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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장 안에 갇혀있던 아이

조회수 2018. 6. 13.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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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생 2막

견생 2막

작은 새장 안에 갇혀있던 아이

초코, 새장 밖으로 나오다​


2013년 꽃샘추위가 서리던 어느 봄날, 대전의 한 애견거리를 30분 내내 왔다 갔다 했다. 그 자리를 지난주에도, 지지난 주에도 같은 모습으로 왔다 갔다 했다. 6년 동안의 타지 생활로 우울증이 다가올 무렵 강아지를 너무나 키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있지만 너무나 짧은 기억이었고, 헤어지는 순간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아 애견거리를 주말마다 맴돌았다. 


쇼윈도에 꼬마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생후 3개월이 안 된 강아지, 고양이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아이들은 좋은 가정으로 갈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강아지를 그 쇼윈도 안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맴돌고 맴돌다 우연히 한 가게 안 구석에 있는 분홍색 새장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안이 어찌나 좁던지 제대로 눕지도, 앉아 있지도 못해 어정쩡한 자세의 강아지가 있었다. 


가게 주인에게 사정을 물으니 두 번이나 파양되어 처치 곤란이라 하더라. 뽀얗고 귀여운 강아지들 사이에 혼자 새장에 갇혀 있던 강아지가 내 눈에는 어찌 그리 안쓰럽고 예뻐 보이던지. 그렇게 ‘초코’를 입양했다. 상자에 담긴 초코는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 괜찮은 줄 알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상자를 여는 순간, 낯설고 좋지 않은 냄새가 확 풍겼다. 배변과 구토로 상자와 초코의 몸이 얼룩져 있었다.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소리라도 내면 응당 꺼내주고 쉬어갈 텐데, 묵묵히 몇 번의 구토와 배변을 하며 혼자 견디고 있던 것이다. 


한창 예쁨 받을 나이에 여기저기 떠돌았던 우리 초코, 오늘부터 초코가 눈감을 때까지 나와 우리 가족이 함께할 것을 약속하는 밤이었다.

초코야! 웃어봐! 우린 너의 가족이야!


초코와 함께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였다. 초코는 그때까지도 잘 짖지도 않고 산책을 하면 다른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행여 내가 없어질까 내가 보이는 내 뒤쪽에서 졸졸졸 따라왔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했던 초코는 내가 회사에서 돌아오면 한동안 낑낑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그런 초코를 처음으로 부모님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한 날, 수원으로 가는 KTX에서 케이지에 담긴 초코를 몇 번이나 바라보았다.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좋아하실지 싫어하실지. 많은 생각을 하며 데리고 갔다. 


역시나 부모님은 당황하셨다. 부모님 집에 처음 온 초코는 무엇이 그렇게 낯설었는지 내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녔다. 하지만 아빠가 손짓을 하자, 초코는 아빠한테 한 걸음씩 조심조심 다가갔다. 부모님도 금방 마음의 문을 열고 초코를 맞이해주셨다. 

7년이 지난 지금, 초코는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 사이 나는 초코와 함께 대전에서 올라와 수원 부모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초코는 7년 새 많이 바뀌었다. 주말이면 먼저 산책 가자며 앞에서 멍멍 짖기도 하고, 산책을 하면 제일 먼저 뛰어나가기 바쁜 로켓 강아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방에도 못 가고 내 주변에서만 얼어있던 초코가 이제는 화장실도 잘 찾아가서 배변도 가리고, 방 곳곳마다 자기가 쉴 공간을 만들어 쉼터 부자 강아지가 되었다. 처음 우리에게 왔던 초코는 마음의 상처로 위축되어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기다렸다. 초코가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밝아지기를.... 지금은 고맙게도 먹을 것 좋아하고 산책도 좋아하는 밝고 예쁜 반려견이 되었다.​

함께하는 여행은 힘든 여행​


초코가 우리 생활에 들어오면서 가족 SNS는 초코 사진이 대부분이 되었고, 마트를 가면 초코 간식부터 구경하게 되었다. TV에서 강아지가 나오면 채널 돌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강아지 내용이 끝날 때까지 시청한다. 그렇게 생활이 조금씩 달라질 때쯤, 여행도 마찬가지로 초코 때문에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함께 여행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초코가 우리 가족이 되면서 초코를 집에 혼자 두고는 단 하루도 외박을 하지 못했다. 고작 하루 혼자 둔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왠지 밥도 안 먹고 볼일도 안 보고 끙끙 댈 모습에 불안해서 못가는 것이다. 초코를 데리고 여행을 가면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여행의 묘미는 먹으러 가는 것인데) 밥 때가 되면 슬슬 마음이 복잡해진다. 밥을 먹으러 가려면 초코를 차 안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나가면 초코가 짖는 소리가 주차장을 가득 메운다. 그때부터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가족 중 누군가는 빨리 밥을 먹고 초코한테 가봐야 한다.강아지가 함께 숙박할 수 있는 숙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성수기일 경우는 아주 일찌감치 예약을 해야 한다. 


만약 강아지와 함께 숙박할 수 있는 숙소를 찾았다 하더라도 강아지에 대한 추가 비용(강아지 숙박으로 인한 소독 청소 값 등)이 더 나간다. 다른 사람들은 ‘강아지는 하루 혼자 놔둬도 안 죽어’, ‘그냥 어디에다 맡겨’라고 쉽게 말을 하지만, 나는 초코와 좋은 것을 함께 누리고 싶고 좋은 곳에 가서 즐거운 추억도 만들고 싶다. 그래야 가족 아니겠는가?


 

CREDIT

글 사진 최은정

에디터 김지연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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