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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호더가 버린 열두 마리의 개들

조회수 2018. 4. 19.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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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COMPANIONS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아무리 꽁꽁 껴입어도 손이 곱고 발이 얼던 계절, 두꺼운 카펫 한 장 덮고 버려진 개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올 한 해 고생했다며 훈훈히 마무리하려던 연말, 우리 센터 앞에는 폭탄처럼 개들이 버려졌다. 꼬물거리는 새끼들을 포함해 열두 마리나.​

연민과 학대의 굴레 어디쯤에서

카라 더불어 숨 센터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해 있는데, 주소가 공개되어 있어서 잊을 만할 때쯤 센터 앞 유기 사건이 일어난다. 다만 한 마리를 유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많아봤자 네 마리 정도여서 나름대로 차분히 대응할 수 있었는데, 열두 마리라는 숫자는…. 개들은 크롬장 안에 빽빽하게 우겨넣어져 있었고, 몸집이 큰 개들은 그 좁은 크롬장 속에서 새끼들을 깔고 앉을까봐 일어서지도 앉지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우리도 당황스러웠지만, 개들은 훨씬 더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잔인한 추위와 당혹스러움 속에서 그렇게 치러졌다.



일단 개들을 건물 안으로 데리고 와서 크롬장을 열었을 때, 덩치가 좀 있는 개들은 사람들을 바짝 경계하고 있었다. 끽소리도 못 내거나 아니면 으르렁거리거나. 하지만 좀처럼 사람을 물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새끼들부터 크롬장에서 이불 위로 옮기며 그 수를 헤아렸다.

한 달도 안 된 아가들이 여섯, 젖이 퉁퉁 부은 어미가 한 마리, 3개월 쯤 된 강아지가 세 마리, 그 어미로 추정되는 녀석이 한 마리, 진도 혼종인 개린이가 한 마리. 새끼들을 제외한 개들은 센터에 들어온 이후 3일 동안은 엄청나게 짖으며 사람을 경계했으나, 사흘째 되는 날부터는 거짓말처럼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활동가들을 반겼다. 사람을 반기는 태도나 그 털의 윤기 등을 보았을 때 어디서 학대 받던 개들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는 개들을 보았을 때 누가 버렸을지 대충은 짐작했다. 근처에 사는 애니멀호더이지 않을까 싶었다. 재작년 여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 애니멀호더가 다시 찾아와 개들을 데려갔다. 개들을 너무 사랑했지만 키우기 버거워 한순간 실수를 했다고 말하면서. 당시 연락했던 전화번호가 남아있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도 찾았기에 우리는 애니멀호더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자신이 개들을 버린 것이 맞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버린 것은 열 두 마리지만, 그 애들을 포함해 마흔 마리에 달하는 개들을 돌보고 있다고도 말했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개를 한 마리 잘 기르는 것도 힘든 일이다. 개들을 버린 애니멀호더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개들을 길에 내보내면 로드킬을 당하거나 학대의 대상이 되거나, 개장수에게 잡혀가거나 보호소로 가 죽임을 당할 것도 알고 있었다. 버릴 수도, 계속 함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한 최선의 선택은 동물을 보호하는 시민단체 앞에 버리는 것. 물론 유기는 범죄고, 어떤 이유에서든 가족을 버렸다는 사실이 죄를 덜어낼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어떤 불행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태를 빚어낸 건 동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체계와 지원이 미흡해서인 것도 안다.

 

 

애니멀호더는 개들을 사랑했다. 길거리로 내버려질 순간부터 죽음에 가까워질 개들을 연민했다. 그가 베풀 수 있는 사랑은 개들을 집에 가둔 채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고, 대소변을 치워주는 게 전부였다. 아무런 보호 관리 계획도, 대책도 없이 수십 마리를 떼로 태어나게 해 결국에는 센터 앞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그럼에도 센터 앞에 버려진 개들은 구김살 없이 사람을 좋아했고, 유기 후 며칠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애니멀호더를 너무나 반가워하며 꼬리를 흔들다 못해 온 몸을 흔들었다.

애니멀호더는 서툴렀고, 사회 체계는 미흡했지만, 개들에겐 죄가 없었다. 개들을 애니멀호더에게 되돌려 보내면 또 번식을 거듭하며 제대로 된 보살핌은 받지 못할 것이 뻔했다. 개들은 결국 카라에서 진행한 입양파티를 통해 가족을 찾아가게 되었다. 열두 마리 중 아홉 마리는 지금 입양 가정에서 무럭무럭 쑥쑥 자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남은 세 마리는 카라 더불어 숨 센터에서 머물며, 다른 아이들은 애니멀호더가 마련한 임시 거처에서 동물복지지원센터가 함께할 입양파티를 기다리고 있다.

 

개들은 이제 꼭꼭 닫힌 집으로부터 나와 새로운 가족과 함께 봄날을 맞이할 수 있다. 다만 마음이 마냥 좋지 않은 것은 아직도 세상 어느 사각지대에서는 애니멀호딩으로 고통 받는 동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언젠가 도움의 손길을 얻어 따뜻한 봄날의 햇볕을, 시원한 여름 그늘을, 높은 가을 향을, 아름답게 내리는 함박눈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마음은 다소 무겁지만, 그럼에도 눈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번쩍 점프해서 사람을 반기는 개들을 보면 그런 세상도 언젠가는 꼭 오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그래도 세상은, 연대하고 연대하며 찬찬히 바뀌고 있으니.

CREDIT

글 사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김나연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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