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민들이 싫어했던 세금, 타이유세

조회수 2018. 10. 8. 17: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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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프랑스 14~16세기 때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은 세금인  "타이유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taille, 타이유세

로 불리는 이 세금은 왕이나 영주의 지배 아래 있는 신하·토지에 부과한 직접세였습니다. 


원래 타이유세는 필요할 때만 부과하고 징수하는 특별세로 시작을 했으나, 15세기와 16세기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1439년 일반적인 세금이 되었습니다. 


샤를 7세 치하에서는 타이유세 징수액이 120만 리브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루이 16세 치하 때는 8,000만 리브르에 달하게 됩니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지속되었던  영국과의 100년 전쟁과 종교전쟁인 30년 전쟁기간(1618년∼1648년) 동안 타이유세가 많이 과세되었습니다. 


어떻게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는 세금이 되었을까요? 

일반 서민들이 집을 고치고, 지을 때, 토지의 경작 상황이 좋아질 때 타이유세를 과세했습니다. 


반면 영주에게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기에 훌륭한 성채를 짓거나 보수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서민들은 세금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토지를 폐허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즉, 영주와 귀족은 면세되고  서민들에게만 과세되는 타이유세를 국민들이 싫어했던 이유는  바로 면세 특권 때문이었습니다. 



면세 특권의 증가는 일반 국민이 짊어지는 조세 부담의  급속한 증가와 짝을 이루었는데요, 타이유세가 평민이 부담하는  유일한 조세였을 때는 귀족의 면세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타이유세와 비슷한 종류의 조세들이  수 십가지 이름과 형태로 늘어나고, 몇 가지는 타이유세에 흡수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강제부역과 같은 부담들까지 추가로 징수되었을 때 귀족의 면세 특권은 과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루이 14~16세 시대엔  절대 왕정 체계로 신분계층이 분명했으며, 


농민들은 수입의 70%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해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을 때 면세 혜택을 받은 귀족과 교회에는 세금을 걷지 않았으니 면세 특권은 국민들에게 많은 불만을 초래했습니다. 



결국, 루이 16세에 이르러  시민 계급을 중심으로 한 불만이 극심해졌고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프랑스 국민들이 싫어했던 타이유세 역시  형평성에 어긋한 세금정책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폐지가 되었습니다. 



 타이유세를 통해 세금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서 참고: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 (공)저: 알렉시 드 토크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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