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인을 찾아 떠난 발베니, 목수 김윤관을 만나다

조회수 2020. 3. 16. 10: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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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베니, 한국 장인을 만나다'의 첫 인터뷰이, 목수 김윤관을 만나다.

목수 김윤관을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저서 <아무튼, 서재>를 통해서였다. 지금은 없어진 도산공원 근처 3층 서점에서, 바람에 묻어오는 벚꽃 향기를 맡으며 이 책을 읽었다. 서재의 DNA인 책장, 책상, 의자를 만드는 목수이자 대단한 다독가. 허먼 멜빌의 소설을 읽으며 싱글 몰트를 홀짝이는 목수. 책을 탐미하면서도 텔레비전의 유용을 이야기할 줄 알고, 미니멀리즘을 찬양하는 이에게 ‘맥시멀’하게 어지럽힌 디자이너 폴 스미스 책상의 숨은 질서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사람. 김윤관은 과연 조화로움과 균형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었다. 지름길을 안다 한들 서두르는 법이 없고, 멋 부리지 않으면서도 멋 낼 줄 아는 장인의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이 책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윤관을 만나기 위해 파주 작업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물푸레나무로 만든 키 큰 오브제였다. 한창 작업 중인 듯, 오브제는 풋풋한 기운을 뿜어냈다. “2018년 건축가 승효상 선생과 유럽 수도원 기행을 갔을 때 구상한 거예요. 작업이 정체되어 답답한 시기였죠. 수도원에 머물며 생각을 환기하는 기회였는데, 1176년에 지은 르 토로네 수도원에서 전에 없던 영적인 체험 같은 걸 했어요. 감성적인 것과는 다른 묘한 느낌이더군요. 이제껏 가구를 구상하고 느꼈던 확신과는 결이 달랐어요. 그곳에서 본능적으로 디자인에 들어갔죠.” 12개 시리즈로 구상한 작품의 가제는 칼럼(Column). 술이나 오브제를 놓는 용도의 빈 공간을 좀 더 감각적으로 느껴보고자 목수가 평소 서재에서 홀짝인다는 발베니 마데이라 캐스크 21년을 시험 삼아 툭 놓았다. 길고 좁은 틈으로 빛이 새어 나와 보틀을 비추는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어둠 가운데 빛이란 이토록 찬란했던가.

1 목수 김윤관이 최근 작업 중인 오브제 성격의 캐비닛에 담긴 발베니 더블우드 17년과 마데이라 캐스크 21년.
2 장인의 생각하고 행동하는 손.
3 발베니의 아름다움은 ‘밸런스’라고 말하는 김윤관 목수.

“아직 대패질이 좀 남았어요.” 그는 나무의 맥을 짚듯이 손의 섬세한 감각을 뇌로 전달해 해야 할 일을 감각적으로 인지해냈다. 막 대패질을 마친 목수에게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을 한 잔 건넸다.

“더블우드 12년은 오랜만에 마시는데, 밸런스가 좋네요. 밸런스 잡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잖아요. 그래서 좋은 술은 대체로 밸런스가 훌륭하죠. 싱글 몰트, 특히 발베니 맛을 알게 된 건 2년 전쯤이에요. 그 전에도 위스키는 많이 마셨죠. 다만 그때는 단순히 ‘맛있다’ 정도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건, 바로 주조한 술과 오크통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술은 빛깔부터 향, 뒤에 남는 잔향까지 완전히 다르다는 거예요. 가구나 공예품도 마찬가지죠.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투입된 만큼 더 많은 걸 담아내요. 미감을 갖추면 많은 게 보이죠. 전체적 아우트라인이 주는 조형성, 숨은 디테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

언젠가 그는 ‘기다림을 받아들이는 삶’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시간이 주는, 시간밖에 줄 수 없는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편으로는 시간, 기능, 기술로 장인의 개념을 단순히 규정하는 세태를 경계한다. “‘일 자체에서 깊은 보람을 느끼고 세심하고 까다롭게 일하는 인간. 일 자체를 위해, 일을 훌륭히 해내려는 욕망으로 사는 사람.’ 리처드 세넷이 <장인>에서 정의한 개념이 현재 가장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장인의 정의예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건 동시대성입니다. 예술품처럼 작가의 사후에 가치를 인정받는 건 공예가 아니에요. 동시대에 쓰임을 받아야지요. 저 역시 동시대에 사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기에, 여러 부분에서 밸런스를 잘 잡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것이 직업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지닌 바람이에요.”

누군가 발베니 증류소에서 50년 넘게 오크통을 만들어온 오크통 장인 이안 맥도널드에게 “발베니를 표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젊음”이라고 대답했다. 주요 파트를 담당하는 장인의 근속연한이 평균 50년인 발베니에서 젊음이라니. 다소 의아했던 그 대답이 목수 김윤관을 만난 뒤에야 비로소 이해되었다. 장인은 장인으로서 동시대를 충실히 사는 이상, 그들은 결코 늙지 않을 테니까.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이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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