 일


자코모의 이야기는 평균적이지 않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란 그 평균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끊임없이 발명해내는 일임을 알려준다.


그 일은 주어져 있는 익숙한 언어와 작별하고 여전히 그 언어를 사용하는 다수와 불화하는 일이기에 수고스럽고 진통이 따르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건 우리 모두가 아이들에게 그토록 가르치고 싶어 하는 ‘세상의 기준을 성찰하는 법’이고 ‘스스로 사고하는 법’이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서 진정으로 자유롭게 사는 법’이기도 하다.


자코모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온전히 자코모 혼자의 힘만으로 이룬 드라마는 아니었다. 자코모가 동생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다운증후군이라는 병으로 조반니를 규정하기를 거부했던 자코모의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가르침을 자코모보다 더 유연하게 소화하며 그에게 가르침을 준 앨리스와 키아라(누나), 자코모의 두려움을 반성할 수 있게 해준 오랜 친구 비토, 갑작스런 조반니의 등장에도 놀라지 않고 함께 노래해준 스카와 브루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이들이 있었기에 자코모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들을 보며 한국 사회의 편협과,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조반니를 찍은 자코모의 영상은 필터가 없는데도 따스하고 애틋한 무언가가 있다. 그가 진통을 겪으며 아프게 얻은 시선의 힘일 것이다. <The Simple Interview>를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한다. 내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데, 그 원작이 될 <아이큐 50 내 동생, 조반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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