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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트 신이 주목하는 키워드, '모성'

조회수 2020. 7. 17.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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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트 신은 지금의 혼란을 틈타 원론적 이야기로 돌아갔다.
William Hogarth, The March of the Guards to Finchley, 1750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대표작 ‘Whistler’s Mother’(1871), 마틴 크리드의 설치 ‘Work No.1092: Mother’(2011) 그리고 루이즈 부르주아의 ‘Maman’(1999)까지. 미술사에서 어머니는 모성을 상징하는 소재였다. 그렇다면 어머니이자 작가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동안 예술가와 어머니는 양립하기 어려운 단어였다. 고독한, 천부적, 독창적이라는 형용사와 어울리는 예술가에게 어머니라는 타이틀은 걸맞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예술가와 어머니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관계일까? 이에 런던 아트 신은 ‘어머니임(motherhood)’을 주목해 미술의 영역을 넓히려는 유의미한 실험을 하고 있다.

Jenny Saville, Electra, 2012~2019

파운들링 뮤지엄(The Foundling Museum)에서 지난 4월 26일까지 열린 < Portraying Pregnancy: From Holbein to Social Media >전은 ‘임신’이란 대주제 아래 여성의 초상화를 엄선해놓았다. 홀바인이 그린 임신부 초상화부터 패션 포토그래퍼 애니 리버비츠가 촬영한 만삭 누드 사진까지 한데 모아 임신의 의미와 가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았다. 임신을 주제로 한 최초의 초상화 전시라 할 수 있다. 파운들링 뮤지엄이 이러한 기획전을 개최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275년 역사를 이어온 파운들링 뮤지엄은 영국의 첫 아동 병원이자 공공 미술관이다. 또 자선사업으로 어린이 재단과 고아원을 운영한 최초의 예술 기관이기도 하다. 일례로 헨델은 해마다 이곳에서 자선 공연을 열어 기부금을 모았고, 당시 다른 예술가들도 작품을 기증하거나 전시를 열어 운영자금을 보탰다. 예술에 조예가 깊어 해마다 기관의 성격과 맞는 주제로 기획전을 여는데, 올해는 여성과 밀접한 임신을 주제로 택했다. 성인 여성이 임신한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음에도 미술사에서 임신부 초상화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 여성의 인생에서 임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리고자 15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생산한 그림, 인쇄물, 사진, 오브제, 의복을 통해 임신부의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한 것이다.

G. H. Harlow, Sarah Siddons as Lady Macbeth, 1814

임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점부터 출산이 수반하는 위험성,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임신에 대한 여성의 생각 그리고 사회마다 다른 임신부를 향한 시선 등을 총망라한 전시에서 하이라이트는 단연 1999년에 애니 리버비츠가 촬영한 만삭의 데미 무어 누드 사진이었다. 미국 패션 잡지 <배니티 페어>의 표지를 장식한 이 사진은 그간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던 여성의 임신을 양지로 끌어올리며 사회적 의미를 완전히 바꾼 신호탄 같은 존재다. 이처럼 전시는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임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작가이자 임신부인 여성을 재조명했다. 그리고 500년에 걸친 임신부 초상화를 통해 관람객에게 여성의 정체성, 감정, 자율성에 대해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돌봄을 수행하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프로크리에이트 프로젝트.

임신과 출산, 그다음 과정은 육아와 돌봄(care)이다. 2018년, 런던에선 돌봄과 작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여성 작가에게 수여하는 ‘머더 아트 프라이즈(Mother Art Prize)’가 탄생했다. 이를 주관하는 곳은 프로크리에이트 프로젝트(Procreate Project)로, 예술가와 어머니가 공존 가능한 런던 아트 신을 일구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회적 예술 기업이다. 2013년에 설립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어머니이자 예술가인 여성, 혹은 자신의 성을 여성으로 정의하는 작가를 지원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피면 전시·스크린·무대에서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해 여성 예술가의 영역 확장에 힘을 보태고, 자녀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스튜디오 머더 하우스(Mother House)와 모성을 주제로 한 예술 심포지엄 옥시토신(Oxytocin) 등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운영하는 식이다. 2018년부터는 앞서 언급한 머더 아트 프라이즈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다. 어머니이자 예술가인 여성, 평가절하된 그들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한 상으로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의무를 짊어진 그리고 스스로 여성이라 정의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은 생물학적 개념으로 한정하지 않기에 자신을 여성으로 정의하는 예술가(self-identifying women), 마이너리티 섹슈얼리티를 지닌 사람도 포함된다. 수상자는 상금 500파운드를 비롯해 프로크리에이트 프로젝트의 갤러리 쇼룸(Showroom)에서 개인전 개최, 화이트 하우스 대거넘(The White House Dagenham)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갤러리 리처드 살툰(Richard Saltoun)에서 온라인 전시 개최라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 참고로 2012년에 개관한 리처드 살툰은 1960년대 이후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에게 온전히 초점을 맞추며 최근 몇 년 사이 런던 프리즈와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갤러리로 부상했다.


미모사 하우스(Mimosa House)에서 열린 <머더 아트 프라이즈 그룹전 2019> 전경. 사진 속 작품은 캔디다 파월-윌리엄스의 ‘The Fountain of Tongues’다.

2018년에 머더 아트 프라이즈를 받은 캔디다 파월-윌리엄스(Candida Powell-Williams)는 수상 소감에서 “프로크리에이트 프로젝트는 육아와 예술적 야망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공간을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한 작업과 육아의 관계성은 그간 예술계가 고민하지 않은 영역으로, 프로크리에이트 프로젝트는 그것을 건드린다. 이들의 새로운 접근법은 신체, 가사노동, 출산과 성, 모성애 같은 전통적 가치와 역할을 달리 정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성 작가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예술,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올해 3회째를 맞이하는 머더 아트 프라이즈의 후보는 5월 중 홈페이지에 공개한다(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창작과 육아라는 두 영역에서 모범 답안을 쓴 차세대 여성 아티스트, 그 영광의 타이틀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양혜숙(기호리서처) 디자인 장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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