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형편에 먹고사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
홈 쇼핑 방송에서 뽀얀 사골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침샘을 자극했다.
“엄마, 주문할까?”
“그런 소리가 나오니? 지금 우리 형편에 먹고사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 나이 사십에 변변한 직장도 못 잡고, 남들은 애 낳고 잘만 사는데. 쯧쯧.”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화가 났다. 못난 자식 가슴을 저렇게 후벼 파야 직성이 풀릴까.
“알았어요. 이제 그만해. 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 능력 있는 부모 만나 평생 잘 사는 애들도 있단 말이야.”
소리를 지르고 바로 후회했지만, 끓어오르는 감정을 누를 길 없어 현관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다. 속상한 마음에 친구와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
다음 날, 자책하며 냉장고를 여는데 큼직한 뚝배기가 있는 게 아닌가. 아! 그것은 사골 국물이었다. 나는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찾은 듯 기뻐하며 보글보글 끓여 얼른 밥을 말았다. 그러나 맛이 영 밍밍했다. 소금을 넣어도 마찬가지였다.
'집안 형편이 이렇게 안 좋았구나. 얼마나 조금 넣고 끓였으면 이리도 맛이 나지 않을까.' 순간 가슴이 아렸다. 오후에 아르바이트하면서도 머릿속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늦은 시간, 지친 몸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이게 뭐야?”
“소리 지를 땐 언제고 왜 다정한 척이야? 사골 먹고 싶다며.”
“사골? 엄마가 끓여 놓은 거 아니었어? 다 먹었는데.”
“뭔 소리야? 그게 무슨 사골이야. 국 끓이려고 쌀뜨물 받아 놓은 건데. 에라이! 이 녀석아. 진짜 넌 왜 그러니.”
어머니의 어이없는 실소가 터졌다.
“그럼 내가 쌀뜨물에 소금 넣어 먹은 거였어? 난 또 엄마가 끓인 건 줄 알고 맛없어도 두 끼나 먹었단 말이야.”
덩달아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김동신 님의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