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한나의 청춘과 봄

조회수 2020. 3. 2. 11: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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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기운에 한껏 젖은 배우 강한나의 내면엔 좀처럼 시들지 않는 봄이 있다.
옐로 니트와 베이지색 니트 스커트 모두Eudon Choi 옐로 골드 하드웨어 링크 이어링Tiffany & Co. 크리스털 링Tani by Minetani.

오늘 ‘한나의 봄’을 주제로 촬영했는데, 어땠나요? 화사하게 잘 나왔나요?(웃음) 화보에 익숙지 않아 ‘봄의 느낌이 뭘까?’ 스스로 내 안의 봄을 불러일으키는 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두 번째 컷부터는 편안하게 했어요.

얼마 전 KBS 2FM <볼륨을 높여요> DJ를 맡았는데, 첫 방송의 첫 멘트가 “2005년 3월에 연기 학원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고, 2015년 3월에는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는 말이더군요. 강한나에게 3월은 조금 특별한 달처럼 느껴졌어요. 2020년의 봄은 좀 더 특별한 느낌이에요. 올해가 되어 비로소 원점에서 새 출발하는 기분이거든요. 스스로 좋은 씨앗을 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올봄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 전과 특별히 달라진 게 있나요? 데뷔 이후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공주라든지(드라마 <미스코리아>) 못된 계략을 펼친다든지(영화 <순수의 시대>), 복수를 한다든지(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려>) 어두운 모습(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을 많이 보여줬다면, 최근에는 예능, 라디오 DJ까지 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 있었어요. 타고난 흥이나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면서요. 저와 동떨어진 곳에서 시작해 점점 인간 강한나에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확실히 밝아 보이네요. 실제 모습과 거리가 먼 배역을 주로 맡은 건 의도적이었나요? 악녀 역할로 연기를 시작해서인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잖아요. 저는 어떤 배역을 맡든 늘 준비가 되어 있어요. 평소 대중에게 강한나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점점 저와 닮은 모습의 인물도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배우로서 라디오 고정 DJ를 선택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라디오는 다정한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운전할 때나 차 타고 다닐 때 라디오를 즐겨 들었는데, 음악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연을 들으며 알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DJ를 제안받았을 때 앞뒤 따질 것 없이 꼭 하고 싶었어요. 그 후에는 부담감이 밀려오더라고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사연마다 진심과 좋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 다행히 주변에서 DJ와 잘 어울린다고 말해준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화이트 벨티드 재킷Eudon Choi 로즈 골드 하드웨어 링크 이어링과 옐로 골드 하드웨어 링크 브레이슬릿 모두Tiffany & Co.

배우 강한나가 예능에서 특별히 사랑받는 이유를 파고들다 보니, 솔직함이더군요. 그리고 라디오에선 그 솔직함이 더 부각되고요. 하하! 라디오에선 제 TMI(Too Much Information)가 넘치죠. 라디오만의 장점 같아요. 마음을 툭 내려놓을 수 있게 무장해제하는 부분이 있어요. 신기해요. DJ는 청취자의 솔직한 사연을 듣는데 저도 제 안의 솔직한 것을 꺼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쪽은 솔직한데 다른 한쪽은 가식적이거나 부풀리고 과장하면 불공평하잖아요. 공평의 문제는 아니지만. 결국 청취자의 진솔한 사연이 제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예능적으로 소비되면 연기에 영향을 미쳐 조심스러워하는 배우도 많아요. 두려움은 없었나요? 작품에서 배역에 대한 두려움이 없듯이, 제겐 예능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상황에서든 주어진 역할에 ‘Do my best’,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는 마음뿐이에요.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장단점을 따지는 성격이 아니에요.

결단이 빠른 편인가요? 고민이나 생각은 많은데, 결정은 시원시원하게 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어떤 고민에 빠져 있나요? 요즘은 진짜 별생각이 없어요. 참 다행이죠. 생각이 많다는 건 어느 정도 불안을 느낀다는 건데, 요즘은 평온하고 마음이 설레요. 지금까지 차곡차곡 해온 것이 오늘날 원점부터 출발하기 위해서였나 봐, 이런 기분이 들어 지난날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동안 마음 한편으로는 대중이 인식하는 ‘강한나는 도도하고 차가울 거야’처럼 작품 속 캐릭터와 인간 강한나의 괴리가 마음의 짐이었던 것 같아요. 예능에서 원래 제 모습을 오픈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고 안도감이 느껴졌어요.

최근작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국정원 대테러팀 분석관 한나경 역을 맡아 강인한 이미지를 심어주었죠. 미드 원작 <지정생존자>가 큰 히트작이라 부담도 되었을 것 같아요. 부담이 됐죠. 원작 팬의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게 아니라 제 스스로 느낀 본래 캐릭터(FBI 요원인 한나 웰스)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요. 감독님은 원작과 다른 느낌의 한나경을 원하셨어요. 매기 큐가 연기한 한나 웰스처럼 슈퍼히어로 같은 인물이 아니라 평범하게 직장 다니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상황을 겪는 유약한 사람, 보통 인간의 모습을요. 그렇다면 매 순간 진실되게 바라보고 느끼는 데 집중해야겠다 싶었죠. 최대한 눈의 총기를 거두고 몸을 써서 행동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원작 캐릭터와 다른 인물 해석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언젠가 독하게 복수하는 역할의 오디션을 볼 때 다른 배우와 해석을 달리해 캐스팅되었다고 들었어요. 영화 <순수의 시대> 오디션 때였어요. 독한 성격에 계략을 꾸미는 기생 역할이라 다른 배우들은 의상부터 연기까지 강하고 센 부분에 집중했는데, 저는 그 인물을 그렇게 악하게 해석하지 않았어요. 평소 제 성격도 어떤 인물에 대해 ‘이럴 것이다’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요. 배역을 볼 때도 악한 모습 뒤의 원론을 먼저 살피죠. 처음부터 나쁘고 독한 사람은 없거든요.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 뿐이죠. 그래서 근본을 찾는 것이 인물을 파악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도대체 이 사람의 출발점이 뭘까? 뭔가를 덧입히고 씌우기 전에 그 인물의 백지 같은 모습을 더 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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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강한나만의 연구 방법이 있나요? 저만의 방법은 아니고 연극학과에서 배운, 인물을 찾아가는 방법을 다양하게 적용해요. 메소드라고 하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또다시 뒤집어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생각을 좀 덜어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60일, 지정생존자> 촬영장에서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든 생각이에요. 무거운 내용일수록 편안하게 연기할 때 보는 이에게 흡인력을 주는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더 만들어갈까보다는 인간이 느끼는 것을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싶더라고요. 연기는 해도 해도 어렵고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캐릭터를 연구할 때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고요. 어떤 인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연상되어 따라오는 것들이 있어요. 평소 예술이나 클래식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죠. 작년에 혼자 파리 여행을 다녀왔는데, 하루에 미술관을 한 군데씩 다니면서 천천히 작품을 감상했어요. 다른 사람의 연기를 보는 것도 좋지만, 예술가의 작품에서 힘을 얻는 부분이 있어요.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인가요? 혼자만의 여행은 오롯이 내게만 집중할 수 있어 좋더라고요. 전시를 볼 때도 좋은 그림 앞에서 한참 서 있기도, 잠시 앉아 있기도 하고요. 누군가와 함께 가면 배경이 되어버리는 주변 공간과 자연을 오롯이 제 시점에서 보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작품을 끝내고 많이 지쳐 있었는데, 20대 초반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이래서 나를 위해 혼자 여행하는 게 꼭 필요하구나 싶더라고요.

가장 오래도록 발걸음을 멈추게 한 작품은? 밀레의 ‘만종’, ‘이삭 줍는 사람들’ 앞에 섰는데, 막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어? 교과서에서 볼 땐 아무 감흥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내 감정을 건드리지? (눈앞에 ‘만종’이 있는 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허공을 본다) 그림이 주는 오묘한 심상이 있었나 봐요. 돌아와서는 주변 지인들에게 ‘만종 만종’ 노래를 부르다시피 했다니까요.(웃음)

그런 시간이 연기하는 데 어떤 에너지가 되나요? 역할을 맡아 하다 보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되곤 해요. 끝나고 나면 헛헛한 마음도 들고요. 예술 작품을 보면 그런 헛헛함이 씻기는 기분이에요. 터치 하나, 색깔 하나하나 보면서 ‘얼마나 혼을 담았을까’, 예술가의 고심과 신중함이 전해지고요. 그래, 내가 하는 건 고생도 아니지 싶은 생각에 마음이 말랑해지는 효과도 있어요.

스스로를 비우고 채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살면서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고 다독이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손바닥 뒤집듯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에너지를 내도록 단련된 것 같아요. 무한 긍정적인 어머니의 영향도 받았고요.

언밸런스 재킷과 피치 컬러 와이드 팬츠 모두Delpozo 핫 핑크 스트랩 슈즈 Schutz 아코야진주를 세팅한 파인 링크 이어링과 링 모두Tasaki.

살면서 바닥을 쳐본 적도 있어요? 바닥을 치는 순간에도 ‘괜찮아’ 하며 스스로 건져 올리는 편이에요. 그런 순간에는 주변에서 괜찮다 괜찮다 해줘도 잘 안 돼요. 결국 스스로 끌어올려야 해요. 최악인 데다 엉망진창인 상태에서는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힘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에 큰 자책도 하지 않고 오래 좌절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연기하며 에너지를 쏟아붓는 한편, 채워지는 것도 있겠지요? 경험과 재미요. 에너지를 쏟아붓고 스트레스도 받고 괴롭고 힘들지만 재미가 없으면 못하겠죠. 배역을 연구하면서 사람들은 왜 그럴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요. 뭔가를 궁금해하고 관찰하는 과정을 좋아하거든요. 삶과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이건 제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임과 동시에 배우로서 해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인간 군상이든 다 이해하고 느끼며 잘 담아 표현할 책임이 있는 존재. 조금 괴로워도 배우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침 라디오 DJ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잖아요. 인물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네요. 사연을 들을 때마다 항상 “이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세요”라고 말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궁금하거든요. 아직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청취자와의 소통이 단발성이라는 점이 아쉬워요. 원래 누굴 만나도 몇 시간씩 심도 있게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거든요. 소소한 내용이라도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고 싶은데, 아마 오래 하다 보면 채워지지 않을까요. DJ를 맡은 뒤로는 아직 배역을 안 만나봐서 알 수 없지만, 제 경험 밖 일에 귀 기울이는 게 연기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요즘 검토 중인 작품이 있나요? 아직 정해진 건 없고, 좋은 작품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언제나 그렇듯, 해보지 않았거나 엄청난 배역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청춘에 가까울 때 청춘다운 작품도 해보고 싶고요.

강한나 속 청춘의 이미지는? 푸를 청, 봄 춘.(웃음) 푸른 봄이죠. 사실 마음이 푸르고 뭔가를 계속 새롭게 느끼는 게 중요해요. 나이가 어려도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위태롭다 느끼면 마음에 청춘이 없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청춘다운 역할은 언제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도 ‘때’라는 게 있잖아요. 제가 조금이라도 더 청춘을 느낄 때(양손으로 에너지를 뿜뿜 올리는 시늉을 한다). 요즘 제가 청춘을 엄청 느끼고 있거든요.(눈을 깜박이며) 눈빛이 조금이라도 더 반짝일 때. 그런데 할머니가 되어서도 청춘이면 어떡하지?

곧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도 시작한다고요. JTBC <우리, 사랑을 쓸까요? 더 로맨스>라는 예능이에요. 래퍼 원과 함께 로맨스 웹 드라마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작가로 변신해요. 그 후에는 스포라서 아직.(웃음)

배우에서 라디오 DJ로 새롭게 도전했는데, 앞으로 더 확장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클래식을 좋아해서 악기를 배우고 싶은데, 분야를 확장하는 것에 대해선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제 그릇 밖의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열심히 물을 붓는 스타일이라. 아! 마침 아까 물 붓는 촬영도 했네요.(웃음) 어떻게 하면 주어진 그릇에 잘 따를지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기왕이면 그 그릇이 넓어지면 좋겠어요.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안상미 헤어 황신재 메이크업 전성희(제니하우스) 어시스턴트 최고은 스타일링 남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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