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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금 체험수기] 근로장려금, 저희 가족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었어요

조회수 2020. 4. 3. 15: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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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03년 중국 심양에 있는 무역회사에서 근무할 때 전라북도 정읍으로 출장을 왔습니다. 그때 외삼촌의 소개로 남편을 알게 되어 6개월 동안 교제 후 결혼을 하였고 얼마 뒤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시아버지는 우리 집안에 복덩이 며느리가 들어와서 종갓집의 대를 이었다며 온 동네 자랑하였고 남편은 아들이 생겨서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습니다. 저도 결혼을 늦게 했지만 참으로 시집을 잘 왔다는 생각을 하였고 우리 가족은 어느 가족보다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7개월이 된 무렵 남편이 간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남편을 병간호하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겨우 7개월 된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습니다. 남편은 6개월 동안 투병하다가 2009년 3월 42세의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영영 떠났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저에게는 아들(6세)과 딸(12개월), 그리고 빚만 남겨졌습니다. 엄마의 손길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두 아이만 바라보며 매일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대한민국이란 이국 타향에서 저는 살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근로장려금을 알게 되었으며, 세무서에 가서 저도 신청이 가능한지 문의하여 신청하고 처음으로 근로장려금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삶의 희망을 준 소중한 근로장려금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받아서 그 가치를 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감동을 하여서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어린 두 아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씩씩하게 살아가야겠다고. 결코 주저앉지 않고 용기를 내어 당당하게 일어서겠다고.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엄마니까

한국말도 서툴고 아무런 자격증도 없이 한국 사회에서 취직하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낮에는 막일을 하고, 밤에는 아이 돌봄 선생님에게 딸을 맞기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야간 대학교에 다녔습니다. 공부도 결코 쉽지 않았고 엄마 때문에 공생하는 아들에게 미안했지만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밤늦게까지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뜻 있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도 이긴다는 말이 있듯이 저는 해냈습니다. 2013년경 성적 우수상을 받으며 대학교를 졸업했고 매년 제가 관심 있는 분야의 자격증에 도전하여 현재 국가공인 자격증도 10여 개 있습니다. 아직 경제적인 어려움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부자랍니다. 정말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너무 힘들어 죽음의 길을 선택하려고 했을 때 삶의 희망을 밝혀준 근로·자녀 장려금에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저에게 또 한 번 고비가 다가왔습니다. 작년 6월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나에게 왜 또 이런 큰 병을 주십니까? 라고 하나님을 원망도 했습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이 병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말기가 아닌 치료가 가능한 단계라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생각을 합니다. 기계처럼 열심히만 살아온 저에게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할 상황이 왔고 가장인 제가 일을 할 수 없으니 또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받은 근로·자녀 장려금인데 올해는 정말로 감동을 더 하고 눈물이 납니다. 그 기쁨과 고마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연히 통장정리를 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국세청으로부터 근로장려금 260만 원, 자녀장려금 140만 원, 총 400만 원이 입금된 것이었습니다. 국세청의 따뜻한 배려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매년 9월 말에 지급되는 장려금인데 올해는 추석 전에 입금되어 풍성한 명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축구화를 사주고 딸에게 예쁜 옷을 선물했습니다. 나머지는 아들의 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위해서 학원비로 사용할 것입니다.


저는 더불어 사는 대한민국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대한민국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받기만 하고 살 수는 없기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았으며 그 결과를 2년 만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대상에서 벗어났고, 3년 만에 한 부모 가족 지원 대상에서도 벗어났습니다.

저는 우리 가족보다 더 어려운 가족들이 수급받기를 원합니다. 지금 나라에서 지원받고 있는 것은 근로·자녀 장려금뿐이며 제힘으로 빨리 자립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교육청 인허가를 받아 집에서 중국어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은 무료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금전적으로는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는 없지만 제가 가진 재능으로 중국을 알리고 중국의 문화 또는 중국어 봉사하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서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로 키우고 싶습니다.

저에게 삶에 희망을 준 소중한 근로·자녀 장려금.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처럼 어려운 가정에는 한 줄기 빛이고 희망입니다.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곳인데 이렇게 좋은 복지제도를 운영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 좋은 제도로 더 많은 가족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우리 가족은 앞으로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더 많은 사람에게 베풀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나의 힘은 적지만 나처럼 작은 힘이 많이 모이면 큰 힘이 될 수 있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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