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한국을 위협하는 '미국산 고추장'의 출격

조회수 2019. 4. 19. 15:21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이제는 한국 제품을 한국 기업만 만드는 시대는 끝났다.

미국으로 출장 갔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동네의 유명 마트 (WHOLE FOOD MARKER)에서 ‘GOCHUJANG(고추장)’이라는 이름의 제품을 발견했다. 사실 고추장이 미국에서 판매한다는 사실은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판매하는 고추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추장’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고추장을 몰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 브랜드들은 ‘코리아 칠리 페이스트’라는 단어를 쓰고 그 밑에 조그맣게 고추장이라고 적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제품에 떡하니 ‘고추장’이라고 적혀서 나온다. 이것 자체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이제는 그들도 고추장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아무도 몰랐던 그 이름이 이제는 납득 가능한 이름이 되어버린 것. 

둘째, 가장 충격적인 사실이다. 고추장을 만든 브랜드가 한국 회사가 아니었다. 이마트에서 노브랜드를 만들어 다양한 제품을 출시 한 것을 우리는 PB 제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고추장은 미국의 대형 유통사가 PB 상품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생각해보자. 고추장이 팔리지 않는다면 그들이 굳이 한국의 제품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한 마디로 그들도 이제는 ‘고추장’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데이터로 모든 것을 분석하고, 무엇이 잘 팔리는지 고객의 니즈를 정학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런 그들의 최종 결론이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에 도달했다는 것.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셋째, 제품의 가격이 정말 저렴했다. 그곳에는 미국산 ‘고추장’이 아닌 한국에서 유통한 한국산 고추장도 옆자리 코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제품이 훨씬 더 비쌌다. 용량 대비 저렴한 가격의 ‘미국산 고추장’이 큰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유통사가 직접 운영하는 마켓을 미국 전역에 보유하고 있다. 우리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다양한 루트로 제품을 깔 수 있다. 과연 이대로 라면 한국적인 것, 그 자체가 어떤 경쟁력을 가질까? 

이제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한국 제품을 한국인이 만들어내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다. 이제 전 세계의 모든 기업이 한국의 제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의 제조사들끼리 싸워야 할 때가 아니라 전 세계의 한류에 편승하려는 기업들과 싸워야 한다.


이 사실을 두 눈으로 마주하고 나는 가슴이 턱 막혔다. 아직도 많은 한국 기업들이 한국 제품은 한국 기업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한다. 미국산 고추장만 해도 그랬다. 이 제품은 완전하게 외국인에게 최적화된 고추장이었다. 

출처: 외국의 고추장 브랜드 홈페이지 사진

우선 그들은 디자인부터 달랐다. 미국 제품이 한국의 고추장 브랜드 제품보다 훨씬 더 이쁘고 실용적이었다. 생각해보자. 일단 한국 고추장은 아직도 네모난 초록통에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초록통의 고추장은 불필요하다. 그들은 설거지 거리가 나오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때문에 미국산 고추장의 경우 A1(바비큐 소스) 소스처럼 짜서 쓸 수 있도록 나온다. 그들의 생활패턴에 최적화된 형태인 것이다. 그들이 과연 우리처럼 초록통의 고추장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또 미국산 고추장은 한국산 고추장에 비해 맛도 달랐다. 우리나라 고추장의 경우 점성이 있다. 그래서 소스라는 단어 대신 페이스트라는 단어를 써왔다. 페이스트는 점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한국산 고추장은 좀 되다. 그래서 우리는 고추장을 숟가락으로 퍼서 쓴다. 그런데 외국인들도 과연 퍼서 쓰는 소스를 쓸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정말 소스 수준의 고추장을 원할 뿐이다. 한번 짜내서 요리에 들어가면 적어도 한국적인 맛을 조금이라도 음미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만 원한다. 특히 미국산 고추장의 경우 매실이나, 마늘, 참기름 등을 넣지 않아도 그것 하나만으로 요리가 완성되는 소스로 둔갑했다. 그러다 보니 갖은 재료들이 필요한 한국산 고추장은 밀릴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 미국산 고추장을 맛보고 ‘이것은 한국 것이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가 지금 제품을 누구에게 판매해야 하나? 해외 진출을 고려한다면 그 나라 사람들의 환경에 맞춰서, 그 나라 사람들이 원하는 형태로 변하고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정체되고 있고, 변화해야 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내면에 한국 것에 대한 고집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이어야 만 해.
한국에서 만들어야만 해.
한국 맛은 이게 아니야.

알게 모르게 폐쇄적인 국가에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들은 한국 고유의 것에 대한 강한 고집을 안고 있다. 하지만 해외 진출의 올바른 시작은 ‘내 생각이 모두 틀릴 수 있다’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 생각은 내가 살아온 방식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업을 할 거라면 지금껏 내가 살아온 세상을 부숴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고추장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던 것이지만 그들에게 고추장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 오른 어떤 제품이다. 그들에게 고추장은 ‘원래 있던 것, 원래 존재하던 맛’이라는 개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적인 것, 한국 회사가 만든 것이라는 오리지널리티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틀에 박힌 고집 없이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도 이제는 단단히 긴장해야 하지 않을까?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