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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의 조건

아재와 꼰대의 경계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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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개그는 언제나 있었다


요즘 아재개그가 인기다. 한 케이블방송의 요리예능 프로에 출연한 전문요리사를 통해 확산되었다고 하지만, 예전부터 비슷한 유머는 있었다.


어딘가 눈치도 부족하고 감도 늦어서 뭐든 반 박자쯤 늦는 사람들은 ‘덩달이 시리즈’ ‘사오정 시리즈’ 같은 유머들의 공통된 소재였다. 그리고 단어의 발음이나 운을 이용하는 말장난도 개그콘서트의 ‘우비삼남매’ 코너에서 지겹도록 울궈 먹은 소재가 아니던가.


사실 그래서 이 주제는 ‘세대차이’라는 문제를 건드린다. 아재개그는 지금 아저씨 세대가 젊은 시절에 즐기던 농담들이었다. 그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고 어색하지만 동시에 (최근에 이따위 농담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참신하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도 하기 때문에 부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재개그는 그저 고대 유물발굴과 재활용의 의미만 담고 있지는 않다.

아재의 탄생


90년대 말, <춤추는 대수사선> 같은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흥미로웠던 것은 거기 등장하는 중년남자들에 대한 처우였다. 거기서는 조직 내의 중년남자 캐릭터들을 대하는 젊은 캐릭터들의 태도가 당시 우리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곳의 중년 아저씨들은 어딘가 한 박자 늦고 답답한, 그래도 가끔씩 제 구실을 하는 존재였다. 젊은이들은 그 중년 선배들을 어려워하지 않았고 동등하게 대하거나 심지어 구박하기까지 했다. 당시 젊은이에 속했던 나는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통쾌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한 박자 늦고 답답하기는 한국의 중년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들은 아예 무능하거나 나태하기조차 했다. 게다가 컴퓨터와 인터넷이 이 뒤떨어져가는 세대와 새로운 세대 간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감히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를 핀잔주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선배였고, 상급자였으며, 뭘 모르는 주제에 호통치고 윽박질러도 되는 권력자였고, 함부로 일을 저지르고 뒷감당은 나 몰라라 내빼고 나서도 돌아와 뻔뻔하게 다시 큰소리를 쳐대는 무책임한 진상들이었다.


그들은 요즘 말로 하자면 악성 꼰대였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당시 일본 드라마에서 보던 양상을 최소한 TV 속에서는 볼 수 있게 된 거다. 최소한 꼰대를 존경해야 할 선배로 모시지 않고 그저 꼰대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발전이다.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재들…

그러니까 아재개그가 뜬다는 건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에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쪽에 속한다. 한국의 조직 속에 적어도 이전과 같은 꼰대들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물론 여전히 대다수의 중년남자들은 꼰대들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무조건 그들을 떠받들거나 짓밟히거나 끌려 다니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고, 젊은 세대는 그들을 무시하거나 혐오하기 시작했다는 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재개그를 칠 수 있는 중년은 그나마 나은 존재들이다. 아재개그와 꼰대개그의 차이는 개그의 내용이 아니라 웃음의 내용에 있다. 아재개그는 그 썰렁한 개그를 던진 사람 자체를 향해 웃어줄 수 있다.


반면에 꼰대개그의 웃음은 결코 그 개그를 던진 사람에게 향하지 못한다. 썰렁한 개그에는 웃음을, 그걸 던진 작자에게는 존경을 바쳐야만 그 자리가 원만히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재와 꼰대를 나누는 기준일까?



아재와 꼰대의 경계엔

정신의학에서 환자의 치료가능성을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병식’ 즉 ‘자기 병에 대한 인식능력’의 여부다. 자신에게 뭔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신이 비정상적인 상태이며 지금 상태로는 남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환자는 지금 그의 상태가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치료될 가능성이 있다. 치료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남들에게 덜 위험하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정상이며, 당신들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환자는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심지어 주변인들과 사회에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치료를 거부하고 계속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재와 꼰대, 이 둘을 가르는 기준 역시 병식의 차이다. 자신이 이제 아저씨의 범주에 들어섰으며, 아무리 해도 젊은이들과 함께 자연스레 어울릴 수는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는 조금 덜 꼰대스러워진다. 덧붙여 자신의 사고방식이 3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지금에 와서는 틀렸거나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인식까지 하고 있다면 그는 꼰대가 될 위험성에서 좀 더 멀리 벗어난다.


이러한 통찰력에 덧붙여, 이렇게 공룡처럼 뒤떨어진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을 받아들이고, 관조하며 놓아버릴 수 있다면 그는 아재개그의 문턱에 들어선다. 마지막으로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마음 편히 웃을 수 있고, 남들이 자기를 보고 웃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는 아재개그 상급자로 올라설 수 있다.

이건 꼰대다(...)

무엇이 될 것인가


요컨대, 알량한 자존심과 권위의식을 포기하고 자신을 웃음거리로 내놓을 수 있는 자신감과 배포를 가진 자만이 아재개그로 젊은이들에게 인정받는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비록 니들보다 굼뜨고 낡았지만 여전히 내게는 나만 가지고 있는 유용한 지식과 기술이 있고, 너희들이 넘볼 수 없는 지위를 확보했다’는 자신감과 여유가 필요한 일이다.


어쨌거나, 이제 한국의 중년 남자에게는 꼰대로 남아 진상을 피울 것이냐, 최소한 동등한 대화는 가능한 아재가 될 것이냐의 선택지가 생겼다. 전자 보다는 후자가 더 어렵지만, 더 나은 길이다. 나 역시 같은 중년의 한명으로서 모쪼록 전자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레나 2016. 10.)


원문: 싸이코짱가의 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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