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구나.'

조회수 2018. 9. 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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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나는 보초 근무 시 총을 손에서 뗀 적이 없었다.

나는 1961년에 입대해 강원도의 백골 부대에 배속 받았다.

북한군 요새인 오성산이 코앞에 보이는 최전방 부대였다.


어느 날, 보초를 서면서 총을 벙커 안에 내려놓고 이런저런 향수에 젖어 있었다. 그때였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육사 출신 호랑이 포대장이 코앞에 다가오는 것이었다.


총을 가져올 여유가 없었다. 벙커를 청소하는 싸리 빗자루가 보여 얼른 집어 들어 “총 대신 어깨총! 백골! 보초 근무 중 이상 없음!”이라고 신고했다. 


포대장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추운데 고생이 많구나. 보초 서는 데 어려움은 없느냐?”라고 묻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위기를 넘겼지만 그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호랑이 포대장에게 총 대신 빗자루 들고 신고했기 때문에 당장 영창 신세나 특별 사역 혹은 첫 휴가 반납 등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자 모두 연병장에 모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야간 순찰한 포대장의 지시 사항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연병장에 모여 마음을 졸이는데 그가 말했다. 어제 불시에 야간 순찰을 해 보니 추운 날씨에도 보초 근무를 착실하게 서 마음이 한결 놓인다면서, 이곳은 최전방이므로 반드시 손에서 총을 놓지 말고 수칙을 잘 준수하라며 날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뒤 나는 보초 근무 시 총을 손에서 뗀 적이 없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질책과 체벌보다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아량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교훈은 지금까지 내가 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고정오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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