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한번 만나 볼게요."

조회수 2018. 3. 9. 17: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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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우리는 사장님이 마련한 자리에 모른 척 나갔다.

나는 어릴 때 조용한 농촌에서 자랐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집안 대대로 살던 토박이여서 서로를 잘 알았다.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회사에 다녔다. 사장님은 마을에서 공로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었다. 사무실에는 중학교 선배도 있었고,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그런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배 주임이라고 불렀다. 그의 부모님은 경상도가 고향인데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칠 년 되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원 졸업 후 부모님 곁에 내려와 이 회사에 취직했다고 했다. 


우리는 일 년 동안 함께 일하며 정이 들었고, 아무도 모르게 사내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 싶지만 말이다.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 손잡고 걷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사무실에서 아침 인사를 건네는 것도 조마조마했다. 사실이 드러나면 사원들의 시기를 한 몸에 받을 것은 물론이요, 워낙작은 동네인지라 소문이 자자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비밀 연애가 힘들지만은 않았다. 집 방향이 같다는 핑계로 함께 퇴근하며 동료들을 따돌리는 재미도 있었고, 점심시간에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같은 메뉴를 선택해 마주 앉아 먹는 즐거움도 누렸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지냈을 때 난관에 부딪혔다. 우연히 그의 부모님을 만났는데, 사귀는 사이라고 했더니 나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의 결혼이 무리라는 생각에 상심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대뜸 배 주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중매하려고. 배 주임 부모님께 참하고 똑똑한 아가씨가 있으니 소개해 주겠다고 했거든. 정식으로 자리를 마련해 보려는데 자네 마음이 어떤지 알고 싶어서.”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대답했다.

“그럼 한번 만나 볼게요.”


주말에 우리는 사장님이 마련한 자리에 모른 척 나갔다. 시부모님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장님은 하를 한껏 칭찬했다.


결국 시부모님은 사장님에게 인정받은 나를 승낙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사내 커플 1호로 편안하게 연애하다가 일 년 후 결혼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박정미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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