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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버지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조회수 2018. 4. 17.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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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평소 건강하던 아버지가 언젠가부터 기침했다. 감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넉 달이 지나도 기침은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병원에 모시고 갔다. 


의사는 감기라고 했다. 한데 무슨 감기가 이토록 오래 갈까싶어 간호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간호사가 화내며 말했다. 


“답답하시네요. 감기요? 무슨 감기를 넉 달 넘게 앓습니까? 아들 맞아요?”

하더니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의사에게 갔다. 


아버지는 다시 검사받았고, 검사 결과는 폐렴 초기였다. 아버지는 2주 정도 입원했고,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로 구두 상품권을 내밀었다. 답례하고 싶던 차에 그녀의 낡은 구두를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버럭 화냈다. 


“아저씨! 지금 이런 거 줄 때가 아니에요. 요사이 아버님 간 수치가 안 좋아요. 아들 맞아요?” 

그냥 봤을 땐 천사 같았는데 성질이 보통은 아니었다.


그 뒤 나를 볼 때마다 “환자복 안 갈아입히실 거면 가세요. 제가 갈아입히게.”, “과일 좀 사 오세요. 비타민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데 순 빵뿐이네요.”하고 심부름까지 시켰다.


퇴원 날. 그 간호사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새벽같이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병실 앞에 도착하니 그녀와 아버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집에서 꼭 따뜻한 물 드세요. 찬물 드시지 말고요. 배는 항상 따뜻하게 덮는 거 잊지 마세요.”

“아가씨는 참 천사여! 아가씨 아버지는 좋겠어. 이런 딸을 둬서.”


잠시 뒤 그녀가 나가자 나는 병실로 들어갔다. 이미 짐은 싸 놓은 상태였다.


“언제 이렇게 짐을 다 싸셨어요? 제가 다 할 건데.”

“저 아가씨가 일찍 와서 해 주더라. 그리고 이것도 사 줬어.”


순간 놀랐다. 아버지 발에 새 신발이 신겨 있었다. 내가 준 상품권으로 아버지 구두를 산 모양이었다. 병실을 나오는데 일하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어르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잠시 뒤 날 보며 이야기했다. “주의 사항 말씀드릴게요.” 순간 그녀를 놓치면 영영 후회하겠다는 생각에 용기 내 말했다.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들어도 잘 모르거든요. 저희 집에서 매일 일러 주시면 안 될까요?”

난 프러포즈 아닌 프러포즈를 했고 당황한 그녀는 그냥 들어갔다.


그날 이후 병원을 직장처럼 들락거리며 그녀에게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하며 애정 공세를 펼친 끝에 삼 개월 만에 연인이 되었고, 사귄 지 넉 달 만에 결혼했다. 하지만 우리를 연결해 준 아버지는 두 달 뒤 병세가 악화돼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네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고맙다.” 하며 아내를 꼭 안아 주던 아버지. 난 아버지에게 배운 게 있다. 사랑은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기현주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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