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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운명적인 한옥 살이

마크 테토는 ‘한옥’에서 자연의 순리와 지혜를 체득하며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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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옥 툇마루에 앉은 마크 테토.

10년째 한국에 사는 글로벌 투자가이자 각종 방송 출연으로 얼굴을 알린 마크 테토(Mark Tetto).

한국 문화와 예술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지닌 그는 강연과 한국 현대 작가 인터뷰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한옥집을 몇 차례 소개하기도 했는데, 차가운 기운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4월 어느 날 늘 궁금했던 그의 한옥집을 방문했다. 침체된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야속한 현실은 그대로지만 봄볕은 속절없이 따사로웠고, 관광객이 자취를 감춘 북촌의 좁은 골목은 고즈넉하고 정적인 가운데 라일락 향취만 희미하게 일렁거렸다. 겹겹이 이어지는 한옥 골목에 자리한 마크의 집은 아담하지만 아늑하고 정갈했다. 주변의 다른 한옥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 지은 낡고 허름한 가옥을 레노베이션했는데,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목재와 한지 등 전통 소재로 한옥 고유의 멋을 재현했다. 그가 이 집을 처음 본 것은 5년 전이다. 주거와 업무의 모든 생활 반경이 강남 지역이던 그는 사실 한옥에 대해, 서울 도심에 이런 한옥 마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의 한옥을 소개한 책을 통해 처음 접한 후 새로운 발견을 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관심을 보이는 마크를 위해 친구가 이곳 북촌 한옥 마을 투어를 시켜주었고, 당시 비어 있던 이 집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나무에서 느껴지는 향기, 바람에 대나무 스치는 소리가 몸과 마음을 감싸는 듯했다.

2 거실에는 이전부터 쓰던 소파, 한옥 문양에서 모티브를 얻어 직접 디자인해 목공예가와 협업한 커피 테이블, 양태오 디자이너가 만든 테이블 램프 등을 두었다.
3 현관문 앞에 걸어놓은 조선시대 초상화. 작가도, 그림 속 인물도 아직 밝혀진 바 없지만, 경매에서 보고 첫눈에 끌려 구매했다. 집 안에 들인 모든 작품과 오브제가 ‘식구 같다’는 마크는 이 초상화 속 인물에 ‘제이슨’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한옥과 조우한, 어쩌면 운명 같은 순간. 그는 “내가 이 집을 찾은 게 아니라 이 집이 나를 찾은 것 같다”고 표현하곤 한다. “굳이 불편한 점을 꼽는다면 주차가 힘들다는 것 정도. 다행히 전 차를 자주 이용하지 않아요. 겨울에 춥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히터를 설치했으니 실내에선 추위 걱정 없고요.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집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힐링이거든요. 지난 5년간 한옥에 살면서 라이프스타일이 참 많이 바뀌었어요. 그 시간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공간의 힘을 알게 되었죠.” 우선 뉴욕과 서울 강남에서 살며 이미 익숙해진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이 한 템포 느려졌다. 아침에 5분 더 자다가 늦게 일어나 정신없이 뛰어나가면 등 뒤로 삐릭,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잠기는 아파트 문. 하지만 이 집은 달랐다. 집을 나서기 전 창문을 하나하나 살피고, 대문 단속도 해야 한다. 이전 같으면 조금도 틈이 나지 않을 만큼 바쁜 아침이지만, 막상 돌아보니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마크, 오래 걸리지 않아. 단 5분이면 충분해. 창문 하나 잠그면서 잠에서 덜 깬 정신도 차리고, 호흡도 가다듬고. 조금 더 천천히 해도 괜찮아.’ 그 짧고 소소한 순간이 마치 명상 시간처럼 다가왔죠.” 그렇게 한옥집에서 맞는 아침은 마음 급한 재촉이 아닌 힐링의 시간이었고, 바깥에서 하루를 보내며 쉽게 날 법한 짜증이나 지루함도 점점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이 집에 살면서 한국 전통 고가구와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시작은 아파트에서 사용하던 가구가 이 공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주말에 짬을 내어 강남 논현동 가구 골목을 돌아다녀도 어울리는 가구를 찾을 수 없었다. 원래 갖고 있던 가구 중 소파만 거실에 덩그러니 놓은 채 어떤 가구와 소품으로 채울지 고민했다. 그러다 그의 새로운 한옥집을 구경하러 온 친구들에게서 해답을 얻었다. “오히려 가구를 너무 많이 놓지 말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비어 있는 공간이 많으니 한옥의 매력이 더 잘 드러난다고요. 한옥의 고유한 ‘여백의 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죠.” 이후 그는 서둘러 뭔가 채우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 전통 가구와 가옥의 생김새가 그렇듯이 인위적으로 멋 부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 모습, 절제된 꾸밈과 여백이 주는 숨 트이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즐기기 시작했다.

4 직접 디자인한 식탁을 놓은 다이닝 룸.
5 지하층에 자리한 베드룸. 김희원 작가의 한옥 창문 사진 작품 덕분에 지하의 아담한 방에서도 숨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6 거실에서 바라본 서재. 백자 사진을 넣은 병풍은 구본창 작가의 작품이다.

한옥의 멋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채우기 위해, 그는 경매를 통해 고가구와 전통 유물 몇 점을 들이고 또 그에 어울리는 한국 현대 작가의 작품을 걸었다. 물잔 하나, 그릇 하나도 이 공간에 걸맞은 국내 작가의 생활 도예품으로, 모두 적재적소에 자리를 잡았다. “이 집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은 그냥 돈 주고 산 ‘물건’이 아니에요. 그림이나 사진 작품, 도자기 대부분 작가를 직접 만나 하나하나 알아보고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모두 각자의 스토리가 담겨 있고, 모든 것이 연결성되어 있어요.” 

신라시대 토기부터 고려시대 청자, 조선시대 백자를 찾아보다 알게 된 구본창 작가의 백자 사진이나 강익중 작가의 달항아리, 허명욱 작가의 옻칠 그릇 등. 지하층에 자리한 침실의 비어 있던 하얀 한지 벽면에 걸어놓은 김희원 작가의 한옥 창문 사진 작품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올 때의 기분을 상상하며 걸었다. 마치 옛 사대부 한옥집 방에서 한지 문을 열어 말갛게 갠 하늘을 눈에 담을 때처럼, 마음이 편해지고 정신도 맑아지는 작품이다. 단아한 선과 정적인 색감의 자기를 만드는 지승민 작가의 그릇은 우연히 한 매장에서 발견한 후 무작정 연락해 작업실을 직접 찾아가 구입한 것이다. 그때 수많은 얘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은 작가는 자신의 결혼식에 그를 초대하기도 했다. 식탁과 거실의 커피 테이블은 직접 디자인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알게 된 목공예가 황민혁에게 디자인 스케치를 주고 제작을 의뢰해 협업한 것이다. “재미있는 과정이었어요. 이들과 만나 얘기를 들으며 배운 것도 많아요. 모두 한옥과 일맥상통하는 멋이 담겨 있어요. 절제와 여백의 미학이 숨어 있죠.”

7,8 마크의 한옥집 ‘평행재’는 나뭇결이 살아 있는 목재 기둥과 대들보, 기와 지붕 등 전통 한옥 모습을 그대로 살렸다.
9 서재 공간. 반닫이와 가야시대 토기, 조선시대 인장 함 등이 한국 단색화 선구자인 권영우 작가의 작품과 멋스럽게 어울린다.

한옥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한옥이 빚어내는 ‘차경(借景)’과 ‘일보일경(一步一景)’의 철학에 경도되어 있다. “외국인이 창덕궁 후원이나 비원에서 가장 신기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한국의 전통 정원은 일 부러 나무와 꽃을 심어 꾸민, 흔히 알고 있는 모습과 달라요. 주변의 경치를 빌려 자연 그대로를 정원으 로 삼아 즐겼죠. 또 한옥은 ‘겸손한 집’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한눈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일보일경, 한 보 한 보 들어가야 하나씩 보여주거든요. 한 걸음 디디면 소나무가, 또 한 걸음 나가면 창문이 보이 면서 은근한 멋이 드러나죠. 오롯이 하나의 풍경이 담긴 작품을 보듯 차분하게 집중하게 해줍니다.” 

또 그가 느끼는 한옥은 ‘시간이 흐름을 담는 집’이다. 격자 창살의 창문 사이로 햇살이 들어올 때 은은 하게 드리우는 빛 그림자는 매일 패턴과 모양이 변하고, 빛의 온도와 공기 흐름도 달라진다. 계절마다 꽃이 피는 모습이 매번 새롭고, 비 오는 날 기와에 빗물 부딪히는 소리도 운치 있다. 마크는 이 집에서 사계절을 모두 경험하고 느껴봐야 한옥의 멋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했다. 부엌 창문을 열면 첩첩이 기와지붕이 펼쳐지고, 소나무 가지 사이로 까치가 살포시 앉아 있는 그림 같 은 풍경을 어렵지 않게 눈에 담을 수 있는 집. 아담한 마당을 앞에 둔 툇마루에 앉아 시나브로 계절이 내려앉는 시간의 여백을 느낄 수 있는 집. 타인과의 관계가 생겨나고 이야기가 피어나는 집. 바깥세상 의 시름은 뒤로하고 온전히 마음을 쉬며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집. 

이 공간에서 마크 테토와 얘기를 나 누다 보니 국립박물관 큐레이터를 지낸 이내옥 미술 사학자의 저서 <안목의 성장>에서 본 구절이 떠올 랐다. “건축은 자연처럼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지닐 때 화려함으로 승화되는데, 그것이 인문적 이고 예술적인 힘을 가진다는 것. 그런 집이야말로 삶의 무대이자 피안으로, 삶을 살되 삶을 잊게 하는 집으로서 우리 삶을 확장시킨다.” 그렇게 한옥이라는 공간은 마크의 취향과 관심사, 인간관계의 반경 을 확장하고 일상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성장의 무게를 더한 채 그의 인생에 향기를 더하고 있었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사진 김춘호 의상 협찬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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