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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당일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장례를 치러야 하니 목돈을 찾아 놓으라는 것이었다.

1남 2녀의 장남인 남편을 만나, 동서 하나 없던 난 늘 외로웠다. 여장부 같은 어머님은 내게 잔소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아버님은 달랐다. 시댁에 가면 내 구두를 광이 날 만큼 닦는 것은 물론, 명절엔 내 곁에 슬그머니 와 설거지를 도와줬다. 


그런 아버님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건강 검진을 하러 갔다 담도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은 것이었다. 믿기지 않는 사실에 모두 눈물만 흘리자 아버님이 말했다. 


“나는 살 만치 안 살았나.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슬플 것도 없으니 신경 쓰지 말거래이.”라며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치료를 거부하고 등산 다니며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6개월  뒤 머나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임종 당일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장례를 치러야 하니 목돈을 찾아 놓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님에게 말했다. “장례비는 저희가 마련해 두었으니 걱정 마세요.” 그러자 어머님이 옆구리에 차고 온 보자기를 슬며시 풀면서 갑자기 대성통곡하는 게 아닌가.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노. 니 아부지가 떠나기 며칠 전에 뜬끔없이 은행에 가자고 안 카더나. 그러더마는 '통장에 내 장례 비 천오백만 원 있으니께 얼른 뽑아라.' 카믄서 이래 돈뭉치를 주고 갔다. 이거 눈물 나서 어찌 쓸꼬.” 


남편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평생을 버스 한번 안 타고 걸어 다니면서 돈을 모아 당신 장례비를 마련해 놓고 떠난 것이었다. 


이제 아버님이 떠난 지 오 년, 지금도 아버님의 따스한 사랑이 그립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최성임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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