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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전 재산일지도 모르는 그 돈에 할머니의 세월이 보였다

조회수 2019. 2. 19.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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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제 할머니 보러 올 테니 저의 나무가 되어 주세요."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 생일상을 차려 주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시간 전에 많은 어르신이 모였다. 커피를 한 잔씩 주자 내 손을 붙잡고 연신 고맙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일찍 온 건 마음이 고파서라는 걸 나는 안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에게 눈길이 멈췄다. 할머니는 미역국을 먹다 말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할머니의 거친 손을 잡았다. 그러자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영감 죽고 50년 만에 받는 생일상이라……. 시집오던 첫해에 영감이 미역국을 끓여 줬는데, 이걸 보니 영감이 생각나 넘어가질 않아.” 

“할머니, 제가 영감 해 드릴게요.” 

“진짜가? 진짜?”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 할머니는 미역국을 한 그릇 뚝딱 비웠다. 나는 할 일을 뒤로하고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기로 했다.


“새댁아, 나는 나무가 최고 부럽데이. 봄엔 꽃 핀다고 사람들이 보러 오제.  여름엔 덥다고 나무 밑에 모이제, 가을에는 단풍 본다고 찾지 않나?” 


이에 내가 말했다. 

“제가 이제 할머니 보러 올 테니 저의 나무가 되어 주세요.” 


할머니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껄껄 웃었다. 행사가 끝나고 차를 타려는데, 할머니가 다가와 내 손을 꼭 잡더니 무언가를 건네주고는 휙 가 버렸다. 그건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짜리였다. 


눈물이 났다. 어쩌면 전 재산일지도 모르는 그 돈에 할머니의 세월이 보였다. 돌아오는 내내 나는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김경아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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