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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생각

그때 저 멀리 검은 형체가 보였다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해안 도로였는데 인적이 없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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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선 해무가 끼면 아무도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문이란 문은 모조리 닫고 걷히길 기다린다. 어느 여름, 안개가 자욱한 날 올레길을 걸었다.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해안 도로였는데 인적이 없어 무서웠다. 그때 저 멀리 검은 형체가 보였다.


그는 올레꾼이었다. 인상과 말투가 강했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서 좋았다. 우리는 함께 길을 걷다 오름을 오르기 위해 마을로 들어섰다. 그는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며 간식을 사 주었다.


소나무로 가득한 초입은 가팔랐고 안개가 짙었다. 빠르게 계단을 오르는 그를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천천히 와요. 나한테 맞추지 말고 자기 속도로 걸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나는 그의 말대로 쉬엄쉬엄 걸어갔다. 안개에 젖어 축축한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를 듯했다.


내 나이 스물세 살, 주변에는 이미 취직한 친구가 많았다. 휴학하고 여행을 다녀온 나는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 도망치듯 제주로 왔다. 그러곤 올레길을 걸었다.


정상에 다다르자 그가 초콜릿을 건넸다. “고생했어요.” 우리는 올레길을 완주한 뒤 조심히 다니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여행 후 남을 따라가기보다 내 길을 걷자고 결심했다. 나는 조바심 날 때마다 그가 한 말을 떠올린다. 자기 속도에 맞춰 걸어도 괜찮다는 그 말을, 지금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춘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엄지희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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