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사람인데 안 춥겠냐. 그냥 춥다고 해라."
2014년 12월, 해병대인 나와 동기들은 육군에서 한 달간 교육받았다.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 훈련장에 도착해 컨테이너로 들어가자 한기가 들어 절로 몸이 꼬이고 손을 비비게 되었다.
그때 석유난로가 보였다. 우린 난로를 빙 둘러싸고 열기를 느꼈다. 그런데 10분 후 “비비빅.” 하는 소리와 함께 '연료 부족'이라는 불이 들어왔다. 다들 한숨 쉬며 난로 곁을 떠났고 몇몇은 애꿎은 난로를 흔들었다.
그 순간 교관이 들어와 “니들 안 춥냐? 난로 틀어!”라고 말했다. 연료가 없다고 하자 교관은 우리에게 계속 추운지 물었다. 동기 한 명이 “해병은 추위를 타지 않습니다!” 하며 일명 '해부심'을 부렸다.
그러자 모두 우렁차게 춥지 않다고 했다. 이에 교관은 피식 웃으며 “너희도 사람인데 안 춥겠냐. 그냥 춥다고 해라.”라면서 전화를 걸었다. 석유가 없으니 가져오라는 통화였다.
20분 후 병사 한 명이 들어왔다. 오 씨였던 그 일병은 우리에게 “해병이 춥나?”라고 물었다. 이번에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아니라고 답하니 “그럼 석유 필요 없겠네.” 하며 나가는 게 아닌가. 곧 올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았다.
모두 그날 일을 오일(Oil)병 사건이라 불렀다. 감기에 걸린 우리는 크게 깨달았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면 안 되구나…….'
나는 지금 칼 같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근무를 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사건 뒤로는 강추위가 와도 견딜 만하다. 설마 그것마저 훈련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생각해 본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이원용 님의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