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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슬그머니 담 넘는 것을 보았다

사건이 있던 날도 그랬다.

22년 전, 나는 여러 모임 때문에 고향 갈 일이 많았다. 사건이 있던 날도 그랬다. 새벽 세 시쯤 모임이 끝나 집에 가 보니 부모님 집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부모님을 깨울 수 없어 조용히 담을 넘었다. 사랑방은 아버지가 끓이는 소죽 덕에 적당히 후끈했다. 나는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부모님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아침을 먹었다. 한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어머니는 자꾸 나를 보고 웃고, 아버지도 입이 근질근질해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사연은 이랬다. 지난 새벽, 귀가 밝은 어머니는 잠에서 깼고, 누군가 슬그머니 담 넘는 것을 보았다. 나를 도둑으로 착각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깨웠고, 아버지는 젊은 도둑을 혼자 당해 내지 못할 거라 생각해 마을 이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장은 곧바로 온 동네 사람을 모았다. 모두 손에 몽둥이며 갈퀴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들고 뛰쳐나와 사랑방을 둘러싼 후 밖으로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런데 한참 지나도 인기척이 없어 문을 박차고 들어갔더니 웬걸, 도둑은 없고 내가 드르릉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단다.


그 후 한동안 마을에선 사랑방 젊은 도둑 이야기가 술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안줏거리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고향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꺼내며 한바탕 웃곤 한다. 오늘 술자리에서는 꼭 부모님에게 먼저 연락해야겠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류경희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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