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걸 되팔아 수익을 남기는 리셀 문화

조회수 2018. 7. 10. 10: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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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oblesse
아디다스와 나이키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패션계에 바람을 일으키는 카녜이 웨스트와 그가 나이키와 발매한 ‘에어 이지2 옥토버’.

고등학생 시절, 나이키에서 나온 샥스 R4 스니커즈를 정식 발매가보다 비싸게 웃돈을 주고 직거래한 적이 있다. 당시 그걸 판 30대 직장인은 그런 거래가 익숙한 이였지만, 학생에게 큰돈을 받는 게 미안하다며 근처 맥도날드에 데려가 내게 소프트아이스크림까지 사주었다. 난 아이스크림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머릿속에 온통 샥스 R4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반에도 한정판 스니커즈나 옷에 웃돈을 얹어 되파는 사람은 있었다. 물론 그 수요가 적어 20만 원에 발매한 스니커즈가 200만 원까지 치솟는 마법 같은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당시엔 ‘리셀러(reseller)’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부르는 이도 없었다. 물론 직거래 장소에 나온 학생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도 그 시절이니 가능한 일이고.

출처: Noblesse
1, 2 싱가포르 오차드 로드의 루이 비통 매장 앞에서 ‘루이 비통 X 슈프림’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과 당시 출시한 힙색.

3 내로라하는 유명 브랜드들이 먼저 손을 내미는 슈프림은 최근 리모와와 협업한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요 근래 서울 시내의 어느 브랜드 매장 앞엔 이전에 볼 수 없던 풍경이 일상처럼 펼쳐진다. 리셀러들에 의해 추석 열차표 예매 행렬만큼이나 긴긴 줄이 늘어선다. 줄은 보통 대낮부터 시작된다. 그게 파하는 건 다음 날 혹은 그 이튿날 해당 제품이 판매를 시작하는 순간. 줄은 매장 근처의 건물을 두어 바퀴쯤은 가볍게 감는다. 그냥 감는 게 아니라 텐트나 침낭 등으로 무장한 채 말이다. 그들은 그렇게 고난 행군을 통해 구한 제품에 적게는 2~3배, 많게는 10배에 이르는 웃돈을 얹어 중고거래 사이트 등을 통해 되판다. 희소성 있는 물건을 사 비싸게 되파는 이런 매점매석 행위를 우린 ‘봉이 김선달’을 통해 접한 바 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 제품에서나 일어나는 일 아니냐고 누군가 물을까 싶어 미리 말하지만 루이 비통이나 프라다, 발렌시아가, 롤렉스 등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도 벌어진다. 한 예로 지난해 7월 루이 비통은 ‘루이 비통×슈프림’ 팝업 스토어를 서울 청담동 매장을 비롯한 전 세계 8개 매장에 오픈했다. 이곳에선 일주일 간격으로 1·2차에 걸쳐 한정판 옷과 가방, 지갑 등의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제품 판매 4일 전부터 300여 명에 달하는 인파가 청담동 매장 앞에 몰려들었다. 이들 중엔 제품의 실제 소비자만큼 많은 리셀러와 대신 줄을 서주는 알바가 속해 있었다. 당시 이들의 줄은 보행로를 막아 매장에선 자체적으로 간이 인도까지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소동 끝에 제품을 손에 넣은 이들은 곧 횡재했다. 마치 워런 버핏이 찜해둔 주식처럼 제품의 중고 거래가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국내 중고 거래 사이트엔 60만 원대의 로고 티셔츠가 150만 원에 올라왔고, 120만 원대 후디드 티셔츠는 300만 원까지 가격이 뛰었다. 또 이베이 같은 해외 사이트에선 같은 가격의 후디드 티셔츠가 2만5000달러(약 2800만 원)까지 오르는 일도 벌어졌다.


2015년에도 이와 비슷한 유명 일화가 있었다. H&M과 발망의 한정판 협업 제품 출시 현장이다. 당시 제품 발매 4일 전부터 압구정동 H&M 매장 앞에 줄을 섰다는 한 남자는 그즈음 저녁 뉴스의 한 꼭지에 나와 마치 전장에 나서는 전사처럼 비장한 얼굴로 “발망의 감성이 깃든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입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정말 그런 얼굴을 할 만했을까? 발망은 티셔츠 하나에 100만 원쯤 한다. 반면 H&M과 협업한 제품은 티셔츠가 4만 원대, 블라우스가 11만 원대, 재킷이 13만~50만 원대였다. 당시 이들의 한정판 의류는 1인당 제품별 구매 수량을 하나씩으로 제한했는데, 그 때문에 현장에 선 줄엔 리셀러와 알바, 실제 소비자, 그들 각자의 사돈의 팔촌, 팔촌의 이웃사촌까지 모두 동원되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수요보다 공급이 적어 일어난다. 또 한국만의 일도 아닌 세계적 현상이다. 최근에도 리모와는 슈프림과 한정판 협업 제품을 발표했고, 이들의 슈트케이스는 현재 발매가보다 3~4배 뛴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또 이 분야의 터줏대감인 카녜이 웨스트는 아디다스와 협업해 ‘이지(Yeezy)’ 시리즈 스니커즈를 만드는데, 많게는 20배 정도의 가격 상승률을 보인다. ‘이지 부스트 350’은 정가가 25만 9000원이었지만, 현재 약 130만 원에 거래된다. 과거 카녜이 웨스트가 나이키와 협업해 출시한 ‘에어 이지2 옥토버’는 29만 원에 발매했지만 경매에서 1000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해외에선 그 규모가 기업을 뺨치는 전문 리셀러도 등장했다. 중국 출신으로 황사 머니의 파워를 보여주는 앨런 궈(Allen Kuo)는 리셀 가격에 대량으로 제품을 사들여 오래 묵힌 뒤 다시 한번 시세를 올려 파는 식으로 큰돈을 벌고 있다. 또 미국의 벤저민 카펠루시닉(Benjamin Kapelushnik)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지만 레어 스니커즈를 판매하는 스니커 돈(Sneaker Don)을 설립해 1년에 약 10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출처: Noblesse
한정판이나 레어 스니커즈를 판매하는 스타 리셀러 벤저민 카펠루시닉.

한데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리셀러들의 이런 행위가 패션과 유통 시장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것이다. 아니, 이 사안에 대해선 이미 여러 칼럼이 다루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리셀러는 시간과 돈을 들였으니 비싸게 파는 건 개인의 자유라는 의견을 내놓고, 그 제품이 실제로 필요한 소비자는 리셀러들의 과한 이윤 추구로 온갖 불만에 손가락만 빤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 사실 정말로 궁금한 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리셀러나 소비자가 아닌, 늘 그들에게 줄을 세우는 브랜드의 입장 말이다.


사실 리셀러를 양산하는 수많은 브랜드가 이 문제에 대해 여태껏 확실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다. 리셀러들의 제품 독점 문제로 울어야 할지, 막대한 홍보 효과로 웃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루이 비통과 톰 브라운, 꼼데가르송 등 현존하는 최고 브랜드와 협업한 슈프림의 설립자 제임스 제비어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리셀러들을 증오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 또한 속내는 알 수 없다. 구매 경쟁이 생기면 브랜드 가치가 자연스레 올라가고,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브랜드는 한정판 제품을 자주 내놓아 아예 이런 풍경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 시장은 별다른 대책 없이 리셀러의 즐거운 비명과 실제 소비자의 괴로운 비명, 브랜드의 포커페이스가 맞닿은 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둬야 하는 걸까? 용돈을 모아 직거래 장소에 나온 학생에게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동화 같은 일은 앞으로 영영 일어나지 않는 걸까? 혹시 흔해빠진 한정판에 소비자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날이 오진 않을까?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 뿌리 하나에 1억 원까지 오르다 어느 날 모두 사이좋게 망한 것처럼 리셀러들도 비슷한 전철을 밟진 않을까? 긍정과 부정이 서로 맞닿은 이 시장에 대해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출처: Nobl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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