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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오늘 아버지랑 자전거 타고 학교에 가자

조회수 2018. 7. 5.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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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빛바랜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아버지가 삼 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난 뒤, 엄마는 저를 삼촌 집에 맡긴 채 오빠와 동생만 데리고 재가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불쑥 나타나자 엄마는 아버지에게 미안하셨는지 “얼른 아빠라 부르지 못해?” 하며 빗자루를 드셨죠. 


하지만 낯선 사람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입을 꾹 다문 채 맞고만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와 빗자루를 던지고는 저를 살며시 끌어안으셨습니다.


“이제 내가 네 아버지다. 여기에서 함께 살자.” 그때 아버지의 품은 참 따뜻했습니다. 그날부터 아버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생이 생겨 식구가 늘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저를 먼저 챙기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기숙사에서 지내다 집에 갔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일어서는데 아버지가 낡은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고 여기저기 손보셨습니다. 


그러고는 제게 “우리 딸, 오늘 아버지랑 자전거 타고 학교에 가자.” 하셨습니다. 저는 신났지만 오르막길이 많은 데다 두 시간 동안 페달을 밟은 탓에 아버지의 빛바랜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2원을 꺼내 제 손에 쥐여 주고 가셨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차비를 한 푼이라도 아껴 제게 주려고 자전거로 데려다주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납니다. 


일곱 식구를 먹여 살리는 힘든 삶이었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 사랑과 정성 덕분에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손봉금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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