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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버번에 취할 시간!

조회수 2020. 10. 7. 0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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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같은 버번의 진짜 매력, 입문용 버번부터 소장 가치 있는 버번까지

1 매운 후추 풍미에 감귤류, 버터스카치, 오크 맛이 두드러진 믹터스 US*1 라이. 알코올 도수는 42.4%. Michters by Metabev Korea.

2 입문 3대장 중 하나로 꼽히는 메이커스 마크. 매시빌 중 옥수수의 함량이 높아 달고 호밀 대신 가을 밀을 사용해 맛이 부드럽다. Maker’s Mark by Beam Santory.

3 버번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페퍼 가문의 명맥을 잇고자 만든 제임스 페퍼 증류소의 대표 버번 제임스 페퍼 1776 스트레이트 버번. 호밀 비중이 39%로 높아 펀치감 있는 알싸함과 단맛이 특징이다. James Pepper by Happy Spirit Korea.

4 가성비 깡패로 유명한 와일드터키 101. 낮은 도수로 증류를 마쳐 무게감 있고 프루티한 풍미를 지닌다. 올드 보틀은 바인하우스에서 소장하고 있다. wild turkey by Trans Beverage.

5 입문 3대장 중 하나인 버팔로 트레이스. 바닐라와 시트러스 풍미에 알싸한 향신료, 오크, 프룬, 호밀 테이스트에 우아한 여운이 특징이다. Buffalo Trace by Bex Spirits Korea.

왜, 지금 버번인가

캐러멜, 바닐라, 피칸, 헤이즐넛, 허니. 아이스크림의 풍미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남자들이 열광하는 버번위스키를 설명하는 풍미의 노트다. 저렴한 위스키, 싱글 몰트로 가는 입문 단계, 클래식 칵테일의 기주 정도로 이해되던 버번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패피 반 윙클, 버팔로 트레이스 앤티크 컬렉션 등 시장에 나왔다 하면 품절되어 몇 곱절 이상 가격이 오르는 버번도 심심찮게 보인다. 먼저, 버번이란 무엇인가. 51% 이상 옥수수를 주재료로 만들고, 최종 증류 알코올 도수는 80% 이하, 오크통에 증류액을 넣을 때는 알코올 도수 62.5% 이하여야 한다. 새 오크통에서 숙성해야 하며, 미국령에서 만든 위스키에 버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리고 라이 위스키는 51% 이상을 호밀로 만들고 다른 조건은 거의 흡사하다.

버번・라이 수입사 네 곳의 담당자와 오랜 버번 애호가인 바인하우스 김병건 대표, 한국버번위스키클럽 마크 패턴 회장 부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에디터가 버번 기사를 준비한다는 말에 김병건 대표가 특별히 마련해준 자리였다. 같은 업계라 알음알음 아는 사이지만, 이렇게 모인 건 처음이라고. 경쟁사지만 경쟁 구도보다는 버번에 대한 애정으로 뜨거운 형제애를 다진 느낌이었다.

버번의 뜨거운 지금에 대해 많은 전문가가 ‘가성비’를 꼽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오늘 한 잔이라도 맛있는 술을 마시자!’는 요즘 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게 아닐까요?” 메타베브 코리아 이종민 이사가 ‘가치 소비’로 운을 띄웠다. 요즘 인기가 높은 버번 믹터스를 전개하는 수입사다. “비슷한 얘긴데, 싱글 몰트에 비해 가성비가 확연히 좋다는 점이 인기 비결이 아닐까 해요. 스코틀랜드에 비해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가 많이 나는 미국에서는 오크통 숙성이 더욱 드라마틱하죠. 같은 숙성 연도라도 싱글 몰트와 단순 비교하면 숙성 효과가 두 배 이상이에요.” 버번 입문 3대장으로 꼽히는 와일드터키 101부터 러셀 리저브, 레어 브리드 등 인기 버번을 취급하는 트랜스 베버리지 주혁 이사가 덧붙였다. 그는 세계적 싱글 몰트를 보유한 모 외국계 회사에 다닌 이력이 있다. 오크통에 들어가기 전 갓 증류한 원주의 맛은 보드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버번 맛의 힘은 역시 숙성에서 온다고 바인하우스 김병건 대표가 거들었다.

“심플하게 ‘맛있어서’도 한몫하겠죠.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이요.”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버번인 짐빔, 메이커스 마크부터 마니아 사이에 인기 높은 부커스, 베이커스 등 많은 버번 라인업을 갖춘 빔산토리 코리아 송지훈 대표가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믿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도저히 분류할 수가 없어요. 한쪽에서 진정성과 전통을 바란다면, 다른 한쪽에선 단순함을 원하죠. ‘세세한 걸로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마시게 좀 내버려둬!’라고 말하면서요.”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의 글로벌 위스키 스페셜리스트 케빈 아브룩이 <몰트 위스키 이어북>을 통해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 송지훈 대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칵테일 전성기가 다시 돌아온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올드 패션드, 맨해튼, 위스키 사워 등 인기 있는 클래식 칵테일 대부분이 버번을 기주로 하니까요. 말인즉슨, 버번은 굉장히 믹서블(mixable)하다는 거예요. 요즘 인기가 높은 짐빔 하이볼의 기주인 짐빔이 버번인 줄 모르고 마시는 분도 많아요. 나 버번 잘 모르는데? 하는 사람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버번을 유쾌하게 즐기는 셈이죠.”

던컨 테일러 스카치위스키 회장 유안샌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체로 밀레니얼 세대는 위스키를 유행하는 믹서(mixer, 칵테일 등에 사용하는 무알코올 재료, 주스, 시럽 등이 포함됨)와 섞이는 술로서 보고 있는 집단입니다. 세계시장에서 우리가 겪은 경험으로는 밀레니얼 세대뿐 아니라 다른 세대도 칵테일 만드는 기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본래 맛없는 술을 맛있게 마시려고 만든 칵테일이, 이토록 맛있는 술이 넘쳐나는 요즘 다시 인기를 누리다니. 밀레니얼 세대는 과연 그 ‘종잡을 수 없음’이 매력이다. 칵테일의 역사를 일장 연설하는 김병건 대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마크 패턴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1 버번 마니아 사이에 인기가 높은 블랑톤. 그중에서도 싱글 배럴 셀렉트는 소장 가치가 높다. 알코올 도수 46.5%에 강한 스파이시를 드러낸다 Blanton by Whisky Library.

2 제임스 페퍼 증류소의 야심작 올드 페퍼 스트레이트 버번. 알코올 도수 56.8%에 강력하고 그윽한 풍미를 지닌다. 국내에는 단 한 병 있는데, 바인하우스에서 소장 중이다. James Pepper by Happy Spirit Korea.

3 땅콩 캔디와 캐러멜, 그을린 오크, 메이플 시럽과 바닐라 풍미가 매력적인 믹터스 10년. 최소 10년 이상 숙성했고, 30병 이하의 진정한 스몰 배치로 가치를 높인다 Michter’s by Metabev Korea.

4 와일드 터키 마스터스 킵 보틀드 인 본드. 최소 17년 이상 숙성하고 50.5% 알코올 도수를 지녔다. 복합적이고 밸런스 잡힌 오크 향, 바닐라, 캐러멜, 과일 풍미에 모카, 스모키 스파이스에 깊은 여운이 특징. Wild Turkey by Trans Beverage.

5 짐빔 가문의 오리지널 레시피를 바탕으로 블렌더 신지 후쿠요의 블렌딩을 더해 동서양의 만남으로 주목을 끄는 리젠트. 가벼운 산미와 오크 향의 풍부한 맛,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긴 여운이 특징이다. Legent by Beam Santory.

6 버번위스키 산업의 창시자 에드먼드 해인 테일러 대령의 이름을 본뜬 에이치 테일러 스몰 배치. 버터 스카치, 캐러멜 풍미에 건포도 향과 맛, 바닐라와 옅은 담배, 가죽, 백후추의 상쾌한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E.H. Taylor Jr. by Bex Spirits Korea.

돌직구 같은 버번

“당시의 버번이 맛없는 술이었다는 건 편견입니다. 흔한 오해 중 하나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증류소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어요. 이제껏 버번을 주제로 한 여러 시음회를 해왔는데, 언젠가는 몰트 시음회에 버번을 하나 쓱 끼워 넣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버번인 줄 모르고 마시던 분들이 이 술 정말 맛있다며 극찬을 했죠.” 버번 홍보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켄터키 지역 출신의 마크 패턴은 본업과는 별개로 한국버번위스키클럽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1920년대 미국에 금주법이 없었다면 버번의 명성은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라며, 목에 건 위스키 소믈리에 메달을 자랑스럽게 매만졌다.

올드 보틀을 비롯한 버번을 400종 이상 보유 중인 바인하우스 김병건 대표 역시 버번 홍보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 올드 버번, 라이만을 보관해둔 빗장을 마음껏 푼 날, 바 위에는 다 합치면 수입차 한 대 값을 호가하는 술병이 늘어져 있었다. 아까울 법도 한데, 그는 매우 즐거워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버번을 들이켠 건, 여자친구와 싸운 날이었다고. 버번은 그렇게도 쓰디씀을 삼키게 하는 술일까. 순간 <하우스 오브 카드>, <매드맨> 등 미국 드라마가 뇌리를 스쳤다. 남성 주류 사회를 다룬 드라마에는 유독 버번이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고뇌나 사색의 장면이다. 남자들끼리 비장하게 뭔가를 도모하는 날 파트너에게 권하는 술로도 종종 얼굴을 비친다. 작품 속 캐릭터나 상황에 따라 다른 버번을 즐기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요즘 같은 젠더리스 시대에 ‘남자의 술’이라 명명하는 것 자체가 해묵은 표현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버번의 캐릭터를 적절히 표현하기에 그만한 수식어가 없을 듯하다. “버번은 가수 최백호 같아요. 첫 음에서 그윽한 깊이가 느껴지거든요.” 사실 술을 잘 못한다는 트랜스 베버리지 주혁 이사는 마스터가 권한 버번을 한 모금 삼킨 뒤 말했다. 강인한, 단단한, 활기가 넘치는, 거친 등으로 표현하는 ‘robust’ 풍미의 옥수수가 주재료인 버번은 돌직구에 가깝다. 의뭉스러움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솔직하다. 부드러운 말로 사려 깊은 위로가 필요한 날도 있지만, 거짓 없이 직언으로 쏘아붙이는 친구의 말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버번은 바로 그런 친구다.

빗장을 풀고 마시는 술

김병건 대표가 와일드 터키의 마스터 디스틸러인 에디 러셀의 사인이 담긴 와일드터키 101 올드 보틀을 자랑스럽게 내보이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에디 러셀은 버번의 살아 있는 역사라 불리는 인물로, 마니아 사이에 영웅 같은 환대를 받는다.

“싱글 몰트가 캐비닛 속 장식용인 느낌이 강하다면, 버번은 귀한 술이라도 빗장을 풀어 오늘 편하게 마시는 술에 가깝죠.” 주혁 이사의 말에 버번은 역시 일상에서 마셔야 가치 있는 술임에 모두가 동의하는 눈치였다.

“버번은 의외로 요리와 페어링도 좋습니다. 피자, 치킨 같은 서양 요리뿐 아니라 한식과도 잘 어울려요.” 제임스 페퍼 버번과 라이를 수입하는 해피스피릿 코리아 정우열 대표가 말했다. 매일 술을 마실 정도로 버번을 사랑하는 그는 자비로 일행에게 경쟁사 버번 리젠트를 한 잔씩 돌렸다. 그러고는 한마디 거들었다. “버번의 인기는 오랫동안 파도를 타듯 했어요. 지금의 인기가 지속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고 봐요. 그런데 희망적인 건, 요즘 마니아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소매 수입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죠. 소장 가치 있고 희귀한 버번일수록 소매 판매가 활발한 편입니다.”

며칠 후, 버번과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는 소고기와의 페어링을 확인하기 위해 고깃집으로 향했다. 2년 전부터 위스키 숍 위스키 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주연태 대표가 메이트가 되어주었다.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에서 만드는 버번 웰러 풀 프루프를 한식 밑반찬, 고기, 전골과 함께 맛보았는데 어느 것 하나 이질감이 없이 잘 어우러졌다. 특히 뚜껑을 열어놓고 천천히 진행되는 ‘에어링(공기와의 접촉으로 향이 빠지면서 맛과 향이 부드러워지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수준으로 에어링을 해두는 것도 방법이다)’을 느끼는 경험이 꽤나 즐거웠다. 스코틀랜드, 일본, 대만의 싱글 몰트와 버번을 함께 취급하는 위스키 라이브러리에서는 최근 버번 판매량이 전체의 70%에 가까울 정도라며 주연태 대표 역시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버번 애호가의 길로 들어섰다면 반드시 눈여겨봐둘 희귀 버번 (왼쪽부터).패피 반 윙클 20년과 23년, 부커스 라이 리미티드 에디션, 포로지스 130주년 에디션 모두 위스키 라이브러리 소장.

가성비를 넘어 소장 가치 있는 술로

“스카치나 일본 위스키가 시대를 풍미할 때도 고객들은 가성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가성비가 어느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다른 주류로 눈을 돌리며 자연스럽게 버번의 시대가 온 것 아닐까요? 최근 버번 역시 가성비를 넘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컬렉팅 성향으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요즘 한국 버번 마니아 사이에 배럴 프루프(물을 섞지 않은 버번), 싱글 배럴(‘꿀 배럴’이라 부를 정도로 맛있게 숙성된 특정 배럴에서 나온 버번), 스몰 배치(꿀 배럴을 중심으로 소규모 단위로 만든 술) 등 특별한 제품, 즉 진정한 버번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제품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버번에 입문해 점점 단계를 높여가는(마니아 사이에 흔히 ‘레벨 업’이라 부른다) 소비자가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버팔로 트레이스가 줄리언 밴 윙클 후손과 합작해 만든 패피 반 윙클은 부르는 게 값인 데다 공병만 수십만 원에 팔릴 정도라니, 그 웃돈의 수준을 알 만하다. 매년 버팔로 트레이스에서 출시하는 5병 세트 앤티크 컬렉션(BTAC)은 없어서 못 구한다. 그러나 소장 가치가 있다고 해서 취향 없이 컬렉팅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버번 엔트리 3대장이라 불리고 각자 개성이 확실한 와일드 터키, 버팔로 트레이스, 메이커스 마크를 먼저 마셔보세요. 그런 다음 취향을 사로잡는 캐릭터를 확인하고, 그로부터 레벨업을 해나가다 마음에 드는 버번을 컬렉팅할 것을 추천합니다.” 주연태 대표는 말한다. 올드 보틀이나 희귀 버번을 다수 보유한 바 바인하우스같은 곳에 찾아가 “저 이런 버번 좋아하는데요” 하면 단번에 취향을 캐치한 마스터가 줄줄이 다음 버번을 추천해줄 것이다.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김래영

참고 도서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조승원 저, 싱긋) <몰트 위스키 이어북>(잉바르 론드 저, 오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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