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탈 없이 연애하던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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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한 회사에 취업했다. 그리고 한 여자를 만났다. 어느 회사 비서실에서 인정받으며 일하는 똑똑하고 예쁜 친구였다.
연애한 지 1년 되었을 무렵, 그녀가 홍콩 출장을 다녀오면서 고급 만년필을 선물했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무척 기뻤다. 빙판을 부드럽게 가르는 스케이트 날처럼 백지를 스치는 만년필의 느낌은 써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른다.
별 탈 없이 연애하던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이제 그만 만나자는 메모와 함께.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하늘이 무너졌다. 그녀를 평생의 동반자로 생각하던 터라 더 기가 막혔다. 왜? 뭣 때문에? 그만 만나자는 말 외에 어떤 설명도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는지 돌이켜 봤다. 아무래도 그녀를 섭섭하게 하거나 화나게 한 적이 없었다. 만나서 얘기하자고 계속 메모를 전했지만 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 지나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녀가 선물한 만년필을 부러워하던 친구가 자기한테 팔면 안 되느냐고 졸랐다. 홧김에 그냥 가져가라고 주었다. 친구는 그러기엔 비싼 물건이라며 다음 날 10만 원을 보내 주었다.
그녀와 만년필을 떠나보낸 후 몇 달이 흘렀다. 이해할 수 없는 이별에 몸과 마음이 지쳐 갈 때 친구가 만년필을 도로 건네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가지면 안 될 것 같다. 돈은 돌려주지 않아도 돼. 그동안 잘 썼다.”
돌려받은 만년필로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언젠가 다시 연락 올 거라 믿으며 매일매일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를 썼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반 후 그녀가 연락했다. 우리는 커피숍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미안하다며, 잘 지냈느냐고 물었다. 그러곤 그간의 일을 얘기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었던 미용 기술을 배웠단다. 집안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내가 알면 헤어지자고 할 듯해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며, 제대로 배우기 위해 미용 기술이 앞선 일본에 있었다고 했다. 힘든 순간마다 내가 보고 싶었지만 미용실을 열 때까지 참겠다고 다짐하면서 눈물로 싸웠다는 그녀.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봐.”
나는 만년필과 그동안 쓴 편지를 건넸다. 편지 한 장을 채 읽기도 전에 그녀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울었다.
“결국 이 만년필이 우리를 이어 주었네.”
“응, 그래서 너도 돌아온 것 같아.”
그녀는 지금 20년째 나와 살고 있다. 멋진 아들, 예쁜 딸과 함께.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유인환 님의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