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장땡이야' 스피드런의 세계
- 대정령, 메탈슬러그 2 스피드런 中-
세상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임을 할 때도 드러나는 부분인데, 제작자가 의도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채 정석대로 플레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부러 '병맛' 플레이를 하는 유저도 있죠. 가끔은 '인성질' 시전하는 유저도 볼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다양한 플레이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그중에는 스피드런이 있습니다. 스피드런이란 가능한 빠르게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역시 유저마다 플레이 방식이 다양하죠.
사실 스피드런은 오래전부터 유저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2003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퀀스 브레이킹(Sequence Breaking)'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는데, 빠른 클리어를 위해 게임 내 발생하는 이벤트 영상이나 컷신을 스킵 하거나 기존 루트가 아닌 우회하는 방법 등을 '시퀀스 브레이킹'이라고 합니다.
당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한 유저는 '메트로이드 프라임'의 아이템 획득과 관련된 글을 게시했습니다. 중력 슈트와 아이스빔 아이템을 얻으려면 이 게임에 등장하는 '서다스(Thardus)'라는 보스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는데,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죠.
제작자가 의도한 '게임의 흐름(Sequence)'을 유저들이 '무너트려(Break)'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난 겁니다. 현재 스피드런의 대부분이 이와 유사하다는 점을 보아 '시퀀스 브레이킹'이 모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죠.
스피드런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100% 스피드런'으로 가능한 빠르게 게임 내 사이드 퀘스트, 수집 요소나 아이템 등 할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100% 완료하는 방식이죠. 가장 정석대로인 플레이 방법으로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이 시스템에서 파생된 'Low% 스피드런'도 있는데, 한계를 넘어선 플레이 방식이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이템 획득과 업그레이드 등 게임 진행을 위해 '최소한(Low)'의 기능만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슈퍼마리오'의 경우 파워업 기능만 제외한다던가 '젤다'에서는 일부 적들에게만 검을 사용하는 등 약간 변태적인 면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Any% 스피드런'이 있습니다. 100%와는 반대로 추가적인 콘텐츠의 클리어 유무와 상관없이 오로지 메인 퀘스트만을 빠르게 클리어하는 것이 목적이죠. 따라서 클리어 달성률이 '얼마가 나오느냐(Any)'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Any% 방식이 버그와 글리치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클리어하는 방식이라고도 말하는 유저도 있습니다. 사실, 버그와 글리치도 허용되는 수준에서 사용이 가능하긴 하다만 보통 'TAS(Tool-Assistance Speedrun)' 방식에서 자주 사용하죠.
'TAS'는 말 그대로 외부 툴의 도움을 받아 클리어하는 스피드런입니다. '에뮬레이터 조작'을 통해 강제 세이브/로드를 활용하거나 게임 속도 조절, 기존에 불가능했던 조작 방법을 활용해 캐릭터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구현합니다.
혹은 게임 데이터의 허점을 파고들어 단 '몇 초 만에' 게임을 클리어하는 방식도 나왔죠. 일반 스피드런보다는 차원이 다른 클리어 속도를 보여주기 때문에 무려 '프레임 단위'로 순위 경쟁을 할 정도입니다.
솔직히 기록을 세운다는 것이 자기만족일 수는 있겠죠. 그러나 유저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스피드런 문화는 클리어했던 게임을 다시 붙잡게 만들며, 경쟁과 도전을 통해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게임이라는 건 정말 재밌지 않고서야 한 번 클리어하고 묵혀두기 마련이니까요.
예전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를 했지만, 지금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활성화가 되어 유튜브나 트위치 등을 통해 스피드런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예 스피드런을 전문으로 하는 채널들도 등장하면서 이제는 하나의 방송 콘텐츠로 자리 잡았죠.
유저들을 통해 문화가 형성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는 다채로운 콘텐츠들이 생겨났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