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움과 휴양지의 따사로움이 공존하는 미술관

조회수 2020. 4. 1.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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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에는 휴양지의 여유로운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턴 미술관이 있다.
노턴 미술관의 입구 전경.

웨스트팜비치는 뉴욕과 LA에서 고급스러운 모든 것을 한데 모아놓은 곳 같다. 마치 베벌리힐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워스 애비뉴(Worth Avenue)와 뉴욕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유명 셰프 다니엘 불뤼의 ‘카페 불뤼(Cafe Boulud)’, 래리 가고시안의 단골 식당인 ‘생앙브로즈’가 어우러진 곳이니까. 은퇴한 부호들이 모이는 햇살 좋은 휴양지라 해도 좋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외에, 웨스트팜비치에선 실제로 많은 미술 애호가가 모여들어 문화 예술계의 동력을 만들어낸다.

매해 겨울이면 미국 동부의 미술 애호가들이 추위를 피해 이곳을 찾는다. 뉴욕의 어느 공항에서든 웨스트팜비치까지 날아오는 데는 채 3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12월 즈음부터 웨스트팜비치의 개인 소유 해변에선 저택들의 빗장이 열리고, 천으로 덮어둔 작품과 가구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웨스트팜비치의 활기찬 아트 시즌은 이렇게 시작된다.

뉴 헤이먼 플라자.

웨스트팜비치 미술계의 구심점 역할은 미술관들이 맡았다. 그중 노턴 미술관(Norton Museum of Art)의 역할이 크다. 노턴 미술관의 역사는 1941년 시카고 철강 사업가이자 아트 컬렉터인 랠프 노턴(Ralph Hubbard Norton, 1875~1953)과 엘리자베스 노턴(Elizabeth Calhoun Norton, 1881~1947) 부부가 은퇴와 동시에 매해 겨울휴가를 보낸 이곳에 내려와 그들의 컬렉션으로 공공 미술관을 열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대중에게 교육과 함께 즐거움을 제공하며 과거의 아름다운 것을 미래를 위해 보전하는 것’을 미술관의 설립 목표로 제시했다. 이것이 후기 아르데코와 네오클래식 양식이 공존하는 이 작은 미술관을 만든 가치인 셈.

미술관 내부의 그레이트 홀.

노턴 미술관은 개관 72년째인 2013년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와 함께 확장 계획을 발표했고, 2016년 첫 삽을 뜬 후 2018년 여름부터 약 8개월간 미술관을 닫았다가 2019년 2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뉴 노턴(New Norton)’이라고 명명한 미술관 재개관 캠페인도 함께 시작했는데, 당시 1억1000만 달러(약 1300억 원)가 넘는 기금을 모았다. 2018년에는 컬렉터인 하워드와 주디 개넥(Howard and Judy Ganek)이 시그마르 폴케, 에드 루샤, 신디 셔먼, 카라 워커, 데이미언 허스트, 매슈 바니, 시에스터 게이츠, 로나 심프슨, 피필로티 리스트의 작품을 포함해 100여 점의 주요 현대 작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바냔나무가 우거진 미술관 통로.

이른바 ‘그랜드 오픈’을 한 노턴 미술관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미술관 중 조각 공원이 있는 최초의 미술관이기도 하다. 이곳은 앤터니 곰리, 제니 홀저, 프란츠 베스트, 우고 론디노네, 키스 해링 등의 조각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노먼 포스터는 그레이트홀이라 부르는 미술관 공용 공간의 모든 가구와 함께 레스토랑의 테이블과 의자, 심지어 냅킨까지 디자인하는 정성을 보였다. 이런 소품은 전시장을 제외하고 모두 각기 다른 회색 톤으로 마감했는데, 이를 두고 몇몇 큐레이터는 노먼 포스터가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를 미술관을 통해 새롭게 정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단어의 중의성으로 재미를 더한 표현이지만, 미술관에 가보면 말 그대로 회색 톤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알 수 있다.

치훌리 가든 천정의 ‘Persian Sea Life Ceiling’(2003).

미술관 재개관 후 진행한 커미션 작품 중 눈에 띄는 것은 3개 층의 계단 벽면 전체를 거울 조각으로 채운 롭 윈(Rob Wynne)의 작품과 페이 화이트(Pae White)의 거대한 태피스트리 작품이다. 그리고 미술관 뒤편에는 이사회의 기부금으로 사들인 여섯 채의 집이 줄지어 있는데, 그 앞에는 예술가이자 수도자였던 힐데가르트 폰 빙엔을 시작으로 여성 작가 50여 명의 이름과 생몰 연도를 콘크리트 바닥에 새긴 ‘우먼스 워크(Women’s Walk)’가 있다. 이 길에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이름이 더해질 것이다.

노턴 미술관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테면 작가 미캘린 토머스, 브루클린 미술관 관장 앤 파스테르나크, 퓰리처상을 수상한 건축 비평가 폴 골드버거 등을 초청해 매주 토크 세션을 연다. 또 올해부터는 여러 큐레이터와 미술계 인사에게 추천받은 작가 중 매년 4명을 웨스트팜비치로 초청해 집과 작업실, 후원금을 제공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조각 공원 전경.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이 보인다.

한편, 노턴 미술관의 이사회 멤버와 기부자는 대부분 미국의 여러 미술관에서 활동하는 거물급 후원자다. 그중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LA 해머 뮤지엄 이사회에 속해 있으면서 노턴 미술관에서 젊은 사진작가를 위해 루딘 신인 사진가상(the Rudin Prize for Emerging Photographers)을 제정한 베스 루딘 드우디(Beth Rudin DeWoody)는 최근 1만 점이 넘는 개인 컬렉션을 모아 웨스트팜비치에 ‘벙커(The Bunker)’라는 공간을 열었다. 1920년대에 장난감 공장이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약 창고로 쓰인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꾸몄다. 벙커에서는 외부 큐레이터를 초청해 연중 새로운 주제의 7~8개 전시를 선보이고 있으며, 예약제로 운영한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이재이(작가) 사진 제공 노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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