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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버리면 이 모든 게 사실이 될까 봐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다

조회수 2020. 10. 14. 13: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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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한 후로도 아기는 몸을 뒤집지 못하고 눈도 맞추지 못해 다시 병원에 가게 되었다. "아기가 경직성 사지마비, 즉 뇌성마비를 앓고 있습니다."

이제 엄마라는 이름으로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지 2년, 모든 것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도 저와 잘 맞았고, 4년간 연애한 남자친구는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적어도 그에게 저의 임신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는요. 임신 소식에 그는 초조해하더니 이후 나를 쌀쌀맞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남기고 헤어진 뒤로 나는 아이를 혼자 낳았습니다. 세상에 나온 아기는 체중 미달과 호흡 곤란으로 곧장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습니다. 


퇴원한 후로도 아기는 몸을 뒤집지 못하고 눈도 맞추지 못해 다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기가 경직성 사지마비, 즉 뇌성마비를 앓고 있습니다.”


울어버리면 이 모든 게 사실이 될까 봐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습니다. 아주 나쁜 꿈이기를 바랐습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 조금이라도 마음을 편히 가졌다면 아이가 건강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고, 아이만 보면 미안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잘한다는 병원은 전국 방방곡곡 다 찾아다녔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기가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에 있던 엄마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걷거나 구구단을 외우거나 자신의 손으로 밥을 먹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곳 엄마들은 아이가 어제보다 치료를 잘 받은 것에 감사했고, 지난달보다 손가락을 조금 더 움직인 것에 감사해하더군요. 그 모습이 제게 큰 감동과 힘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밤에 잠자리에 누워 남몰래 흐느끼기도 하고, 인생의 무게에 쓰러질 것 같은 나날도 있었을 테죠. 그러나 그들은 모두 엄마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삶을 채워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며 나는 알게 됐습니다. 내겐 아기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옹알이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사랑한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입과 안아 줄 수 있는 팔, 어디든 갈 수 있는 발이 있었습니다. 또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이 내 안에 있었습니다.


때로는 딸아이의 맑은 눈을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곤 합니다. 


자식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말이 너무나 절실하게 저를 울릴 때도 있습니다. 문득 나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머릿속이 어지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삶을 갉아먹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내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이가 반에서 1, 2등을 다투지 못하더라도, 설령 일반 학교에 가지 못하더라도 이 세상엔 분명 내 딸이 해낼 몫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그걸 멋지게 해낼 수 있도록 나는 앞을 향해 더 당당히 걸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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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충북 청주시에서 김현수님이 보내 주신 사연이었습니다.

목소리서포터즈 녹음
본 콘텐츠는
좋은생각 목소리 서포터즈 1기
'전은희'님의 목소리로 녹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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