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이 밝힌 자퇴 당시 교무실 풍경
무명 시절 없이 데뷔부터 스타였던,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바로,
30여 년 전,
고등학교 자퇴를 결심했던 그 순간.
정우성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자퇴의 이유.
생계를 꾸리기에 바빴던 부모님과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던 정우성.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모든 게 막막하고 답답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자퇴했어요. 교무실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엄마.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방배동 카페골목을 지나 사당동으로 갔어요.
명예, 돈, 꿈을 모두 손에 쥔 지금. '중졸'이라는 꼬리표가 그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홀로 빈 답안지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꿈을 꾼단다.
가장 갖고 싶은 것은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이라고.
울음을 터트리는 엄마를 버스에 남기고 홀로 세상에 뛰어들었단 말이에요. 자퇴 후 몇 년 동안은 어디에 내 몸을 눕혀야 하는지 늘 찾아다녔죠. 어슬렁거리면서 말이에요.
이후 CF를 통해 데뷔한 그는 독보적인 비주얼로 관계자들과 대중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1994년 영화 '구미호'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고, SBS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로 눈도장을 찍었다. 화려한 데뷔였다.
출발부터 남달랐던 그는 영화 '비트'와 '태양은 없다'로 그야말로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분명 충무로에 전에 없던 캐릭터였다. 반항기 가득한 눈빛, 훤칠한 키에 서구적인 마스크. 청춘스타라는 단어가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데뷔라는 엄청난 지푸라기를 잡았죠. 구명선 위에 올라탄 거죠 한마디로. 데뷔하고 나서는 어려웠던 시기도 물론 있었죠.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늘 감사했어요.
그를 스타로 만든 '비트'는 훗날 '감독 정우성'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영화 '보호자'로 상업영화 감독 데뷔를 앞둔 그는 '감독 정우성'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 '비트'의 김성수 감독을 꼽았다.
감독님께서 '비트' 내레이션을 한 번 써보라고 해서 써서 줬더니 칭찬해주면서 영화에 반영해줬죠. 그때부터 자신이 붙어서 뭘 계속 써서 드리면 재밌다고 해주시고, 신나서 더 쓰게 되고. 그게 확장이 돼 뮤직비디오 감독도 해보고, 영화감독까지 하게 된 것 같아요.
학교라는 제도권을 벗어나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힌 그는 단단하고 깊은 어른이 됐다.
악플의 공격에도 소신을 밝히길 주저하지 않고, 제 분량보다 영화가 가진 가치에 힘을 실어준다.
UN 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자연스럽게 제 일을 할 뿐이에요.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전쟁과 평화에 대한 얘기잖아요. 악플 부담 없어요. 그들을 굳이 욕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결국엔 이해의 차이인데, 인간사회에서 이해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죠.
그는 인터뷰 내내 '여배우'가 아닌 '여성 배우'라는 표현을 썼다. 그 이유를 묻자 여배우, 남배우를 굳이 나누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여성 배우, 남성 배우가 더 듣기 편하다는 의견도 있고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선택한 데에는 여성 배우 중심의 영화에 대한 목마름도 큰 역할을 했어요. 제가 전도연 배우를 잘 맞춰주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죠.
By.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