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출구이니가? 조그만 까가 주세요

조회수 2017. 9. 26.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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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무슨 말인지 헷갈렸으나 휴대 전화를 사려는 사람 같아 답했다. "4번 출구 제과점 정문입니다."
직장을 옮기면서 업무상 휴대 전화를 바꿔야 했다. 채 1년도 안 된 터라 아까웠지만 인터넷에 저렴한 가격으로 올렸다.
며칠 뒤, 사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몹시 추웠던 어느 주말, 지하철역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몇 번 출구이니가?”
순간 무슨 말인지 헷갈렸으나 휴대 전화를 사려는 사람 같아 답했다.
“4번 출구 제과점 정문입니다.”
그는 까만 피부의 동남아사람이었다. 타고 온 차 옆 좌석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한국 사람인가요?”
“아니요. 필리핀 사람이니다.”
“어디서 왔어요?”
“오이도요. 어머니에게 휴대 전화 사 드리고 싶어요. 조그만 까가 주세요.”
그러고는 차 뒤편을 가리켰다. 뒷좌석에서 오십 대 후반인 듯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처음부터 싸게 내놓은 물건이기에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쉬워하며 휴대 전화를 받고 차에 올랐다.
떠나는 차를 바라보며 지난여름, 아내와 오이도에 갔던 추억이 스쳤다.

'여기서 오이도까지 기름값만 해도 왕복 2만 원은 들 텐데. 그것만 깎아 줬어도 가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가족과 따뜻한 국물이라도 마셨을 것을……. 내가 너무 옹졸했나?'

집에 오는 길, 자꾸만 그들이 떠올라 못내 미안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김진하 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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