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나는 오늘도 따뜻하게 물을 데운다

조회수 2017. 11. 27. 09:15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내 이웃을 위한 간이 찻집을 열기 위해


작년 겨울, 남편과 나는 외딴섬으로 이사했다.

30년 동안 꾸린 장사를 접고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섬의 겨울은 찬바람만 휘돌았다. 내가 꿈꾸던 전원생활은 이토록 쓸쓸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소극적이던 나를 점점 더 외톨이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홀로 차를 마시는데 거실 창밖으로 할머니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집 맞은편에 있는 보건소에 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를 어째, 보건소장님의 차는 보이지 않고 문도 굳게 잠겼다. 할머니는 언 손으로 문을 몇 번이나 당기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찬바람에 속수무책 서 있는 할머니를 보니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창문을 벌컥 열고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추운데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아직 삼십 분은 더 있어야 열어요."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나는 내친김에 보건소까지 달려가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그 작고 단단한 손을 잡으니 나로 모르게 코끝이 아렸다.


"할머니, 차 한잔 드시면서 기다리는 동안 제 말 동무 좀 해주세요. 제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그럼 그럴까? 아이고, 추운데 욕 볼 뻔했어. 정말 고마워."


그날 할머니는 나의 첫 번 째 이웃사촌이 되었다. 할머니는 다른 친구들도 소개시켜주고 봄이 되자 더덕이며 도라지 씨를 나눠 줘 남편의 농사 투지를 북돋았다. 나는 할머니를 통해 외로움을 씻고 섬의 아름다움도 조금씩 알아 갔다.


오늘도 나는 주전자에 물을 데운다. 행여 할머니들이 이른 아침부터 보건소를 찾을까, 언 손을 녹여 줄 차를 준비하는 것이다. 날 풀리면 집 안에 작은 탁자를 마련해 간이 찻집을 차려도 좋겠다. 차 한잔씩 대접할 때마다 내 안에도 사랑의 씨앗이 자라날 것이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최영자 님의 사연입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