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오브제를 만드는 떠오르는 아티스트 3팀

조회수 2020. 4. 17. 10: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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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나무, 가죽 등 매력적인 소재로 리빙 오브제를 만드는 아티스트들.

KOREAN PAPER 한지와 빛이 만나 이뤄낸 공명

작년, 프랑스 장인 미셀 오르토의 우양산 컬렉션이 전시된 플랫폼L <여름이 피다>전에서 권중모 작가의 조명 ‘겹’을 볼 수 있었다. 한지가 빛을 만나 자아내는 우아함과 안정감이 전시장 안을 가득 메웠다. 권중모는 한국의 전통 소재와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공부하던 시절, 유럽 각국에서 온 친구들이 자국의 아이덴티티를 세련되게 풀어내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에도 좋은 소재와 기법이 참 많은데, 여기에 디자인적 요소를 넣으면 충분히 멋질 거라 생각했어요.” 다양한 소재에 관심이 많아 2015년에는 구리 베이스에 법랑과 칠보를 입힌 테이블웨어를 선보였다. 실제로 그의 작업실에는 유리를 굽는 가마부터 금속까지 곳곳에 다양한 요소가 자리한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재활용 골판지로 조명을 만들던 그는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는 평면에서 끝나는 우리 종이, 한지의 쓸모가 늘 아쉬웠다. 가구를 만들어볼까 하다 자연스레 떠오른 한지 조명은 나무 프레임에 한지를 붙이거나 아크릴에 한지를 붙이는 등 소재의 특성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작품이 대다수였다. 작가는 직감에 따라 한지를 일일이 손으로 접어 패턴을 만들었다. 두께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투과율과 입체 구조에서 생기는 그림자의 모습은 한 점의 회화처럼 아름다웠다.

1 권중모 작가의 레이어즈 테이블 조명.

2018년에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서 주최한 한지 개발 상품 공모전에 병풍을 모티브로 만든 ‘화이트 스크린 램프’로 대상을 받았다. “한지는 굉장히 묘한 소재예요. 투명한 소재도, 막힌 소재도 아니면서 빛은 투과되잖아요. 낮에는 밖에서 안으로 빛을 끌어들이고, 밤에는 안에서 밖으로 빛을 뿜어내죠.” 작가는 제품의 형태에서도 한국 전통미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레이어즈 펜던트 조명은 조선시대 왕의 곤룡포가 걸린 모양에서 영감을 얻었고, 한지를 일정 간격으로 접은 레이어즈 테이블 조명은 한복의 주름에 착안해 만들었다. 단순한 형태와 전통미의 조화를 위해 비례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연희동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마침 한지에 옻칠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옻칠한 한지에 빛이 스며들 때 백색 한지에 비해 섬유에 퍼지는 빛의 확산이 가시적으로 나타나는데, 옻이 스며든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명암의 우연성에서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좋아해요. 한지 외에도 삼베나 모시, 돌처럼 자연과 가까운 소재에도 관심이 많고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는 꽤 여럿이지만, 권중모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2 이완(왼쪽)·정회영 디자이너와 HWYD의 우드 퍼니처들.

WOOD 나무가 주는 따스한 변화의 미학

디자이너 이완 대표는 디자인 전문 컨설팅 회사 에이콜론을 10년 가까이 이끌고 있다. 생활용품부터 유명 기업의 브랜드 디자인까지, 다분히 상업적이면서도 틀에 박히지 않은 아이디어와 실용적 기능을 겸비한 작업으로 이미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가 요즘 ‘나무’에 꽂혔다. 원목 소재로 가구와 리빙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 역시 우드 퍼니처 만드는 데 깊은 관심과 흥미를 지닌 대학 후배이자 에이콜론에서 함께 일한 정회영 디자이너가 이 새로운 작업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에이콜론 사무실 밑에 작업 공방을 차리고 성북동 골목에 아담하지만 근사한 쇼룸도 열었다. 이전에도 사무실에서 사용할 소가구나 집기 정도는 취미로 직접 만들던 그들은 완성도 높은 우드 퍼니처를 위해 전문적인 목공 일을 배운 후 나무 소재의 특성을 학습하고 연구하며 이론과 경험을 쌓았다. “자연 소재인 나무는 플라스틱이나 금속과 달리 변수가 많아 다루기 만만치 않은 소재예요. 온도와 습도에 따라 수축, 팽창되면서 갈라짐이나 휘어짐, 뒤틀림 등이 쉽게 생기거든요. 기후에 따라 5mm 정도나 사이즈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기름을 붓기도 하고, 받침 없이 뜨거운 냄비나 코스터 없이 하루 동안 물잔을 올려두기도 하면서 인공 소재에 비해 떨어지는 내구성을 보완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마감과 보수 부분에서 꾸준히 해결책을 찾고 있다. 그들이 만드는 우드 퍼니처는 시중에서 흔히 보는 나무 가구의 전형에서 벗어난, 획일화되지 않은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캐비닛 형태의 스피커. 우드 캐비닛 도어를 열면 안에 스피커가 내장돼 있다. 차가운 속성을 지닌 기계와 따스한 온기를 품은 나무 소재의 완벽한 결합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

3 우드 캐비닛 스피커와 체어.
4 기능성과 심미성의 조화가 돋보이는 책상.

하지만 그들은 ‘독특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나만 두드러지는 것보다 공간의 다른 요소와 잘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사용하는 것은 물론 쓸수록 멋스러운 우드 퍼니처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고 싶습니다. 브랜드 이름도 HWYD, ‘How was your day?’의 약어예요. 우리가 만든 가구로 사람 간 커뮤니케이션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싶은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름입니다. 남녀노소 나누지 않고 누구든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가구였으면 좋겠어요. 살림을 하지 않던 사람도 취향에 맞는 식탁이나 도마를 사게 되면 자연스레 주방에 오래 머물거든요.” 그리고 그들이 나무 소재로 만든 식탁과 의자, 캐비닛과 벤치, 램프 셰이드 등은 각자 다른 소비자의 취향과 개성을 충족시키고 각자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소재로 나무만 한 게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게 한다. 가지가 자라 나뭇잎이 나고 지고 떨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 단단해진 나무는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전부 다른 색감과 형태와 결을 지닌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들의 오랜 디자인 작업 노하우와 소재에 대한 연구,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입고 창의적 결과물로 재탄생한 HWYD의 우드 제품은 꼭 하나 소장하고 싶을 만큼 멋지고 근사하다.

LEATHER 가죽에서 찾은 새로운 가능성

김준수의 작품을 보면 소재를 단번에 알아채기 힘들다. 나무를 깎아 만든 듯하면서도 도자 소재처럼 보이는 오브제가 많다. 학부와 대학원 시절 내내 금속을 다룬 그의 작업실에선 짙은 가죽 냄새가 맴돌았다. 가죽은 매끈하고 차가운 금속과 정반대 결을 지녔다. “학교에서 다양한 물성과 기법을 연구했어요. 4학년 때 장신구 수업이 있었는데, 늘 궁금하던 가죽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죠. 한 원단이지만 두께와 질감이 다양하고 특유의 따뜻함과 부드러운 촉감이 좋았거든요.” 가죽 중에서도 그가 선택한 소재는 식물성 성분인 타닌으로 무두질한 베지터블 가죽. 화학 소재로 가공한 가죽에 비해 마찰이나 오염에 취약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맞게 변화하는 세월의 흔적이 좋았다. 금속을 다룰 때도 전개도대로 재단하기보다는 망치로 두드려 유기적 형태를 만드는 데 몰두한 그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랄까. “이탈리아 피렌체 부근에 자리한 산미니아토(San Miniato)로 가죽 워크숍을 떠났어요. 가죽 공장이 밀집한 작은 도시인데, 베지터블 가죽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다루는 방법, 태도를 배웠어요.” 재단하고 꿰매는 가죽공예의 틀을 벗어나 소재 자체에 집중하고,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던 시간만큼 작품에 김준수만의 색깔이 선명히 자리 잡았다.

그의 대표작 ‘레더볼’은 커터기를 이용해 넓은 가죽 원단을 얇은 끈 모양으로 자른 뒤 단면을 차곡차곡 이어 붙여 평면을 만드는 코일링 기법을 사용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보이던 표면은 가죽의 단면이 모여 자연스레 생긴 패턴이었던 것. “가죽 표면이 아닌 단면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코일링 기법을 선택했어요. 가죽공예에는 면과 면을 붙이고 문질러 마감하는 기법이 있는데, 여기서 착안했죠.” 단면은 평면이 되고 평면은 곧 입체가 되었다. 가죽마다 각기 다른 텐션을 따라가며 코일링 작업을 하는 그의 손은 흙을 만지는 도예가의 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떠한 틀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닌, 하나하나 다른 가죽의 특성에 맞게 이어 붙이기에 그조차 완성 형태를 예상하기 어렵다. 코일링 작업물이 줄 수 있는 단조로움을 탈피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변주를 주는데,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작은 볼부터 화기 오브제, 높이가 1m에 달하는 큰 오브제까지 다양하다. 실용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2017년 공예 트렌드 페어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2018년 파리 메종 & 오브제의 선정 작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머지않아 거울과 아트 월 작업을 선보일 계획이라는 그의 다음 전시를 기다려본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김민지(mj@noblesse.com)

사진 이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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