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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열아홉 살 강아지입니다​

조회수 2019. 4. 18. 2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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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파 도 사 랑 해

딸기는 열아홉 살 강아지입니다​ 

까칠한 군기반장, 딸기


그런 딸기가 작년 말부터 좀 이상하다 싶더니 올 봄부터 치매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먹는 것에 집착이 심해졌나 싶더니,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마저 잘 안 들리게 되었 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걱정스러운 건 히스테릭한 써클링(선회 증상) 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딸기의 이상행동은 제게 적잖은 충격이기도 했고, 그리고 아픔이기도 했습니다.


딸기는 열아홉 살 강아지입니다. 우리 집 대장이죠. 워낙 깐깐하고 고집불통에 예민한 성격을 가진 아이라 강아지, 고양이 동생들은 여전히 딸기를 어려워합니다.


태어난 지 40일경 제게 왔으니 우리는 이십년 가까이 같이산 셈이죠. 반려동물의 ㅂ자도 모를 때 얼떨결에 맡은 어린 생명에 그 땐 적잖이 당황하고 고민스럽기도 했지만, 제 인생에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때와 행복했던 때를 함께 했으니제 분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런데 참 희한한 건 언제부터인가 딸기가 맹렬하게 써클링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이상 행동을 보이면 맹군이란 고양이 동생이 묵묵히 그 앞을 막고 앉아있는 거였습니다. 처음엔 그냥 어쩌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기가 평소와 다른 걸음걸이로 또다시 거실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심란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맹군이 마치 ‘형, 그러지마!’라고 하는 것처럼 딸기가 가는 곳마다 그 앞을 막으며 앉았습니다. 그러더니 그 날은 밤늦도록까지 잠들지 않고 딸기 옆을 지켰습니다. 아픈 형을 위해 말없이 등을 내주는 동생처럼, 그렇게 맹군은 딸기를 지켰습니다.


종이 다르고 태어난 곳도 우리 집에 모인 이유도 다 다른 이아이들은 어느새 형제고 자매고 가족이었던 거죠. 우리도 같이 형을 걱정하고 있다고, 그러니 엄마도 힘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나 혼자 딸기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란 생각에 힘이 났습니다.​

 


우리는 늘 함께이다


사실, 제겐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있습니다. 얼마 전, 엄마가 밤에 잠을 안 주무시고 요양원 거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넘어져 다쳤다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참담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엄마 팔에 붕대를 감아주고 잠을 잘 수 있는 약을 처방해 주겠다는 의사에 말에 동의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딸기가 다니는 병원에 들러 딸기의 증상에 대해 의사선생 님과 의논했고 딸기 역시 증상이 심할 때만 먹기로 한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의 얼굴과 딸기의 얼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텅 빈 그릇처럼, 마치 엄마의 영혼은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딸기도 역시 그랬습니다.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엄마 내가 누구야?’, ‘엄마 내 이름이 뭐지?’ ‘오빠 이름은?’ ‘아버지는 생각나?’ ‘엄마 세례명은 뭐야?’ 하고 다른 세계에 가 있는 엄마를 소환하 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묻고 또 묻고 또 물어보곤 합니 다. 엄마는 그런 나를 빙그레 웃으며 바라봤습니다. 딸이 라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리지만 아직은 누구보다도 나를 기억해주고 있으니 그럼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다녀온 날은 마음속에서부터 바람이 불었습 니다.


딸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루 종일 누워있다 내가 들어 올 시간이면 힘들게 몸을 일으켰고, 뒷다리를 떨면서도 꼬리는 흔드는 걸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죠.


하지만 엄마가 영원히 내 엄마인 것처럼 딸기에게도 영원히 내가 엄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그거면 된다고 스스로 마음을 토닥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가족이란 이름의 아이들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딸기는 앞으로도 행복한 날들을 보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단 하나 소원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엄마도 나도 딸기도 우리가 늘 함께였다는 걸 안 잊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CREDIT​

글·사진 이유성 

에디터 윤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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