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뒷골목으로 떠나는 예술 여행

조회수 2020. 6. 17.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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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뒷골목에서 찾은 새롭고 흥미로운 미술이 피어나는 공간.
인스턴트루프에서 열린 조민아의 <비껴진 자리에서>전 전경.

작년 여름, <제강이 춤을 출 때>전 오프닝에 맞춰 종로에 있는 갤러리175를 방문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참여 작가 중 한 명인 조민아가 근방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는 말을 건넸고, 자연스레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인스턴트루프’였다. 6평 남짓한 좁은 공간 때문일까? 보통의 전시장이라면 비워두었을 틈새까지 작품이 걸려 있었다. 작품과 알찬 디스플레이에 매료돼 한참을 머물렀는데, 누군가 근방에 결이 비슷한 장소가 또 한 곳 있다고 넌지시 흘렸다. 그렇게 종로에서 을지로3가로 이동했고, 전시장 같은 건 전혀 없을 법한 건물 7층에서 인스턴트루프와 비슷한 규모의 ‘중간지점’을 발견했다. 인스턴트루프와 중간지점을 한 문단에 묶어 소개한 건 단지 공간이 좁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 모이는 인물 대다수가 1980~1990년대생인 신진 작가와 기획자라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젊은 작가가 삼삼오오 모여 활동하는 건 미술계의 오랜 전통이지만 요즘 세대는 단체 결성에 그치지 않고 공간 구성까지 손을 뻗는다. 이은지 작가도 비슷한 이유로 중간지점을 만들었다고 한다.

<제1회 꼬리에 꼬리를 물고: What If?>전 전경. 을지로3가에 위치한 중간지점은 신진 작가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실제 작업에 필요한 건 작품을 선보일 외부 공간, 동료 작가들과 나누는 생산적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한데 졸업과 동시에 나온 미술 현장에서는 작업을 보여줄 기회를 찾기 어려웠죠. 또래 작가와의 지속적인 교류도 쉽지 않았어요. 중간지점은 원래 제 작업실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뿐 아니라 김기정, 김옥정, 박소현 등 주변 예술가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터라 전시 공간으로 범주를 넓혀보기로 했죠. 운영 방향은 완벽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장보다는 발전의 장에 가깝습니다. 공간과 작업이 맞물리면서 서로 의미를 찾아가는 색다른 프로젝트를 선보이려 하죠.” 그러고는 소규모 공간은 신진 작가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도와주고, 발전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더했다.

취미가에서 열린 송민정의 개인전 < COLD MOOD(1000% Soft Point) >.

뜻이 맞는 젊은 예술인들이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을 꾸리고, 그곳에 자신의 발전상을 기록해나간다. 공간이 클 필요는 없다. 아담한 만큼 운영도 수월해, 작가와 기획자가 원하는 대로 유연한 움직임이 가능하니 말이다. 또 현대사회에서는 SNS를 통한 콘텐츠 기획, 생산 그리고 홍보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공간의 성격이 뚜렷하다면 아무리 크기가 작고 외진 곳에 있을지라도 SNS에서 밀접한 소통을 할 수 있다(실제 많은 공간이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여러모로 소규모 공간을 꾸리기 좋은 시기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 사이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이 부쩍 늘었다.

취미가에서 판매한 ‘정금형의 배달 서비스’ 포스터. 스튜디오 신신이 디자인 했다.

“예술을 즐기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내 방에 좋아하는 작품을 걸고 두고두고 바라보는 것도 그중 하나죠. 작품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 관점은 다양해지고 경험은 깊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작품을 소장하는 문화는 컬렉터의 전유물처럼 여기곤 해요. 관람객이 보다 쉽게 미술을 경험하고 감상하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게 ‘취미가’의 시작이었죠. 그래서 취미가는 저희가 셀렉트한 작은 작품을 관람하고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취미가 권순우 대표의 말이다. 서교동에 있는 취미가는 단순히 전시장이라고 정의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일을 벌이고 있다. 김한샘, 박준영, 잭슨 홍 등의 전시를 여는 건 물론이고 미술품, 아티스트 굿즈, 창작물 위탁판매 그리고 세미나, 공연, 포럼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및 진행한다. 총 2층 규모로 아래층에는 유리 진열대 안에 작품을 배치해 색다른 감상을 꾀하고, 2층에선 심도 있는 작업을 전시나 공연으로 풀어낸다. 대중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즐기길 바라기에 취미가 역시 유연한 운영을 지향한다. 작품을 보다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는 형식을 고민하다 적합한 방향을 찾으면 곧바로 키를 돌리는 식이다. 알맞은 크기의 공간이 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공간:일리.

작가이자 기획자인 황수경이 만들고 구윤지가 합류한 ‘공간:일리’는 동시대 시각예술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이들이 작년에 선보인 프로젝트 ‘삼일천하(三日天下)’는 소규모 공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예술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실험하고자 한 명의 작가가 3일 동안 공간:일리를 마음껏 구획하는 내용으로 이제, 김양우, 강우혁, 김진아를 포함해 12명의 작가가 ‘삼일천하’ 시즌 1에 참여했으며 현재 시즌 2를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 6월, 통의동에서 구기동 북한산 자락으로 터를 옮긴 이후 공간과 자연 풍경의 조화,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도 아우르는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이 외에도 디자인 스튜디오 오퍼센트가 운영하는 5%(용산), 작업실 겸 전시장인 별관(망원), 기획자 공동 운영 플랫폼 웨스(성북),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하는 아웃사이트(종로), 공간 형(을지로), 쉬프트(을지로), d/p(종로), 온수공간(서교) 등 여럿이니 궁금한 곳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해보길 권한다. 유명 아티스트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포트폴리오를 품에 안은 채 갤러리를 찾아다니고, 동료 작가들과 작업실을 셰어하며 수많은 대화를 나눈 후에야 가까스로 이름 석 자를 알리곤 한다. 그렇기에 지금 젊은 작가와 기획자가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흥미로운 일을 도모하는 작은 공간이 더더욱 유의미하다. 그곳에는 아트 신의 차세대 주역이 모여 있으니 말이다. 올여름, 골목 끝자락에 자리한 소규모 공간에서 신선한 예술의 무엇을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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