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때려치고 영화감독 된 두 사람

조회수 2020. 2. 12. 10: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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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보험 포기하고 자영업자의 길로..
출처: MBC 방송 화면 캡처
다들 가슴에 사직서 하나쯤은 품고 있잖아요..?


여기,

시원하게 사직서를 내다 꽂고!!


제2의 봉준호를 꿈꾸며 영화감독이 된 이들이 있다.

출처: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 괴물신인의 등장..'지푸라기' 김용훈 감독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김용훈 감독은 CJ엔터테인먼트 직원 출신이다. 


2008년 대학생 인턴으로 CJ 기획팀에 입사해 10년간 CJ에 몸담았다.  


김용훈 감독은 당시 기획팀에서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를 기획 개발했고 이후 CJ에 정식 채용됐다. 

출처: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제작팀도 있어 봤고, 기획팀도 있어 봤고, 투자팀도 있어 봤어요. 하지만 항상 영화감독을 꿈꿨어요. 회사분들에게도 감독이 될 거라고 늘 말씀드렸었죠. (김용훈 감독)

문화를 만드는~굴지(?)의 대기업을 멀쩡히 다니다가 제 발로 나오기란 로또에 당첨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퇴사 이후 당장 눈에 보이는 계획 없이 막연히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이유로 그만둔다니..?

회사 잘 다니고 있었거든요. 35살 됐을 때 사직서를 바로 냈어요. 회사에서도 당황하더라고요. 처음엔 영화감독 하겠다니까 회사에서도 기회를 줬거든요. 유급 휴가 줄테니까 시나리오 한 번 써보라고. 그때 시나리오를 몇 개 써보긴 했죠. (김용훈 감독)
출처: 뉴스에이드 DB

김용훈 감독이 더욱 대단한 것은, 퇴사 당시 가정이 있었다는 점.  


(김용훈 감독은 11살 딸을 둔 아버지다..!)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 생계를 일궈야 한다는 부담만큼이나 절박했던 것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가족들에게도 딱 2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2년 동안 영화감독으로서 그 어떤 행보도 걷지 못하면 정신차리고 생업에 뛰어들겠다고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죠. 다행히도 가족들이 제 선택을 믿어줬던 것 같아요.(김용훈 감독)
출처: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그렇게 두려움 반, 절박함 반으로 뛰쳐나온 CJ. 


김용훈 감독은 퇴사 2년 만에 장편 상업영화 입봉에 성공했다.


데뷔작부터 전도연, 정우성, 윤여정. 꿈의 캐스팅이다. 그의 표현대로 데뷔 무대부터 올스타전을 치르는 격이다.

출처: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심지어 데뷔작으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은 물론 국내 평단으로부터 뜨거운 극찬까지 받고 있는 김용훈 감독. 


퇴사 안 했으면 어쩔 뻔 했나..신의 한수였다.

가족들이 진짜 좋아하죠. 전 늘 꿈을 꾸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걱정이 많았을 것 아니에요. 아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왔으니..(김용훈 감독)
김용훈 감독은 CJ 다닐 때도 재기 발랄하고 끼가 많은 친구였어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참 뛰어났죠. 결국엔 꿈을 성취해내다니. 대단하죠.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쇼박스 홍보팀에서 감독으로..'청년경찰' 김주환

2017년 영화 '청년경찰'로 56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여름 흥행 위너로 등극했던 김주환 감독. 


김주환 감독도 회사 때려치우고 나와 감독이 된 케이스다. 그는 감독 데뷔 전 출신만큼이나 이력도 남다르다.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중학생 시절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난 그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워싱턴 D.C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왠지 모를 엄친아 스멜..ㅎㅎ)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투자배급사 쇼박스에 입사해 홍보팀, 한국영화 투자팀에서 근무했다.

출처: 뉴스에이드 DB

심지어 그는 장편 데뷔작 '코알라'를 쇼박스 재직 시절 찍었다는 사실!! (퇴근=집 직행 아닌가요..?)


제대로 영화에 올인하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박차고 나와 영화 '청년경찰'로 상업영화 데뷔에 성공했다.

영화는 제조업 아니면 서비스업이잖아요. 감독 데뷔 전에는 서비스업을 했는데, 제조업을 하고 싶더라고요. 만드는 게 제일 재밌었어요. 일을 하면서 감독님을 뵐 때마다 더더욱 감독이 되고 싶었죠. 내 얘길 하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더 단단해져 회사를 그만두게 됐어요.(김주환 감독)

김주환 감독은 감독으로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로 나홍진 감독을 꼽았다.


영화 '추격자' 당시 홍보팀원으로 나홍진 감독을 만났던 그는 "속된 말로 뻑갔다"고 고백했다.

출처: 쇼박스 제공
압도됐어요. '추격자'를 보고 속된 말로 뻑 갔죠. 와, 와..진짜 멋있다. 나홍진 저 감독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아 물론 홍보팀으로서 쉽진 않았죠. 그때 당시 '내 전화번호 끝자리가 4885인데 왜 이 번호를 썼냐'라는 항의가 많이 왔거든요. 하하..(김주환 감독)

By.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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