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고갯마루, 이런 바람, 이런 사람

조회수 2017. 5. 18.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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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면 겹겹으로 둘러선 산도 보였다. _본문 中

지리산 둘레길, 창원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당산나무 쉼터였다.


계단식 논과 예쁘장한 집, 그 사이 구불구불한 길까지 보여 눈과 마음이 시원해졌다. 눈을 들면 겹겹으로 둘러선 산도 보였다. 바람 시원해서 낮잠 자기 좋고, 나무 그늘 깊어서 술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나는 주모 아주머니가 허기나 때우라고 내준 붉은 감자를 먹고 지리산이라 이름 붙은 막걸리도 마셨다. 맛이 일품이었다. 주모 아주머니는 김치까지 한 보시기 냈다. 막걸리를 제외하고 다 공짜였다. 나는 감자에 김치 한 쪽을 얹어 먹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또 언제 이런 고갯마루, 이런 바람, 이런 사람을 만나나 싶었다.


갈 길이 멀었지만, 창원 마을에서 하루 묵어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던 차에 마을 아주머니 한 분이 올라오더니 평상에 합류했다. 아주머니는 일부 몰지각한 둘레 꾼을 흉보고, 가뭄 걱정도 하고, 뼈 빠지게 농사지어 봤자 수매가 떨어지면 1년 고생 말짱 꽝이라고 신세 한탄도 했다. 처음의 서먹하던 분위기는 얘기가 거듭될수록 누그러들었다.


마침내 나는 내내 원하면서도 망설이던 것을 제안했다. 그네 타기였다. 수령이 수백 년은 돼 보이는 나무에 그네가 달렸다. 새하얀 그넷줄이 얼마나 길고 튼튼해 보이던지! 진작부터 타 보고 싶어서 침이 꿀떡꿀떡 넘어가던 참이었다.

마을 아주머니가 선뜻 나섰다. 그다음 내가 타기로 했다. 


나는 있는 힘껏 그네를 밀었다. 그네가 빙글빙글 돌았다. 나도 그네를 따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주모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내가 갑자기 사라졌단다. 몇 초 뒤 정신을 차려 보니 고갯마루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발을 헛디뎌 소리도 없이, 뚝 떨어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팔만 다쳤다. 긁힌 상처에서 피가 났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아주머니가 그네 타기는 그만두자며 평상으로 가 버렸다.


“아주머니! 그래도 탈 거예요. 이런 그네를 어디서 타 보겠어요?” 보다 못한 주모 아주머니가 나섰다. 아주머니가 내 등을 힘껏 밀었다. 나는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다시 올라갔다 내려왔다.


눈을 감았다. 아주머니 팔은 엔진, 그네는 비행기구, 붉은 감자는 연료. 나는 하늘을 날았다.마음 좋은 지리산이 온 힘으로 나를 밀어 올렸다.


*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구경미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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