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을 비우고 자연 그대로 두었다

조회수 2018. 10. 20.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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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게 시골 생활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시골 생활 첫해 봄, 감나무, 살구나무, 모과나무 등 수많은 묘목을 마당에 심었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걱정스레 봤지만 나는 행복했다. 열심히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돌본 덕에 나무가 잘 자라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내 잘못을 깨달았다. 햇빛을 충분히 받으려면 나무 사이 간격이 적당해야 하는데 나무가 마냥 작으리라 생각해 그 간격을 고려하지 않고 심었던 것이다. 


불과 3년도 안 돼 나무를 옮기거나 베어야 했다. 또한 집 가까이 심은 은행나무나 개수나무, 느티나무가 태풍이 불 때 쓰러져 피해를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쉽지 않은 시골 일에 건강까지 해쳐 한 해 집을 비웠다. 다시 돌아오니 정성 들여 가꾼 터전이 야산 폐가처럼 돼 있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자연 그대로 두었다. 나무 심고 밭을 일구는 데 욕심을 버렸더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텃밭에서 볼 수 없던 야생화가 피고 새들이 잡목 사이 둥지를 틀었다.


손길 닿지 않는 곳에서 자연은 제 역할을 했다. 매년 제거해도 끈질기게 살아나는 칡넝쿨의 생존력은 실망보다 인내를 배우게 했다.


올가을엔 탐스러운 감이 가득 열려 지나는 사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모두 자연이 일군 것임을 잠시 잊고 내가 키운 감인 양 우쭐거리기도 했다.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게 시골 생활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실수할진 모르지만 그 뒤엔 새로운 기쁨과 지혜가 주어진다는 진리를 알기에 나는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련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이광한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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