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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그 나라, 그 시대를 바라보는 방식

조회수 2020. 4. 23. 10: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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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 그 시대 사람들의 문화가 녹아 있는 영화와 도시를 살핀다.

영화가 리얼리티를 그리는 방식

미디어는 이혼을 피상적으로 다룬다. 부부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 갑자기 모든 것이 해결된 표정으로 법원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은 한결같기까지 하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그 내막을 알기 어려움에도 미디어 때문인지 우리 사회는 이혼을 생각보다 간단한 일로 여긴다. 실제로는 갈등과 화해, 소송, 최종, 결정까지 몇 달에서 심지어 몇 년까지 걸리는 장기전인데도 말이다. “니콜은 시시때때로 마시지도 않을 차를 우린다. 

"춤도 잘 추고, 춤에 꽝인 나도 따라 추고 싶어진다”, “찰리는 옷을 잘 입는다. 남자로는 드물게 난처한 꼴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부부인 찰리와 니콜이 서로의 매력을 읊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특징이 너무도 사소해 서로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찰리와 니콜은 첫눈에 반했고, 사랑을 위해 각자의 꿈까지 바꿔가며 결혼했으며, 연출자와 배우라는 이상적 조합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부부다. 제목도 ‘결혼 이야기’라, 여기까지 보면 화목한 가정을 보여주는 평범한 영화 같다. 하지만 상황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돌변한다. 두 사람은 이혼 상담소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서로의 장점을 찾는 마지막 노력을 하고 있다.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랑의 수명이 다한 것이다. 이혼을 결심한 특별한 계기는 없다. 양말을 아무렇게나 벗어놓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일과 삶을 분리하지 못하고 집에서도 연기를 지적하는 모습에 불만이 쌓이고 쌓여 이별이란 결과를 낳았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서로 갈라서기로 한 만큼 찰리와 니콜은 담담하게 헤어짐을 논한다. 하지만 그 차분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니콜이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상황은 180도로 바뀌고 법적 분쟁으로 번진다. 찰리와 니콜은 부부 딱지를 떼기 위해 생활이 위태해질 정도로 막대한 돈을 지출하고 서로를 헐뜯기 시작한다. 얼굴이 터질 듯 고함을 질러가며 싸우는 장면은 너무도 적나라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이혼을 비현실적으로 그려낸 그간의 매체를 비웃기라도 하듯 감독은 좋은 이별은 없음을, 헤어짐은 결국 진흙탕 싸움이란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결혼이 마냥 행복만 주지 않는다는 걸, 결혼은 인생의 종착지가 아닌 하나의 과정임을 알리기 위해 연출에서 지독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지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은 이유는 빈부 격차를 감추지 않아서다. 이처럼 영화의 주된 역할은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존재에서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꼬집기에 유쾌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영화일수록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건 분명하다. 그렇기에 리얼리티에 충실한 영화는 유의미하다.

- 에디터 이효정

태양과 사막의 소리를 들어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사막을 건너다 보면 신기루를 만난다. 4시간 이상 지루하게 달려가다 문득 지평선 너머로 불쑥 바다와 섬, 심지어 배까지 출몰한다. 1시간 넘게 이어지는 사막과 바다 풍경은(실은 신기루) 신화 속 신들이 달려오는 것처럼 비밀스러워 보인다. 카이로에 봄이 열리면, 침묵하던 사막은 어김없이 모래바람을 실어 보내 카이로를 덮어버린다. 겨울철 쾌적한 날씨가 이어지다 믿기지 않게 이내 짙은 갈색 도시로 변하고 만다. 태양의 신 라(La)를 숭배했던 이집트인은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해를 볼 때마다, 침묵하던 사막이 바람을 보낼 때마다 자연과 우주의 비밀을 풀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해가 뜨고 지는 자연현상을 죽음과 부활로 해석해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살아 있는 이의 거주지로,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은 자의 공간으로 인식했다. 이집트인의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은 여러 신화에 등장한다. 그중 이집트를 다스린 태초의 왕 오시리스(Osiris)의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가 오면 이집트인은 오시리스를 기념하는 축제를 열었다. 축제 기간에 곡물 씨앗을 심은 점토로 작은 미라를 만든 뒤 매의 머리를 한 소카르(Sokar)가 그려진 관에 집어넣는다. 관 속에서 싹튼 곡물은 오시리스가 부활하는 것이라 믿었다. 오시리스는 사막과 폭풍의 신이자 동생인 세트(Seth)에게 죽음을 당하지만, 아내인 이시스(Isis)에 의해 되살아나 사후 세계의 왕이 되었다. 이집트인에게 ‘오시리스 신화’는 죽음을 준비하며 사후 세계에서 영원한 삶을 꿈꾸게 한 서사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이집트 학자 크리스티앙 자크(Christian Jacq)는 저서 <위대한 파라오의 이집트>에서 “이집트는 태양의 딸이다”라는 말로 서문을 연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집트인에게 지평선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지평선은 세계의 가장자리에 있는 빛의 영역이며, 피라미드 그 자체도 ‘석화된 빛줄기’를 의미한다.” 기자의 언덕에 있는 스핑크스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자(이집트어로 셰세프 앙크)로 살아 있는 이미지라는 뜻이다. 우주의 창조주이자 주인인 아툼(Atum) 신을 수식하는 말이기도 하다. 밤에도 낮에도 결코 눈을 감지 않는 이 사자들은 일출과 일몰을 관장했다. 태양을 숭배하기에 이집트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해가 지는 서쪽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언젠가 아이가 죽은 뒤 영원히 살 곳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틈틈이 묘실에 자신의 생활상을 벽화로 그렸다. 죽은 뒤 관과 함께 묻는 <사자의 서(死者-書)>에는 주로 살아생전 이야기와 신에 대한 찬송을 담았다. 

당시 <사자의 서>를 위탁받아 작업하는 작가들은 수입이 높아 인기 직종이었다고 한다. 올드 카이로에 위치한 시타델과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 외부 성곽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가면 카이로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시타델은 십자군으로부터 카이로를 지키기 위해 지은 이슬람군의 요새로, 피라미드와 함께 카이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갈색빛 시내를 내려다보며 동안과 서안을 경계로 비슷한 모양새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동쪽은 살아 있는 자, 서쪽은 죽은 자의 공간이지만 외양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거대한 무덤 지구를 만난다. 옛 이집트인의 무덤이지만, 이젠 무덤의 의미를 상실한 곳이 많다. 도시화가 계속되면서 카이로로 들어온 가난한 이의 임시 거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빈민촌을 형성한 이곳은 또 다른 공동체로 변모 중이다. 도시를 삶과 죽음의 공간으로 구획한 것이나, 죽은 자의 공간에 산 자들이 들어오면서 제3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모습은 카이로를 여전히 신화적 도시로 남게 한다. 크리스티앙 자크는 이집트인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 있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환상’이고, 반대로 하늘이 있는 것처럼 푸른 하늘 장식이 새겨진 지하 도시에서 마음대로 움직이는 영혼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인 셈이다”라고 풀이했다. 사막의 신기루를 보면서 내가 있는 곳이 실재고, 사막 지평선에 잠시 나타난 신기루를 ‘환상’이라 규정짓는 이는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 시각예술비평가 천수림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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