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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연탄이 집을 나갔다

조회수 2017. 9. 12.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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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우리 집 연탄이 조금씩 없어진다고 했다. 광을 들락날락하는 사람은 어머니와 셋집 아주머니, 가끔 연탄을 갈러오는 나뿐이었다.

겨울 문턱에 이르면 어머니에게는 두 가지 고민이 칼바람처럼 다가왔다.

겨우내 쓸 연탄을 쌓는 일과 김장이었다. 반찬거리 살 형편이 안돼 겨울 밥상에 오르는 건 김치가 유일했다.
어머니는 김장 날 이웃을 불러 남은 배추와 소를나눠 주고 따뜻한 오징어 국과 밥을 대접했다. 살림이 넉넉했다면 수육을 내놓아 구색을 갖췄겠지만 남의 집 얘기일 뿐이었다. 혼자 사는 동네 어른들에게도 김치를 갖다 주는 어머니를 보며 배려를 배웠다.
연탄은 형편에 따라 50장, 100장, 200장씩 광에 들였다. 당시 단칸방에 세 든 집과 광을 같이 썼다. 좁디좁은 곳을 눈대중으로 나눠 연탄을 쌓았다.
한번은 어머니가 우리 집 연탄이 조금씩 없어진다고 했다. 광을 들락날락하는 사람은 어머니와 셋집 아주머니, 가끔 연탄을 갈러오는 나뿐이었다. 의심할 만했으나 어머니는 아주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나는 잠자코 있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 나간 연탄이 다시 돌아왔어.”

어머니는 아주머니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탄을 가져갔다 다시 채워 둘 거라 믿었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 남편은 일용직 노동자로 수입이 일정치 않았다.
얼음장 같은 바닥에 아기를 재울 수 없어 우리 집 연탄을 가져다 쓰고 나중에 채운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다시 한 번 그 겨울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윤인기 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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