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 때 사 준 외투 기억 안 나요?

조회수 2018. 4. 3.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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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 그리 말할걸. 서울로 올라올 때 엄마가 사 준 옷이라고 말이다.

‘옷이 어디 갔지?’  

옷장을 샅샅이 뒤져도 외투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부피가 큰 겨울옷은 부산 집에 두고 왔는데 그 옷도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혹시 집에 그 옷 있어요? 모자에 복슬복슬 털 달린 거요.”

“그런 게 어디 한두 개니? 모르겠는데.”

“잘 생각해 봐요. 서울 올 때 사 준 외투 기억 안 나요?”

“아, 뭔지 알겠다. 찾아보고 전화 줄게.”


진즉 그리 말할걸. 서울로 올라올 때 엄마가 사 준 옷이라고 말이다.


서울로 면접 보러 간다고 하자 아빠는 결사반대했다. 딸을 객지에 혼자 보낼 순 없다는 것. 공주처럼 귀하게 자란 것도 아닌데 새삼 왜 그러느냐며 나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엄마에게만 허락을 구한 뒤 서울행 기차를 탔다.


하지만 막상 합격 전화를 받은 날엔 기쁨도 잠시, 갑자기 두려웠다. 서울로 가면 모든 지원을 끊겠다는 아빠의 호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마만 나를 응원했다. 서울에 오기 전, 엄마는 백화점 여성복 매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취직한 회사가 여의도에 있지 않니. 근처에 방송국도 있는데 길 가다 카메라라도 들이대면 어쩔래?” 

손사래 쳐도 엄마는 날 데리고 다니며 이 옷 저 옷을 갖다 댔다. 그러다 마네킹에 입혀 놓은 외투가 눈에 쏙 들어왔다.

 

옷을 입어 본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이 흐뭇했지만 가격표를 보곤 깜짝 놀랐다. 덥석 사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벗었다. “생각보다 별로네요.” 하지만 엄마는 예쁘다며 외투를 다시 내 팔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 


“괜찮다는데 왜 그래요? 이 가격 주곤 안 살래요.” 엄마는 그제야 옷에 붙은 가격표를 확인했다. 순간 엄마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이 옷 계산해 줘요.” 내가 만류해도 엄마는 기어이 카드로 결제했다. 그러곤 “10개월이요.” 하고 점원에게 속삭였다. 외투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나오면서 마음이 어찌나 무겁고 기쁘던지…….


“엄마, 외투 찾았어요?”

“그래, 큰방 장롱 안에 있더라. 너 비 오는 날은 이 옷 입고 돌아다니지 마. 검은색이라 눈 어두운 사람은 못 보고 지나간다.”


전화를 끊고 나자 가슴이 먹먹했다. ‘엄마 어쩌죠? 난 나이 들어도 엄마 사랑이 담긴 그 외투를 계속 입고 싶을 것 같은데…….’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조서연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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