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의 의미를 완성하는 법

조회수 2019. 5. 11.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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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이 는 양 이 양 이 해



‘첫 만남’의 의미를 완성하는 법​


첫 만남을 무슨 단어로 표현해야 할까. 첫 만남이란 단어는 사전에 정의 되어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단어이다. 내 인생의 일부를 묵직하게 차지할 기억. 그 부피감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고양이의 ‘양이’


첫 만남, 양이와 처음 만났던 날은 12월의 끝자락이었고, 하늘은 눈이 올 듯 말 듯 찌푸 려져 있었다. 양이는 주먹만 한 새끼고양이였다. 추위에 떨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난 반충동적으로 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당시의 우리 가족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양이를 데리고 왔을 때 보인 반응은 동물을 주워올 거면 차라리 개를 주워오지 그랬 냐는 반응이었다. 반려가 될 것이란 생각은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기에 이름도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어버렸다. (고양이의 ‘양이’이다. 더 예쁜 이름으로 바꿔주려 했지만 양이는 ‘양이’가 아닌 다른 이름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은 매우 미안하게 여기고 있다.) 데려가겠다는 사람도 찾아두었다.


그런데 양이는 우리 가족을 떠나지 않았다. 일주일 뒤에 양이를 데려가겠다는 누군가와의 약속은 흐지부지 없는 게 되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물병원에서 양이의 동물 수첩을 만들고 있었고 어떤 사료가 좋은지 고민하고 있었으며 반려동물 용품 판매점에서 간식과 장난감들을 고르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학종이로 개구리를 접어 놀아줬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은 세뱃돈을 털어 벽 한 칸을 다 차지하는 캣타워도 사주었다.


집에서 생선 요리를 할 때면 항상 양이 몫을 따로 떼어두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구 한 명은 ‘그러고 보니 얘 누가 데려간다고 하지 않았어?’라고 물을 법도 했을 텐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우연이 만들어 낸 소중함 


글로 남기기 민망할 정도로 밋밋한 첫 만남이다. 동물농장에나 나올 법한 극적인 구조 과정도 없었고 한눈에 반했다는 고전적인 썰도 없다. 가끔 TV에 나오는 것처럼 은혜 값은 고양이가 되어 위기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상에 양이가 끼어있었다. 몇 십 년 전부터 당연히 그래왔던 것처럼. 양이의 어떤 점이 우리 가족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아버린 것일까. 거실에 누워 있으면 배 위로 올라가 고롱고롱 거렸기 때문이었던가, ‘미치괭이’처럼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가족들을 웃게 했기 때문이 었을까.


눈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던 그 겨울, 양이와의 만남은 그저 우연이었고, 순간의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언젠간 잊혀지리라 가볍게 생각했던 기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기억이 이고 있는 무게가 달라져 버렸다. 7년 동안 양이와 함께 지내며 무미건조한 첫 만남의 기억 위로 다채로운 순간들이 쌓여갔다. 지금은 침대 옆에서 잠든 양이를 쓰다듬는 사소한 일상조차 소중하다. 이렇게 종이 한 장처럼 얇았던 하루 남짓한 양이와의 첫 만남은 수억 년동안 겹겹이 쌓아올려진 지층의 가장 밑바닥처럼 내 20대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무겁고 딱딱한 부분이 되었다.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평생 그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CREDIT​

글·사진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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