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으로 선입견이 생겨서일까, 친구를 만나면 부정적인 모습만 보였고, 결국 고향에 가도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조회수 2020. 1. 6. 12:1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그러는 사이 나는 자격증을 따고, 어학연수를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얼굴 봐야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단짝이 있다. 체육 실기 시험을 앞두고 2단 줄넘기를 못하는 나를 도와주고, 살을 빼기로 결심했을 땐 같이 운동도 해 주었다. 


졸업 후 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친구는 지방 대학에 진학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맥주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첫 여자 친구가 생겼다며 만날 때마다 연애 이야기를 했다. 


일 년 후 친구가 여자 친구와 헤어진 날 일이 벌어졌다. 혼자 술을 마시다 옆자리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서 폭력을 썼고, 그로 인해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된 것이다. 


그 사건으로 선입견이 생겨서일까, 친구를 만나면 부정적인 모습만 보였고, 결국 고향에 가도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는 사이 나는 자격증을 따고, 어학연수를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망설이다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새벽 2시, 검정 점퍼를 입은 친구가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최근 택배 일을 시작했는데 조금 전 마지막 배송을 마쳤단다. 새벽 6시에 다시 나가야 한다고. 왜 이렇게 무리해서 왔느냐는 말에 친구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다른 게 중요하니? 얼굴 봐야지.”

 

순간 뒤통수라도 맞은 것 같았다. 누구보다 친구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였다. 


먼저 싸움을 건 적도 없었고,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 편에 섰던 친구였다. 그런데 난 단 한 번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 친구의 단점만 찾아내려 했다. 부끄럽고 미안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친구는 새벽 3시가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차의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

지금까지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박재형 님이 보내 주신 사연이었습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