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고소득자가 이익?

조회수 2018. 9. 6. 11: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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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형국 기자

국민연금 기금고갈 논란이 재차 불거진 이후에 국민연금 운용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한창입니다. 동시에 한쪽에서는 국민연금을 향한 공격도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소개해드렸던, 이맘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불편한 진실’류의 주장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국민 주머니를 턴다’, ‘개인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낫다’는 식의 국민연금을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기사들도 자주 보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대개 지금 열심히 보험료를 납부해도 나중에 못 받을 수 있다며 가입자의 불안감을 자극하거거나 앞으로 내야할 사람은 더 많이 내고 적게 받게 된다는 식으로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국민연금은 다단계 피라미드다’, ‘나중에 받을 돈보다 지금 내는 돈의 가치가 크다’, ‘국민연금은 서민이 부자되는 것을 막는다’는 엉터리 비난은 예전만큼 나오지 않으니 우리 사회의 논의 수준이 조금은 더 나아졌다고 봐야하는 걸까요.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최근에 보도된 한 기사를 볼까요. 기사는 한 시민단체의 <“국민연금은 역진적... 저소득자보다 고소득자가 순이전액 많아”>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해당 자료는 “1999년 가입자가 20년동안 보험료를 납부한 경우에 국민연금 하한인 29만원 소득자는 순이전액이 4245만원, 상한인 449만원 소득자는 5617만원으로 하한소득자보다 1372만원이 많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여기서 순이전액은 20년간 돌려받는 연금에서 20년간 냈던 보험료를 뺀 금액을 의미합니다. 똑같이 국민연금을 20년 냈는데 부자는 자신이 낸 돈보다 5000만원을 넘게 더 챙기고 가난한 사람은 4200만원만 더 받을 수 있다는 게 이 단체가 지적하고 싶은 문제였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다’고 포장해온 국민연금의 논리가 반박되는 사례인 듯 합니다.

이는 역진성, 또는 소득재분배에 대한 협소한 이해에 기반한 주장입니다. 이걸 파악할 수 있는 근거들은 다름 아닌 해당 보도자료 안에 있었습니다. 순이전액을 만들어낸 방식을 따져보면 의문이 풀립니다.


해당 자료에서 상한 소득자는 보험료 9347만원을 내고 1억4991만원을 돌려받아 5617만원의 순이전액을 거뒀습니다. 하한 소득자는 605만원을 내고 4850만원을 돌려받아 4245만원의 순이전액을 거뒀습니다. 9000만원을 내고 1억5000만원을 받는 것, 600만원을 내고 5000만원을 받는 것을 두고 부자에게 유리하다고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실여부야 어떻든,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런 비판들이 국민연금을 향한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부에서도 국민연금을 향한 음해의 정도가 지나쳤다는 판단이 있었나봅니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기금 고갈’이라는 말 때문에 근거 없는 불안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국가의 지급보장을 분명히 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정부에 지시했습니다.


또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은 국민이 소득이 있을 때 납부했다 소득이 없어진 노후에 연급을 지급받도록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노후 보장제도"라면서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기 때문에,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이 연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향후 기금고갈로 국민연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근거 없는 불안이 청와대에 국민연금을 폐지해달라는 요구로 드러날 정도가 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시민들의 불안감을 덜려 한 겁니다.

‘국가의 지급보장’ 명문화는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사안입니다. 법 자체가 수급권을 보장하는데 규정을 넣는게 적절한지, 지급보장이 일정 이상의 급여 수준을 내포하는 것인지, 재정 지원을 정당화해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떠넘기게 되는 것 아닌지 등이 쟁점입니다. 그간 기획재정부 등에서는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명시하면 향후에 정부가 재정으로 메워야할 지급액이 국가 부채로 잡혀 지표상 재정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왔습니다.

그러나 명문화 논란과는 별개로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노인가구의 총소득 중에서 공적이전소득은 점점 늘고 있고 사적이전소득은 점점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적이전소득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민연금이나 재정으로 지급하는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급여 등을 뜻합니다. 사적이전소득은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생활비처럼 개인 간에 비공식적으로 오가는 소득을 의미합니다.


노인가구의 공적이전소득 월 평균액은 2013년 42만9000원에서 2016년 58만9000원으로 10만원 이상 늘어나는 사이 사적이전소득은 22만5000원에서 20만2000원으로 줄었습니다. 2016년 노인가구의 평균 총소득 177만1400원을 뜯어보니 이 중 공적이전소득은 33%를, 사적이전소득은 11.4%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노인가구의 공적이전소득은 1988년 국민연금 도입 후 20년 이상 가입자가 국민연금을 타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 들어 빠르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나 1인가구의 증가 등 사회 구조적인 영향 등을 감안하면 노인부양의 부담이 개별 가계에서 공공으로 넘어가는 추세는 앞으로 더 가파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얼마 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비관에 빠질 이유가 없다’는 내용의 글을 적었습니다.


이 교수는 “불행하게도 연금가입자가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험료를 더 내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에 보험료율 인상, 보험료 납부기간 연장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근거 없는 분노는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대책의 논의과정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미국이 연금기금 고갈의 시점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은 2035년이나 미국언론에서는 사회보장제도가 ‘난파위기’에 처해 있다니 뭐니 하는 보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 교수의 말대로, 2057년 기금 고갈이 현실이 되려면 그때까지 아무 대책 없이 허송세월해야 합니다만 우리 사회의 많은 전문가들이 국민 노후보장 강화를 위해, 소득불평등을 개선하고 사회안전망을 더 크고 촘촘하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소모적인 흠집내기보다 대안을 모색하는 건전한 논의를 위해 언론도 고민해야할 부분이 많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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