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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가 초래한 재개봉 상영관의 급부상!

조회수 2020. 7. 21. 10: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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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초래한 일상의 변화 중 재개봉 상영관을 다녀왔다.

재개봉 상영관에 갔다. 천카이커의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은 개봉한 지 한 달 넘도록 상영 중이었다. 영화관은 한산했다. 라운지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고, 매점 직원은 가판대에 기댄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 9시 25분, 200석이 넘는 상영관에 관객은 나를 포함해 10명이 채 안 됐다. 하품이 나오는 나른한 풍경이었다. 서울 도심에 있는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지방의 인적 끊긴 유원지 같았다. 영화는 기존 상영 필름에 15분을 추가한 형태였다. 대부분 중국 공화당에서 검열한 문화대혁명 부분이었다. 두지(장궈룽)와 시투(장펑이), 주샨(공리)의 사랑은 여전히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웠지만, 영화 후반부의 혼란이 지금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어지러웠다. 영화가 끝난 후 엘리베이터로 향했으나 사람들이 타고 있어 허둥지둥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올해 들어 벌써 여덟 편째 재개봉 영화를 관람했다. <라라랜드>와 <시네마 천국>, <언어의 정원>, <날씨의 아이>, <존 윅>까지 두 번 봤거나 열 번 가까이 본 작품도 있었다.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게 싫진 않지만, 근래 영화 관람엔 선택지가 없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영화가 개봉을 늦췄다.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지금, 불 보듯 빤한 적자를 택할 제작사는 없었다. 덕분에 거의 유일한 취미인 심야 영화 관람은 ‘명작 다시 보기’ 정도로 방향을 바꾸었다. 팬데믹(pandemic) 시대는 일상의 여러 부분을 변화시켰다. ‘전례 없는 위기’라든지 ‘오만한 인류에 대한 경고’ 같은 거창한 이야기까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먼저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게 됐다. 감염에 대한 우려보단 함께 탑승한 사람들을 위한(혹은 그들이 우려할 나를 위한) 선택 재개봉 상영관에 갔다이었다. 천식으로 습관성 기침 증상이 있는 탓에 건조한 곳에선 불가항력으로 기침이 터져 나온다. 숨을 참으며 버티다 목적지에 못 미쳐 내린 적도 몇 차례 있다. 한번은 기침이 터진 후 앞자리에 있던 몇몇과 눈이 마주쳤는데, 불안과 두려움 같은 감정을 읽곤 황망히 자리를 뜬 적도 있다. 모두가 민감했다. 이미 증상을 가볍게 여긴 몇몇에 의해 번진 집단감염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았다. 무심코 집을 나섰다가 마스크를 챙기러 다시 되돌아간 것만 수십 번에 달한다. 코로나19는 생각보다 빠르게 번졌고, 종식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별것 아니라 여긴 유행성 질환이 일상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일상과 과도하게 밀접하다. 우리는 매일 수십 번씩 뉴스와 속보로 코로나19의 현황을 접한다. 감염자와 격리자, 완치자 그리고 사망자 수가 스포츠 경기의 스코어처럼 나열돼 있다. 어쩔 수 없는 일(그리고 꼭 필요한 일)이란 걸 알지만, 그 비현실적인 그래프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샌 그 자극적인 숫자를 피하며 살고 있다.

소비 패턴도 변했다. 마트와 서점, 쇼핑몰에 발길을 끊었다. 버릇처럼 다니던 곳이다. 대신 인터넷을 이용한다. 생수부터 라면, 즉석밥, 서적까지 집으로 배송된 박스가 매일 쌓여간다. 언택트(untact) 시대의 소비는 확실히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피스텔 관리실에 쌓인 택배 박스가 현저히 늘었고, 대형 마트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선 품절이나 배송 지연 같은 문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항상 붐비던 집 근처 식당은 대부분 한산하다. 그중엔 평균 30~40분씩 웨이팅해야 입장이 가능하던 곳도 있다. 대신 배달 위주의 요식업체가 늘었다. 단 몇 달 동안 배달 앱에 이름을 올린 신규 업체가 2배에 달한다. 한식부터 양식, 중식, 일식, 패스트푸드, 최근엔 와인과 치즈, 과일까지 배달해주는 곳도 생겼다. 음식은 전처럼 대면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대신 음식을 문 앞에 두고 벨을 누른 뒤 사라진다. 여기서도 사람이 사라졌다.

일상의 틀이 통째로 변한 건 재택근무를 하면서다. 재택근무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회사에서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노블레스 맨>의 오피스도 지난 5월부터 시행 중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집에서 일을 하니 업무와 생활이 뒤엉켰다. 주방과 냉장고, 침실, 화장실, TV 같은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일에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식사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로 들쑥날쑥하거나 건너뛴 적도 많다. 어떤 날은 긴장감이 한없이 풀려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씨름한 적도 있다. 공간이 문제였다. 데스크는 있지만 잡동사니에 파묻혀 주로 침대 위나 바닥에서 업무를 봤다. 의자도 오래돼 삐걱대고 장시간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팠다. 환경을 바꿔야 했다. 집 정리를 했다. 데스크에 쌓여 있는 불필요한 물건을 치우고 업무에 필요한 것만 올려뒀다. 의자도 새것으로 바꾸고 암막 커튼으로 빛도 막았다. 프린터도 새로 주문했다. 그제야 일이 손에 잡혔다. 그래도 답답해지면 노트북을 들고 집 앞 커피숍을 찾았다. 생각보다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회사가 많았다. 30~40대 직장인으로 보이는 그들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노트북과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슈트와 구두 대신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재택근무는 장점이 더 많았다. 매일 3시간씩 사람들로 빼곡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제일 좋았다. 유난히 붐비는 월요일엔 출근만으로 땀을 비 오듯 흘려 종일 찝찝했는데 지금은 그 대신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린다. 한동안 펼쳐보지도 못하고 재활용 수거함으로 향하던 신문도 꼼꼼히 읽는다. 그리고 집 근처를 산책하는 일과가 생겼다. 퇴근하면 씻고 눕기 바빴는데, 요샌 해 질 녘에 동네를 걷는다. 10년 넘게 산 곳이지만 근래처럼 골목골목을 누비긴 처음이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파는 작은 마트,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매장, 하루 세 번 빵을 구워내는 베이커리까지 몇 달 동안 단골집이 늘었다. 그리고 이웃과 인사를 한다. 바로 옆집에 사는 남자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커피숍과 편의점,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마주치곤 통성명을 했다. 나와 동갑으로 프로그래머인 그는 지난 3월부터 재택근무 중이고 내년 초 결혼을 앞두고 준비 중이었다. 진공관 앰프와 LP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취미인 그는 내게 일할 때 틀어놓으면 좋은 교향곡 몇 곡을 추천해줬다. 언택트 시대에 재택근무로 알게 된 인연이라니, 생각할 때마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요새는 자기 전에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본다. 세계 각국에 정착한 한국인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를 주로 시청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만의 방식으로 이 환란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매출이 크게 줄어 투 잡을 준비 중인 호주의 자영업자, 관광객이 끊겨 목수 일을 다니는 베트남의 가이드, 무기한 휴강에 부시 크래프트 유튜버로 변신한 뉴질랜드의 학원 강사까지 타인의 소소한 일상을 엿본다. 필리핀 세부에서 여행 사업을 하는 한국인은 지역 봉쇄로 쇼핑이 어려워진 한인들을 위해 직접 식료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모두 제각각 희미해진 일상의 끈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말처럼,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상은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6월 초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0 고카프(국제 아웃도어 캠핑 & 레포츠 페스티벌)를 방문했다. 연기나 무산을 예측했지만 계획한 일정대로 열렸다. 수백 미터를 늘어선 입장 대기 열을 보고 놀랐지만 안전에 대해선 안심할 수 있었다. 마스크와 비닐장갑 착용은 물론 이중으로 발열 체크를 했다. 붐비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이동했고, 부스마다 업체 담당자들은 소형 확성기를 사용하며 관람객과 멀찌감치 섰다. 사람들은 광장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되돌아올 그때를 위해 분주히 캠핑용품을 골랐다. 주말엔 한강에 갔다. 피자와 맥주를 들고 찾은 공원엔 무수한 사람이 돗자리와 텐트를 펼쳐놓고 햇볕을 쬐고 있었다.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일상의 소중함은 따듯한 햇볕을 쬐거나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는 것,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코로나19로 불가피한 시대를 맞이했다. 사람 간 대면이 줄고 사회 시스템이 마비되는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미 코로나19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나 검열, 마녀사냥 같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를 잘 넘긴다면 이전보다 한결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대에 대한 책임, 나와 전체를 위한 에티켓, 이런 것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상은 변했지만 삶은 지속된다. 그리고 이 환란을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디자인 오신혜 일러스트 최익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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