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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술관 로비를 주목할 때

미술관 로비가 달라졌다. 만남과 휴식, 예술이 어우러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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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흩어졌던 일행과 다시 만나는 곳이자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는 장소, 로비. 언제나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로비는 가장 대중적인 장소이자 컨시어지나 인포데스크가 자리한 건물의 중심이기도 하다. 기업 사옥, 호텔, 쇼핑몰 등의 로비에 거대한 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어떨까? 매표소, 안내 데스크, 물품 보관함 등 여러 편의 시설이 떠오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술적인 무언가는 보지 못한 듯하다. 작품이 즐비한 미술관치고 로비는 참 삭막하다는 의문이 들 때쯤, 몇몇 기관에서 로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만남과 소통의 장’이라는 로비의 특징을 살려 예술과 관람객이 어우러지는 ‘열린 미술관’을 실현하는 주요 공간으로 말이다.

1,2 테이트 모던을 대표하는 로비 ‘터빈 홀’. 왼쪽 사진은 슈퍼플렉스의 ‘One Two Three Swing!’의 설치 전경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미술관 로비는 테이트 모던에 있다. 2000년, 테이트 모던은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하면서 건물 5층 높이에 달하는 ‘터빈 홀’을 로비로 지정했다. 원체 공간이 커서 존재만으로 압도적인 느낌을 선사하지만 테이트 모던은 이곳을 평범한 로비로 꾸미지 않고 로비 겸 전시장으로 둔갑시켰다. 한데 화이트 큐브에 걸리는 일반 작품은 터빈 홀과 어울리지 않았다. 공간의 크기 역시 주된 이유 중 하나지만 유동 인구가 많은 로비에서 진득한 감상을 요하는 작품이 겉돈 것. 벽에 걸린 정적인 작품은 움직임이 많은 로비의 활발한 분위기와 괴리감이 있었다. 이런 로비에는 거대한 사이즈로 샴페인이 터지듯 강한 임팩트를 주는, 그리고 감상에 그치지 않는 소통형 작품이 걸맞았다. 오직 터빈 홀만을 위한, 터빈 홀에서만 볼 수 있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이 필요했고, 테이트 모던은 이를 위해 작가들과 커미션을 진행했다. 

작가들은 터빈 홀의 특징을 고려해 ‘즐기는 예술’을 선보였다. 천장에 거대한 조형물을 매단 애니시 커푸어의 ‘Marsyas’(2002년), 바닥에 큰 균열을 일으킨 도리스 살세도의 ‘Shibboleth’(2007년), 그네와 정글짐을 설치해 놀이터처럼 꾸민 슈퍼플렉스의 ‘One Two Three Swing!’(2017년) 등이 그 결과물이다. 그중에서도 대대적 흥행을 거둔 건 터빈 홀에 인공 태양을 띄운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Weather Project’(2003년)다. 로비에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 아래 관람객이 뛰어놀거나 누워 있는 게 가능해 열려 있는 미술관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로비의 공공성에 예술을 덧입힌 터빈 홀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전시장 이상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고, 새로운 타입의 전시를 선보였다는 호평까지 얻으며 그해 터빈 홀 관람객 수 200만 명 돌파를 기록하는데 힘을 보탰다. 잘 만든 로비 하나 열 전시장 부럽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인 첫 사례다.

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당신을 위하여: 제니 홀저> 전경. 사진 속 작품은 ‘For You’(2019)이다.

지난해 10월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관한 뉴욕 현대미술관도 로비를 특히 신경 썼다고 한다. 비좁은 공간을 확장하고 외벽을 통유리로 둘러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꿨으며 한쪽에는 로비 갤러리를 오픈했다. 이곳은 입장료를 받는 여느 전시실과 달리 상시 무료 개방한다. 뉴욕 현대미술관 로비가 어둡고 복잡해 입장을 꺼리게 된다는 그간의 피드백을 반영해 관람객과의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공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미술관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공간인 만큼 도시와 밀접히 연결해주는 로비를 소홀히 단장 할 수 없었다는 게 이들의 입장. 여기에 관람객이 예술을 좀 더 가까이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공적 전시실을 추가한 것이다. 

이렇듯 로비를 새롭고 친근한 공간으로 바라보는 곳은 뉴욕 현대미술관만이 아니다. 브루클린 미술관과 뉴 뮤지엄도 로비 갤러리를 마련해 비교적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소장품 전시나 신진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시애틀 아트 뮤지엄은 테이트 모던같이 로비에 일반 전시실에서는 소화할 수 없는 대형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가는 중이다. 7월 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로비와 서울박스, 과천 야외 공간에서 MMCA 커미션 프로젝트 <당신을 위하여: 제니 홀저>를 진행하는 국립현대미술관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미술관 로비는 휴식과 만남을 위한 장소로 열린 광장 기능을 합니다. 특히 티케팅을 하지 않고도 언제든 오가면서 누릴 수 있는, 열린 공공 공간(public space)입니다. 그렇기에 로비는 일반적으로 난해하다 여겨온 현대미술, 동시대 예술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고 문턱을 낮추어 보다 다양한 관람객을 포용하는 진입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4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2019 로비 프로젝트: 홍범>을 개최했다.

이처럼 많은 미술관에서 로비를 ‘공공장소’로 정의하고, 그에 맞는 작품과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 모습이 조금 더 세분화될 듯하다. 우선 2019년을 기점으로 10년간, 2년 주기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는 가 있다. 관람객이 미술관에 입장해 처음 마주하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 기분을 전환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로비에 현대미술 작품을 설치해 유휴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저희는 작가와 건축가, 그래픽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관람객의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이 가능한 공유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라는 미술관 측 입장처럼 서울시립미술관은 소통하는 로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계획이다. 최근 <2019 로비 프로젝트: 홍범>전을 마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실질적 전시실이 한 곳밖에 없다는 공간적 제약을 로비를 통해 해소하려 한다. 사용하지 않던 로비에 어울리는 작품을 설치해 관람객이 미술관에 들어오는 순간 또 다른 세계에 진입하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한다. 로비는 이렇듯 점점 진화하고 있다.

4 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로비에 설치된 이미래 작가의 작품.

활용하는 방법은 제각각 다르지만 미술관이 생각하는 로비의 역할은 관람객과의 소통, 다채로운 작품 감상 기회 제공, 예술가에게 새로운 창작 공간 지원으로 좁혀졌다. 요즘 미술관은 열린 미술관을 표방한다. 지금처럼 로비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펼친다면 모두가 어우러지는 미술관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지금 많은 미술관이 휴관 상태지만, 오랜만에 미술관에 가게 된다면 매표소가 아닌 로비부터 찬찬히 훑어보는 건 어떨까. 아마 이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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