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다시 지도를 펼쳐 보곤 한다

조회수 2019. 3. 19.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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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 376킬로의 길을 52만여 걸음으로 걸어 고향에 도착했다.

몇 해 전 우연히 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한 시각 장애인이 미국에서 열린 극한 마라톤을 완주하는 모습이 나왔다. 큰 감동을 받은 나는 고향까지 걸어가 보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아내는 무릎을 걱정하며 반대했다. 딸들도 정년퇴직과 회갑을 기념한 해외여행을 권했다. 그러나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하랴 싶어 퇴직한 다음 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도보 여행을 시작한 나는 열흘 동안 376킬로의 길을 52만여 걸음으로 걸어 고향에 도착했다. 승용차로 갔다면 7만 원의 기름값이면 될 것을 열 배에 가까운 돈을 들였다. 


그러나 하루 열 시간씩 걸으며 많은 것을 얻었다. 차창 너머로 보기만 했던 황금빛 들판에선 잦은 농약 살포로 다 사라진 줄 알았던 메뚜기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았고, 길가에서는 코스모스를 비롯 한 가을꽃에 입맞춤할 수 있었다. 


아무 잡념이 생기지 않아 머리가 맑아졌고 혼자만의 자유도 만끽했다. 내 나라이면서도 지나치지 못했던 곳을 걸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아름다운 문경 새재를 걸을 땐 방랑 시인이 왜 생겼는지 이해되기도 했고, 가족과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도움 준 사람들이 떠올라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용기를 얻은 나는 요즘 다시 지도를 펼쳐 보곤 한다. 새로운 여행길을 그리면서 말이다. 여행 갈 때 왜 힘들게 걸어서 가느냐고 묻던 친구에게 이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먹어 보지 않고서야 어찌 그 맛을 알까?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이 있다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이석도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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