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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랑고, 자발적 외톨이(?)가 살아가는 법

조회수 2018. 3. 16.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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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은 찍었지만 '나 혼자 산다'

일주일 전쯤, 아니 그보다 좀 더 됐으려나. 아무튼 듀랑고 만렙을 찍었다. 서비스가 시작된지 2개월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 꽤 늦은 편이다. 변명을 하자면, 오픈 직후 근 2주 가량 쉬었던 탓이 크다.

그래, 그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그 2주를 왜 쉬었는가.

때려치운(?) 그 놈의 속사정

오랫동안 기다렸던 게임 중 하나였지만, 시작한지 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손을 놨다. 지지부진한 기다림 끝에 해탈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즈음 출시됐기 때문일까? 뭐… 그 영향도 없진 않을 게다. 솔직히 오래 끌었던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를 꼽으라면 '사유지 비용'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쥐꼬리만한 월급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갖다 바치며 사는 인생에, 게임에서까지 월세(엄밀히 따지면 월세는 아니긴 하지만…)를 내야 하냐! …… 라는 생각에 뭔가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사유지 비용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시스템인지, 왜 도입하게 됐는지, 대체 얼마씩 나가는지 면밀하게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엔 이미 '울컥'이라는 감정으로 가득해, '사유지 비용 = 나쁜 시스템'이라는 공식이 성립한 뒤였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듀랑고를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친구 하나가 불쑥 물었다.

친구 : 듀랑고 안 하냐?

나 : 응, 안 해.

친구 : 왜? 같이 하자. 내가 요리 해줄게.

그때. 사유지 비용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 놈의 표정이란… 그거 내면 얼마나 낸다고. 그냥 일퀘만 깨도 충분히 낼 수 있는 수준인데 제대로 살펴보긴 한 거냐고. 핑계를 댈 거면 좀 그럴듯한 핑계를 대라고. 솔직하게 "귀찮다"라고 했으면 이해했을 거라고.

… 젠장. 순식간에 하기 싫어서 거짓 핑계를 둘러댄 꼴이 됐다. 인정하면 쫌생이, 인정 안 하면 뻥쟁이라니… 끝까지 안 하겠다고 버티기엔 선택지가 너무 하드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아마 이 친구와 같은 서버가 아니었다면 듀랑고 만렙을 찍는 일 따위는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일 따위도 없…지 않았을까.)


네, 뭐… 비겁한 변명일지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시작

때려치우기 전, 며칠 정도 설렁설렁 플레이 하던 시절. 나는 다른 친구의 사유지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사유지 선언 튜토리얼을 할 때 웬 바위산 근처 황무지에 땅을 가져가는 머저리 짓을 한 게 발단이었다.

배산임수 입지 좋은 곳에 터를 잘 잡았던 친구는 기꺼이 자기가 지어놓은 천막에 집을 설정하라고 해줬고, 알거지 신세가 될 뻔했던 나는 그렇게 살아남았었다. 보답이랍시고 울타리 몇 개랑 작은 상자 몇 개 만들어줬다. 

아는 건 없지만 나름 양심은 있다. 그래서 아궁이라도 더 만들어주겠다며 진흙을 찾아 헤매다가… 때려치웠다. 위에 적었던 그 옹졸한(?) 이유로.


그러니까… 대략 이런 느낌의 장소에다가 사유지를 선정했던 셈. (P.S. 스샷은 왜 찌그러지게 나오는 걸까)

그리고 내가 몇 주 잠수를 한 사이, 꾸준히 레벨을 올린 친구는 도시섬으로 이사를 갔다. 다시 접속했을 때 내 캐릭터는 텅 비어있는 마을섬 어느 물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지급 받았던 공룡인지 악어인지 헷갈리게 생긴 거죽을 뒤집어 쓴 모습으로 한껏 고독을 씹고 있는 모양새란…

"36레벨 되면 도시섬으로 올 수 있으니, 얼른 렙업해서 또 더부살이하러 와"라는 관대한 친구님 말씀. 아 잠깐만, 눈물 좀 닦아야겠다.


엄마, 나 인생 헛살지는 않았나 봐요

친구님의 은총에 감읍한 이 단순한 인간은 그 날부터 광렙 모드에 들어갔다. 처음 때려치웠던 이유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기존 사유지(가 있던 곳)에 덩그러니 남은 것들을 포장해서 가져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면 친구가 먼저 싸들고 갔겠거니 싶어, 그냥 다 버려둔 채 떠났다. 새로 사유지 만들어봤자 귀찮아질 것 같아서, 한동안 불안정섬 캠프에서 접속을 종료하는 노숙 생활을 했었다. 

그렇게 만렙을 찍었다

"만렙부터가 시작이야."

B모 사의 W모 게임 할 때 귀에 못 박히게 듣던 말. 사실 요즘 게임이라면 대부분 해당되는 거라, 듀랑고에도 여지없이 적용되는 암묵적 룰이나 마찬가지다.

만렙 전까지는 하루 온종일 옆에 켜두고 틈틈이 플레이 했었다. 하지만, 막상 만렙이 되고 나니 좀 귀찮아졌던 게 사실. 스킬 레벨업에 필요한 숙련도는 점점 많아지고, 5레벨 단위로 한 번씩 찾아오는 한계돌파(?) 연구 시간은어느덧 일 단위를 요구한다. 

몸뚱이만 만렙이면 뭘 하나. 주력으로 쓰는 궁술은 아직 50대에, 건강 최대치에 관여하는 방어는 여전히 40대. 고레벨 지역에서 위원회 퀘스트 수행하려다가 얻어터지고 골로 가신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얘요. 이 새X가 그랬어요."

주 직업인 건설부터 열심히 올리자 싶어 바위 캐다가 돌기둥 만들고, 석판재 만들고, 돌벽이나 비비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게 다~ 출시 전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봤던 건축가 소개 영상에 혹한 탓이다.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팔랑귀 인증…)

듀랑고를 잊은 채 잘 살고 있던 나를 다시 워프시킨 친구는 "어서 건설 레벨을 올려서 건물 좀 지어달라"라며 성화지만, 그래봐야 본인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접속할까 말까 할 정도로 바빠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스킬 레벨 59에서 60 올리는 연구에 3일이 필요하다는 스포일러(?)를 들은 뒤로는…


허허허허허… 될대로 되라지…

그냥 소소하게 살고 싶다

기본적으로 나는, 불만도 많고 게으른 인간이다. 게임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귀찮음이 찾아오면 뭘 하고 있던 간에 그만둬야 하는 타입이라, 민폐 끼치는 짓을 하지 않기 위해 멀티 플레이를 거의 하지 않는다. (사사게 단골이 되어 생명연장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

하지만 MMORPG라는 장르는, 그 특성상 혼자서 모든 걸 최고 수준으로 누릴 수 없게 마련이다. 건축가 테크트리를 올리고 있는 나는 무기와 옷, 도구의 대부분을 섬 장터에서 해결하는 편이다. 실용형 수리 키트 정도는 가끔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하지만, 고급형 키트를 써야 하는 시점이 오면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아직은 스킬 포인트가 꽤 남아 있으니 좀 더 키우다 보면 저것들 중 하나쯤은 자급자족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다. 워낙 게을러 터져서 언제 하게 될지는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살아있으면 언젠간 하겠지 뭐…

"어제는 집을 지었으니 오늘은 실내 화로나 하나 만들고…

내일은 침대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자꾸 친구네 집으로 귀환하기엔 슬슬 눈치 보이니까.


그동안 신세진 거 갚을 겸, 건설 만레벨 되면 부엌을 만들어줄게 친구야."


… 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부엌이 있다. 그것도 두 개나… 그래서 그냥 옆에 있는 실내화로나 수리해줬다.

'해야만 하는 게임'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 목표를 이뤄나가는 건 좋지만, 그걸 위해 무조건 빠르게! 무조건 효율적으로!를 추구하는 것도 영 귀찮다. 누군가 보기엔 느리고 답답해보일지라도, 그냥 편하게 내 스타일대로, 나만의 템포로 플레이 하고 싶다.

전화 대신 카톡으로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는 주제에, 인게임 채팅은 또 싫어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지만, 가끔씩은 지역 채팅창을 들여다 본다.

친구 신청 받아줬더니 사유지에 고급 건물을 부숴놓고 도망갔다는 사연이나, 부족에 가입해 공동 재산을 털어갔다는 사연을 보며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혼잣말을 뇌까리고 있는, 게으른 솔로 플레이어의 일상이다.


사유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원룸에서도 잘 살고 있는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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