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아무 걱정 마세요."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고속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늦춰 나도 속도를 줄였더니 뒤차가 그만 내 차를 박고 말았다. 내려서 보니 내 차 뒷부분이 찌그러졌고 뒤차 범퍼 역시 심하게 망가졌다.
뒤차 운전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였다.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녀는 한눈팔다 그리됐다며 사과했다. 그러곤 매달 조금씩 갚을 테니 경찰을 부르지 말아 달라는 게 아닌가.
내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박았다고 우길 수도 있는데 자기 잘못이라는 걸로 보아 마음씨 착한 할머니 같았다. 또 삼십 년이 넘은 듯한 차와 검소한 옷차림을 보니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 같아 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비공식적인 일 처리를 싫어해 경찰을 불렀다. 경찰에게 다르게 말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할머니는 자기 잘못이라고 말했다.
며칠 뒤 수리비 견적을 내 보니 백오십만 원 정도가 나왔다. 보험 회사에 전화하려는 순간, 눈물 흘리던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할머니에게 부담을 주는 건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착한 사람에게 착하게 대하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겠지.'라고 생각하며 보험 회사에 전화해 내가 수리할 테니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직원이 이상하다는 듯 왜 그러느냐고 묻기에 그냥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아무 걱정 마세요.”라고 전해 달라 했다.
그러자 직원이 말했다.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신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이중희 님의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