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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 속 아기를 '뜬금이'라 불렀다. 뜬금없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조회수 2020. 3. 9.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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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임신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묻자 아빠가 다시 한 번 말해 주었다.

뜬금없는 선물

나는 20년을 외동딸로 살았다. 부모님은 작은 기사 식당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하루는 엄마에게 술잔을 권하는데 웬일로 엄마가 거절했다. 나는 이유를 듣고 깜짝 놀랐다. 


“엄마 임신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묻자 아빠가 다시 한 번 말해 주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 배로 눈이 갔다. 아직 홀쭉했다. 아빠는 그저 벽만 바라봤고, 엄마는 오열했다.


나는 배 속 아기를 '뜬금이'라 불렀다. 뜬금없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때마다 엄마는 발끈하며 '선물이'라고 부르라 했다. 언쟁 끝에 '뜬금없는 선물'이란 의미로 금선이라 이름 지었다. 


낯선 이름은 금세 입에 찰싹 달라붙었다. 금선이를 부를 때마다 집안이 밝아지는 듯했다. 


의사는 초음파를 볼 적마다 인간의 생명력에 감탄했다. 엄마는 말없이 모니터 안의 금선이를 바라보았다. 


“낳을 수 있겠죠?” 


엄마가 넌지시 묻자 의사는 웃으며 손잡아 주었다.


배가 부를수록 엄마의 고통도 커졌다. 허리가 아파 엄마는 종일 침대에서 지내야 했다. 아빠는 홀로 식당을 운영하느라 점점 야위었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온 아빠는 곤히 잠든 엄마를 보면서 대신 아플 수 없다는 게 미안하기만 했다.


이른 새벽 조용히 일어나 양말 신는 아빠에게 엄마가 말했다. 


“오늘도 미안해요.” 아빠는 엄마를 토닥이며 “20년 만에 신혼 같네.” 하고 웃었다.


엄마 나이 48세, 아빠 나이 53세에 둘째 딸이 태어났다. 엄마는 노산임에도 빠르게 회복했다. 


우리 셋은 처음으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서로에게 더 힘이 되지 못한 걸 미안해하며.


금선이는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다. 삶의 예상치 못한 일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끈끈하고 눈물겨운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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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경기도 안양시에서 서수민 님이 보내 주신 사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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